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과 청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서 ‘적폐청산(積弊淸算)’을 한다고 난리를 쳤건만 아직도 공직자의 부정이나 비리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아마 그것은 공직자의 덕목이 실현되지 않아서일 것입니다. 공직자의 덕목은 무엇일까요? ‘공정(公正)과 청렴(淸廉)’ 바로 그것입니다.
정은 어떤 사안을 평가하고 판단함에 있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모든 경우를 동일한 비율로 다루는 것입니다. 그리고 청렴은 마음이 고결(高潔)하고 재물에 대한 욕심이 없음을 의미하지요. 박수량(朴守良 : 1491~1554)의 ‘백비(白碑)’를 아시는지요?
박수량은 조선 명종 때의 문신입니다. 자는 군수(君遂). 청렴한 관리의 대표적인 인사입니다. 벼슬은 우참찬ㆍ좌참찬을 거쳐 지중추부사, 형조판서에 이르렀지요. <중종실록> <인종실록>을 편찬한 고관이었습니다. 장성에 있는 박수량의 ‘백비’에는 어떤 글자도 적혀 있지 않아서 누구의 비석인지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조선 13대 임금 명종은 “그의 청백함을 알면서 비에다 새삼스럽게 그 실상을 새긴다는 것은 오히려 그의 청백(淸白)에 누가 될지도 모른다.” “수량의 청백한 이름은 이미 세상에 알려진 지 오래다.”하고 비를 하사하라고 명합니다. 그리고 그 비에는 한 글자도 쓰지 못하게 하고 다만 그 맑은 덕을 표시하기 위해 이름을 ‘백비’라 부르게 했습니다.
시대가 바뀌면 사람의 의식도 변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청렴이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와 가치는 변함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공직자에게는 가장 기본적인 덕목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청렴의 중요성을 반영이라도 하듯 공직자들은 공직에 입문하면서부터 반부패와 청렴에 관한 교육을 계속해서 받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종 언론매체를 통해 공직자의 비리가 심심찮게 보도 될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생각하는 것과 행하는 것의 괴리(乖離)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 부패방지 업무를 담당하는 국민권익위원회는 매년 공공기관의 청렴도를 측정하고 등급 결과를 발표하고 있습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올해도 어김없이 전국 612개 공공기관의 청렴도를 발표했습니다. 청렴도 평가를 잘 받은 기관은 스스로 언론을 통해 청렴도 평가 결과를 자랑합니다. 하지만 평가 등급이 낮은 기관은 언론의 신랄한 비판을 감수해야 합니다. 이렇게 국민이 공직사회의 청렴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가지는 것은 청렴이 공직자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지요.
청렴은 우리사회를 지탱해주는 중요한 정신적 요소입니다. 특히 공직사회가 청렴하지 않을 경우 결국 그 폐해가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국가공무원법, 지방공무원법에서도 공무원은 직무와 관련하여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사례⦁증여 또는 향응을 주거나 받을 수 없습니다.
2018년도 공직사회 부패수준에 대한 부패인식도 조사결과를 보면 일반 국민의 40.9%가 ‘공직사회가 부패하다’고 응답하였습니다. 하지만 공직자의 경우에는 7.7%만이 ‘공직사회가 부패하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국민이 기대하는 공직사회의 청렴수준이 공직자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높은 수준임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부패에 대한 판단 기준을 공직자는 뇌물이나 향응수수로 한정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국민은 공직자들의 일반적인 비위도 공직자가 청렴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공직자가 자신의 업무를 잘 몰라서 업무 처리를 지연시키거나 미숙하게 처리한다면 국민은 공직자가 무능하고 부패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공직자들은 청렴에 대한 기준을 바꿔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뇌물만 받지 않으면 괜찮다고 생각했는지 몰라도 이제는 아닙니다. 이제 우리 국민이 바라는 공직자상은 청렴은 기본이고 유능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공직자가 청렴하지 못한 것도 큰 문제가 되지만, 무능하여 많은 국가예산을 투자한 정책이나 사업이 실패하여 큰 손실을 끼칠 경우 그 피해가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갑니다. 이것이 공직자가 유능해야 되는 이유인 것입니다.
또한 공정은 조직 내 혹은 사회의 조직생활에서 여러 사람에 대한 대우 또는 이익 배분 등을 기준에 따라 공평히 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국제투명성기구에서 매년 발표하는 부패인식지수(CPI)라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2017년도 순위는 잘 알려진 대로 100점 만점에 54점입니다. 조사대상 전체 180개국 중, 51위이고, OECD 31개국 가운데 29위입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옛사람들이 그리 중시했던 ‘염(廉)’의 의미에는 ‘치(恥)’가 따라야 합니다. ‘염’과 ‘치’어울려 ‘염치(廉恥)’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것은 ‘깨끗함’보다 ‘부끄러움’에 더 가까운 의미가 아닐까요? 중국의 고전『관자(管子)』에 사유(四維)라고 하는 <예⦁의⦁염⦁치>가 나옵니다. 나라를 지탱하는 네 가지 줄기라는 것이지요.
이 말들에 대한『관자』의 설명을 보면, “염은 악을 덮지 않음[廉不蔽惡]이고, 치는 굽음을 좇지 않음[恥不從枉]이다. 그러니까 ‘염치’란 곧 스스로 올곧아져 그릇된 것을 덮거나 추구하지 않는 행위다”라고 했습니다.
『관자』는 여기에 덧보태 “악을 덮지 않으면 행동이 저절로 온전해지고[不蔽惡則行自全], 굽음을 좇지 않으면 거짓된 일이 생겨나지 않는다[不從枉則邪事不生]”고 부연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염’을 잃으면 행동이 편벽되고 ‘치’를 잃으면 거짓된 일을 스스럼없이 행하게 된다는 뜻이지요. 이는 물질적인 깨끗함에 대한 추구를 넘어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을 통해 삶이 지름길의 유혹에 흔들릴 때마다 끊임없이 경고를 해주는 내면의 파수꾼일 것입니다.
《맹자(孟子)》에도 “사람이 부끄러움이 없으면 안 되니, 부끄러움이 없는 것을 부끄러워하면 비로소 부끄러워 할 일이 없게 된다.”고 했습니다. 요컨대, ‘청렴’을 소극적인 의미로만 새길 일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럼 공직자들이 ‘공정과 청렴’을 기르는 방법은 없을까요? 그것은 첫째, 이 몸이 사은(四恩 : 天地 父母 同胞 法律)의 공물임을 알 것이요, 둘째, 인생의 참 가치는 이타(利他)에 있음을 알 것이며, 셋째, 자리(自利)의 결과와 공익(公益)의 결과를 철저히 자각하는 것이지요!
단기 4352년, 불기 2563년, 서기 2019년, 원기 104년 1월 4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