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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칼럼] 참회문(懺悔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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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칼럼] 참회문(懺悔文)

김덕권 기자 duksan4037@daum.net 입력 2018/12/31 07:00 수정 2018.12.31 07:02
아무래도 오늘 서해의 낙조(落照)를 바라보면서 혹시 지난 한 해 동안 알고도 짓고 모르고도 지은 죄(罪)는 없는 것인가 하고 참회(懺悔)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회문(懺悔文)

세월이 빠르기가 화살이 아니라 전광석화(電光石火)같이 느껴집니다. 오늘이 무술년(戊戌年)의 마지막 날입니다. 아무래도 오늘 서해의 낙조(落照)를 바라보면서 혹시 지난 한 해 동안 알고도 짓고 모르고도 지은 죄(罪)는 없는 것인가 하고 참회(懺悔)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하루 이 참회문으로 이 해의 마지막을 장식해 보면 어떨까요?

<참회문(懺悔文)>

음양 상승(陰陽相勝)의 도를 따라 선행자(善行者)는 후일에 상생(相生)의 과보를 받고 악행 자(惡行者)는 후일에 상극(相克)의 과보를 받는 것이 조금도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영원히 참회 개과(改過)하는 사람은 능히 상생 상극의 업력을 벗어나서 죄 복을 자유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불(諸佛) 조사(祖師)가 이구동음(異口同音)으로 참회문을 열어 놓으신 것이지요.

무릇 참회라 하는 것은 옛 생활을 버리고 새 생활을 개척하는 초보이며, 악도를 놓고 선도에 들어오는 초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과거의 잘못을 참회하여 날로 선도를 행한즉, 구업(舊業)은 점점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업(新業)을 다시 짓지 아니하면 선도는 날로 가까워지고 악도는 스스로 멀어지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경(經)에 따르면, [전심 작악(前心作惡)은 구름이 해를 가린 것과 같고 후 심기선(後心起善)은 밝은 불이 어둠을 파함과 같다.] 하시었습니다. 이렇게 죄는 본래 마음으로부터 일어난 것이라 마음이 멸(滅)함을 따라 반드시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업(業)은 본래 무명(無明)입니다. 그래서 자성(自性)의 혜광(慧光)을 따라 반드시 없어지는 것이지요. 그러니 죄고(罪苦)에 신음하는 사람들이 어찌 이 문(門)에 들지 않겠는지요?

그러나 죄업의 근본은 탐⦁진⦁치(貪嗔痴)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참회를 한다 할지라도 후일에 또다시 악을 범하고 보면 죄도 또한 멸할 날이 없습니다. 또는 악도에 떨어질 중죄를 지은 사람이 일시적 참회로써 약간의 복을 짓는다 할지라도 원래의 탐⦁진⦁치를 그대로 두고 보면 복은 복대로 받고 죄는 죄대로 남아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비하건대 큰 솥 가운데 끓는 물을 차게(冷) 만들고자 하는 사람이 위에다가 약간의 냉수만 갖다 붓고, 밑에서 타는 불을 그대로 두면, 불의 힘은 강하고 냉수의 힘은 약하여 어느 때든지 그 물이 차가워지지 아니 함과 같은 것이지요.

세상에 전과(前過)를 뉘우치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후과(後果)를 범하지 않는 사람은 적지요. 그래도 일시적 참회 심으로써 한두 가지의 복을 짓는 사람은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속의 탐⦁진⦁치는 그대로 두고 어찌 죄업이 청정하기를 바랄 수 있겠는지요?

참회의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사참(事懺)이요 하나는 이참(理懺)입니다. 사참이라 함은 성심으로 진리 전에 죄과를 뉘우치며 날로 모든 선을 행함을 이름입니다. 그리고 이참이라 함은 원래에 죄성(罪性)이 공(空)한 자리를 깨쳐 안으로 모든 번뇌 망상을 제거해 감을 이름이지요.

그래서 사람이 영원히 죄악을 벗어나고자 할진대 마땅히 이를 쌍수(雙修)하여 밖으로 모든 선업을 계속 수행하는 동시에 안으로 자신의 탐⦁진⦁치를 제거하는 것입니다. 이같이 한즉, 저 솥 가운데 끓는 물을 차게 만들고자 하는 사람이 위에다가 냉수도 많이 붓고 밑에서 타는 불도 꺼버림과 같은 것이지요. 그러면 아무리 백 천겁(百千劫)에 쌓이고 쌓인 죄업일지라도 곧 청정해 지고 마는 것입니다.

또는 공부 인이 성심으로 참회 수도하여 적적성성(寂寂惺惺)한 자성 불(自性佛)을 깨쳐 마음의 자유를 얻고 보면, 천업(天業)을 임의로 하고 생사를 자유로 하여 취할 것도 없고, 버릴 것도 없고, 미워할 것도 없고, 사랑할 것도 없어서, 삼계 육도(三界六途)가 평등일미(平等一味)요, 동정역순(動靜逆順)이 무비 삼매(無非三昧)가 되는 것이지요.

이러한 사람은 천만 죄고가 더운 물에 얼음 녹 듯 하여 고도 고가 아니요, 죄도 죄가 아닙니다. 그리고 항상 자성의 혜광이 발하여 진대지(塵大地)가 이 도량(道場)이요, 진대지가 이 정토(淨土)라 내 외 중간에 털끝만한 죄상(罪相)도 찾아볼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른바 불조(佛祖)의 참회요, 대승(大乘)의 참회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지경에 이르러야 가히 죄업을 마쳤다 하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이 참회문이요? 이 참회문을 우리 매일 독송(讀誦)해 보면 어떨까요? 저는 매일 아침 이 참회문을 일심을 다해 독송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알고도 짓고 모르고도 지은 죄업이 청정하여 이생 보다는 내생이 좀 더 나은 삶이 되지 않을까요? 우리 오늘 하루뿐만이 아니라 매일 매일 이 참회문을 읽어 영생이 복되면 참 좋겠네요!

단기 4351년, 불기 2562년, 서기 2018년, 원기 103년 12월 31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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