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뉴스프리존

도 넘은 혐오 발언, 한국사회 ‘독버섯’ 위험..
사회

도 넘은 혐오 발언, 한국사회 ‘독버섯’ 위험

정용인 기자 입력 2015/01/04 00:20

“다른 것은 몰라도 주변에 전라도 홍어 운운하는 이가 있다면.” 구랍 29일, 방송인 허지웅씨는 자신의 SNS에 이렇게 글을 썼다. “…관계를 막론하고 반드시 지적해주시기 바랍니다. ‘다양한 의견’이라는 수사가 건강을 회복하려면 이렇게 배제와 혐오와 증오를 주장하는 민주주의의 암세포들에게 명백한 경고를 보내야만 합니다.”
 

발단은 12월 26일자 한겨레신문에 실린 2014년을 돌아보는 대담이었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가 ‘정치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망하는’ 종편 이야기를 하면서 주소비층이자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층인 노년층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진 교수의 이야기를 받으며 허씨가 ‘어른 세대가 반성 없는 사회’라며 영화 <국제시장>을 예로 들었다. 허씨는 고생은 어른 세대가 다했다는 인식에 대해 “토가 나온다”고 발언했다. 주말, 종편은 허씨의 발언을 거두절미하고 인용하며 공격했다. 동시에 인터넷커뮤니티 사이트 일간베스트저장소(이하 일베)에서는 ‘종편 자료’를 콘텐츠 삼아 허씨를 조롱했다. 아니나 다를까 고향드립이 나왔다. 허씨는 다시 자신의 SNS에 “광주 출신이라 영화 <변호인>은 빨고 <국제시장>을 깐다는데 광주에서는 딱 2년 산 사실상 서울 토박이이며, 당신들 같은 사람들이 역겨워 나는 광주가 고향이라고 말하고 다닌다”고 밝혔다. 일베와 허씨의 SNS 댓글에는 ‘사실상 서울 토박이’라는 허씨의 글을 캡처해 비아냥하는 글과 이미지가 올라왔다. 이들은 김대중 대통령과 영화 배트맨의 악당 조커를 합성한 사진, 이명박 전 대통령이 ‘홍어’를 들고 있는 사진 등을 올리며 조롱했다. 소동은 허씨가 “모두 자료 취합이 완료되어 법적 절차에 들어갔다”고 밝히자 급속히 잦아들었다. SNS와 일베에 올라왔던 조롱글 대부분도 사라졌다. 소송을 두려워한 게시자들의 자진 삭제로 추정된다.
 

혐오 발언 무대 ‘일베’를 어떻게 해야 할까
 

소동은 지난 2~3년간 ‘일베’에서 벌어진 크고 작은 다른 사건들과 판박이다. 명예훼손 등 고소·고발이 들어오면 잦아든다. 관심은 바로 다른 희생양 찾기로 이동한다. ‘까보전’(까고 보니 전라도)이나 ‘종특 김치년 삼일한’(종자가 특수한 한국 여성은 3일에 한 번씩 맞아야 한다)이라며 조롱하거나 비아냥거리는 말은 대상을 바꿔 계속된다. 기자가 기사를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전라도 홍어’나 ‘성형한 김치년’과 같은 댓글이 실시간으로 달리고 있다.

<주간경향>은 2014년 초, 온라인 커뮤니티의 접속 데이터를 기준으로 ‘일베의 전성시대가 끝나간다’는 보도를 한 바 있다. 1년이 지난 지금, 달라졌을까. 다시 랭키닷컴에 요청해 커뮤니티 트래픽 추이 자료를 받았다. 조건은 포털에서 서비스를 하고 있는 루리웹을 제외하고 지난해와 동일했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디시인사이드는 여전히 가장 많은 접속률을 보여주고 있지만 하락세가 지난해에 비해 더 뚜렷해졌다. 일베는 여전히 유의미한 커뮤니티로 남아 있지만 역시 하락세다. 특히 모바일에서 ‘오늘의유머’ 사이트의 월간 트래픽 상승이 두드러진다. 지난 2013년 하반기에 다른 커뮤니티들에 역전을 당한 일베는 2014년 1~3월 기간 다시 ‘성장세’를 보였지만, 4월을 지나면서 월간 트래픽은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4월은 세월호 사건(4월 16일)이 난 달이다. 세월호 사건 당시 일베의 일부 게시판 사용자들이 보여줬던 유가족 비하 등에 대해 ‘조용한 이탈’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2014년 10월과 11월 현재 일베는 모바일과 PC 모두에서 자체 트래픽 최저점을 찍고 있는 중이다.(표1·2 참조)

 


일베 사용자의 행태는 이제 거의 알려졌다.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서도 ‘일밍아웃’(일베 사용자임을 드러내는 행위)은 즉각적인 차단 대상이 되고 있다. 다른 커뮤니티 회원으로 위장하여 벌이는 이른바 ‘분탕’도 이제는 거의 통하지 않는다. 늘어난 것은 고소·고발 사건이다.
 

2013년, 이른바 ‘홍어택배’ 사건을 계기로 광주시는 5·18 역사왜곡훼손사례 신고센터를 개설했다. 광주시 홈페이지에 개설되어 있는 신고센터 게시판에 들어가 보면 약 3700건의 신고가 들어와 있다. ‘홍어택배’ 등 1980년 5·18 참가자를 조롱했던 사건은 어떻게 되었을까. ‘5·18 왜곡 법률지원단’ 단장을 맡고 있는 임태호 변호사에 따르면 일베에 글을 올렸던 3명은 사과문을 쓰고 5·18 묘역을 참배하는 조건으로 소를 취하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대구지검으로 넘어간 사건은 1심에서 명예훼손이 아닌 모욕죄를 적용했고,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그에 따르면 문제는 종편이다. 종편에서 “5·18 때 북한군이 시민군으로 위장해서 참여했다”고 주장한 사건은 항소심에서 무죄를 받고 검찰이 대법원에 항고하지 않아 기각됐다. 임 변호사는 말한다. “2000년대 중반에 있었던 하급심 판례를 인용해 집단의 명예훼손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결정에 동의할 수 없다. 1980년 5월 26일에 전남도청을 마지막까지 사수한 사람들을 ‘항쟁파’라고 하는데, 그 사람들 수는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특정이 가능한 데도 불구하고 그런 결정이 내려졌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는 지난 2013년 7월 인터넷상 게시글 중 특정 인종이나 지역·여성을 차별하거나 비하하는 내용 또는 역사왜곡 여부를 중점 모니터링해 이 중 100건에 대한 삭제를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삭제 게시물 중 상당수는 일베 게시글이었다.
 

“방심위는 (일베에) 차별이나 비하 이외에도 성매매 음란이나 과도한 욕설 등 청소년 보호활동 강화조치와 대책을 강구하라고 권고했다. (일베 측으로부터) 자체 모니터링을 강화하겠으며 모니터링 담당자를 1인에서 3명으로 늘리고 악성 이용자 이용 해지, 시스템의 일부에서 성인 인증장치를 하는 등 기술적 조치를 취했다는 회신을 받았다.” 방심위 관계자의 말이다. 일베 등에 끊이지 않는 혐오 발언이 방치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여전히 혐오 발언 등이 시정되지 않고 현재도 계속되고 있는 것과 관련, “과거 네이버에 개설된 카페 ‘라도코드’처럼 접근 제한조치, 사실상 폐쇄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과 관련해서는 “일베 스스로가 불법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고, 정상적인 사업자 등록으로 이뤄진 사이트인 것만큼은 사실”이라며 “다만 스스로의 자정 노력이 부족한 것으로 판단해 법·제도적으로 보완 노력을 하고 있다”고 이 관계자는 덧붙였다.
 

 

2014년 12월 10일, 전북 익산시 신동성당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재미동포 신은미씨와 황선 전 민주노동당 부대변인이 진행하는 토크 콘서트에서 10대 학생이 인화물질에 불을 붙인 뒤 투척해 관객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 연합뉴스


법 추진·제재에도 수위 높아가는 까닭은
 

국회에서는 관련 입법이 추진되고 있다.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2013년 11월 일명 ‘증오범죄법’이라고 불리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이외에도 2~3건의 유사법률이 국회 상임위에 상정되어 있다. 이 의원실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혐오나 증오의 양상이 서구와 다르고 사회적 준비가 필요하다는 입법조사처 의견에 따라 일단 증오범죄통계법의 형태로 관련 입안 논의가 진행 중”이라며 “실제 비슷한 법을 2년 전에 제정한 미국의 경우도 연방수사국(FBI)과 법무부가 매년 증오 범죄 통계를 내고 그것을 통해 유형화하는 작업을 했는데, 비슷한 절차로 진행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혐오 발언이나 혐오 행동의 수위는 날로 높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구랍 31일 기자는 한 통의 메시지를 받았다. “…그 결기의 증표로 12월 31일 새벽 3시20분에 원주시 청사 앞 전공노가 세운 불법 시설물을 훼파하였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실천운동본부 대표이자 서북청년단 구국결사대 대장’ 정함철씨가 보낸 문자다. 문자에는 유튜브에 올린 영상이 첨부되어 있다. 1차로 12월 26일 전공노 천막 앞에 걸린 플래카드를 철거했고, ‘불법건축물’인 천막을 31일 새벽에 철거하는 과정을 담은 동영상이다. 정씨가 보낸 ‘이유’는 “새정치연합 출신 원주시장의 비호와 망국의 근원 전공노, 그리고 비겁한 공무원, 노동자 권익을 짓밟는 민주노총, 부도덕한 기업인이 ‘한국노총 소속 환경미화원을 짓밟고 부당 해고하는 만행’을 지켜보면서 반드시 그에 상응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가슴 깊이 다짐하면서” 해당 훼파를 결의했다는 것이다.
 

어디선가 본 듯한 그림이다. 야스다 고이치의 책 <거리에 나온 넷우익>에서 이른바 재특회가 공원의 조선학교 시설을 무력으로 철거하면서 나름의 대의명분(‘피해자인 일본 어린이의 안전’)을 제시하는 대목이다. 구랍 11일 재미교포 신은미·황선씨의 토크 콘서트에서 발생한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의 ‘황산테러’ 사건에 대해서도 일부에서는 안중근 열사 의거에 비유하며 영웅적인 행동으로 성금까지 거둬 격려하는 일이 벌어졌다. 소수자 혐오는 다각적이다. 11월 29일에는 동성애 반대를 내세운 시위대의 점거로 서울시민인권헌장 공청회가 무산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기자가 목격한 사건 현장에는 얼핏 동성애 반대운동과 무관해 보이는 북한인권단체 등의 선전차량이 주차돼 있었다.

일베와 같은 온라인에서 ‘혐오 발언’이 오프라인에서의 ‘혐오 행동’으로 급진화되는 배경은 무엇일까. 주동식 지역평등시민연대 대표는 일종의 역할분담이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를테면 1990년대에 <조선일보>가 시도했던 것은 이념전쟁이다. 하지만 조선일보도 광범위한 독자층이나 비용 지출을 생각하면 못하는 것이 노골적인 빨갱이 사냥이었다. 그래서 그 역할을 대신한 것이 <월간조선>이었다. 일베가 떴다는 것은? 이제 <월간조선>조차 하지 못할 이야기를 누군가 해줘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는 것이다. 빨갱이 사냥으로도 부족하고 대한민국의 체제에서 저 사람들을 찢어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통로로 일베가 된 것이다.” 일베 분석서 <일베의 사상>을 저술한 박가분씨는 “혐오 발언의 오프라인 진출은 일베가 게토화되면서 일어난 현상”이라고 말했다. “이미 대한민국은 보수 일변도의 사회다. 일베가 의도하는 것은 정치적인 자기주장이라기보다는 명확한 대안이나 탈출구를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필사적으로 인정을 추구하는 젊은 층의 삐뚤어진 인정욕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2014년 9월 6일, 세월호 유족 농성장 앞에 모인 일베 회원들이 ‘피자를 먹는 폭식투쟁’을 벌이고 있다. / 백철 기자


극단주의 테러 눈 감는 박근혜 대통령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그렇다고 일베를 재특회와 같은 하나의 ‘집단’이나 ‘단체’로 이해하는 것은 2008년 촛불 당시 ‘아고라’를 하나의 조직으로 취급한 것과 마찬가지로 엉뚱한 오류를 범하게 된다”고 말했다. 일베를 갑자기 출현한 괴물처럼 볼 것이 아니라 이미 2004년, 2005년 전후 뉴라이트전국연합이나 네트워크와 같은 ‘신우익’ 탄생과 동시에 나타난 다양한 극단주의 세력의 부흥, 그리고 이명박 정부 들어 수없이 나타난 ‘올드라이트’ 반공극단주의 세력 확산의 연장에서 나온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덧붙였다. “긴 과정으로 볼 때 일베 사용자들의 일부가 보여주는 행동과 그들이 주장하는 ‘팩트’는 이미 1987년 민주화 이후 우익 중심부에서 꾸준히 제공되어 오던 것이다. 이를테면 지만원씨나 조갑제 기자가 제공한 지식과 정보가 해석의 프레임이자 기본틀로 작동하고, 이것이 다양한 대중적 변형을 거쳐 일베와 같은 커뮤니티 게시판에 떠도는 것이라는 것을 잘 봐야 한다.”


신 교수의 주장은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왜 일베가 출현했을까 논의하는 과정에서 매스미디어가 그들의 사상과 행동을 새로 출현한 하나의 내적 일관성을 갖는 체계인 것처럼 설명하게 되면, 그것을 토대로 조직으로 나가는 의도치 않은 결과로 귀결될 위험이 크다는 지적이다. “냉정하게 평가하면 아직까지 조직적인 단계로 충분히 발전하지 않았고, 우리 사회의 민주적 질서를 심대하게 위협할 구체적인 위험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간주하고 대응하는 것은 이들에게 스스로 순교자이자 앞으로 도래할 미래의 예언자로 착각하게 하는, 자기 정당화 논리를 선사할 위험이 크다.”
 

문제는 이에 대처하는 정부와 시민사회의 태도다. 정치평론가 양대웅 더 플랜 대표는 “혐오 발언이나 혐오 범죄는 표현의 자유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이 현대 민주주의 사회의 역사적 결론”이라며 “문제는 정권 창출과 같은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해서 집권 보수세력이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스스로 파괴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혐오 범죄에 대한 규정이나 법적 제도화가 늦어지는 이유도 “중재하고 통합하려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하며, 그것을 통해 이득을 얻다보니 규제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집권 보수세력이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신진욱 교수는 “한국 상황에서 아직 초보적인 단계에 머무르는 극단주의적인 혐오 발언이나 혐오 행동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법과 제도의 마련뿐 아니라 사회를 이끄는 엘리트와 시민사회의 다수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느냐가 중요하다”며 “문제는 이후 더 심각한 우익 테러리즘을 낳을지도 모르는 사건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종북적 발언을 우려한다’면서도 황산테러는 언급하지 않는 점”이라고 덧붙였다. 우리 사회의 중심부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행위의 정당성을 암묵적으로 인정받은 것으로 ‘오독’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2014년 한국 사회 일각에서 표출된 혐오 발언·혐오 행동을 단지 선명성 경쟁에 목을 맨 일부 보수세력이나 커뮤니티의 치기 어린 폭주로 치부하고 넘어갈 수 없는 까닭이다.

저작권자 © 뉴스프리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