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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칼럼] 인간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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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칼럼] 인간관계

김덕권 기자 duksan4037@daum.net 입력 2019/01/11 08:33 수정 2019.01.14 09:29

인간관계

기해년(己亥年)에는 인간관계(人間關係)가 한층 중요한 해가 되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주위의 사람들과 인간관계를 잘 맺느냐의 여부가 행복과 성공으로 이끌기 때문입니다. 그럼 인간관계란 무엇일까요? 사람들 사이에 맺어지는 개인적이고 정서적인 관계를 통틀어 이르는 말을 인간관계라 합니다.

마음을 터놓고 지낼 수 있는 친구나 동지 두 명만 있으면 인생은 성공한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던 간에 자신을 진실 되게 대해주고, 기쁘면 진심으로 같이 기뻐해주며, 슬프면 진심으로 같이 슬퍼해주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실제로 그런 친구나 동지를 만들기는 굉장히 어렵습니다.

이런 친구들을 가진 사람들은 거의 다 덕(德)이 있거나 사람을 헤아릴 줄 알며, 진심으로 남을 이해하고 진심으로 충고하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마음 놓고 지낼 수 있는 동지나 친구가 많으면 무슨 일을 당해도 든든합니다. 그러나 인간관계의 질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상대방에 대해 개별적인 관심을 갖는 것은 물론, 그것을 표현하고자 하는 노력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그 노력이란 자기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자기중심적인 사고가 줄어들면 상대방이 처한 상황이 보이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자기편의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 것 역시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무(五無)의 사람과는 인간관계를 맺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여기서 오무(五無)는 ‘무정(無情), 무례(無禮), 무식(無識), 무도(無道), 무능(無能)’을 말 하는 것입니다.

첫째, 무정한 사람입니다.

사람은 인간미(人間味)가 있어야 합니다. 눈물도 있어야 되고, 사랑도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무정한 사람이거든 친구나 동지로 삼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인간다움의 첫 조건이 인정(人情)입니다. 이것은 곧 원만한 성품(性稟)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니까요.

둘째, 무례한 사람입니다.

인간은 유일하게 예의(禮儀)를 아는 동물입니다. 공자(孔子)는 예(禮)가 아니거든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말며, 말하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이는 예의가 없으면 인간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무례한 사람은 상종(相從)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말입니다. 맹자(孟子)는 사양지심(辭讓之心)을 ‘예의 근본(根本)’이라고 했습니다. 이 예의는 사양하는 마음에서 나옵니다. 그 사양 심은 양보해주는 마음이고, 속아주며, 져주고 관용(寬容)해주는 마음이지요.

셋째, 무식한 사람입니다.

학문연구는 인간의 특권입니다. 많이 공부한 사람은 대개 사고방식이 합리적이고, 이해심이 깊으며, 인격이 높기 때문에 친구나 동지로 삼기에는 적격(適格)일 것입니다. 보통 ‘무식한 사람을 친구로 삼지 말라’는 말은 지적수준(知的水準)이 비슷해야 된다는 뜻도 될 것입니다.

넷째, 무도한 사람입니다.

사람이 가는 길에는 가서는 안 되는 길이 있고, 되는 길 이 있습니다. 그 길에 충실한 사람을 일러서 도리(道理)를 아는 사람이라 하고, 사명(使命)에 충실한 사람이라 합니다. 그 길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살아가는 사람을 무도한 사람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친구나 동지가 되면 오히려 욕(辱)이 될 수도 있는 것이지요.

다섯째, 무능한 사람입니다.

인간은 창조적 동물이면서 상부상조(相扶相助)할 줄 아는 동물입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곤난(困難)에 처할 때도 있고, 위기(危機)를 만날 때도 있으며, 궁지(窮地)에 몰릴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친구나 동지를 도와주려면 인정(人情)만으로는 안 됩니다. 능력이 있어야 되고 적극성도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무능한 사람은 친구나 동지가 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럼 바람직한 인간관계는 어떤 것일까요? 흔히 ‘정(情)을 나눈다.’는 말이 있습니다. 말을 터놓을 친구나 동지가 없는 것은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서로 배려하고 사랑하는 정이 있기 때문에 마음이 따뜻해지고 정서적 안정과 행복감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관계는 바로 행복의 원천입니다.

인간관계가 왜곡되고 무너지는 원인 중 하나는 ‘이기심(利己心)’일 것입니다. 서로 상대에게 바라기만 하는 것, 나의 이익을 위해 상대를 이용해 먹으려는 마음, 나에게 직접적인 도움이 되면 가까이하고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으면 멀리하려는 이기적 계산 같은 것이지요. 왜곡된 마음으로 얽힌 관계 속에서 참된 인간관계를 맺기는 어렵습니다.

사실 인간관계에서 물질적⦁경제적 도움만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진정한 도움은 그 관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나의 인격적 성장이지요. 공자는 “세 명이 함께 가면 반드시 그 가운데 나의 스승이 있다. 선한 사람으로부터는 그를 본받으면 될 것이고, 불선한 자를 보고는 나의 잘못을 돌이켜봐서 고치면 된다.”고 했습니다.

나를 기쁘고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은 두말할 것 없이 좋은 벗이겠지만, 나에게 고통을 주는 사람은 나를 단련시켜주고 있는 스승인 것입니다. 인간은 관계 속에서 자기 자신을 성장시키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서로 사귀는데 그 좋은 인연이 오래 가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대개 유념할 자리에 유념하지 못하고 무념할 자리에 무념하지 못하는 연고입니다. 유념할 자리에 유념하지 못한다는 것은 자기가 무슨 방면으로든지 남에게 은혜를 입고도 그 은혜를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또 무념할 자리에 무념하지 못한다는 것은 자기가 무슨 방면으로든지 남에게 은혜를 준 후에 보답을 바라는 마음이 있어 저 은혜 입은 사람이 혹 나에게 잘못할 때에는 전일에 은혜 입혔다는 생각으로 더 미워하는 마음을 일어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이치를 잘 알아서 유념할 자리에는 반드시 유념하고 무념할 자리에는 반드시 무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라는 바가 없어야 합니다. 그러면 서로 사귀는 사이에 그 좋은 인연이 오래 가게 되고, 그 인연이 낮은 인연으로 변하지 않게 되는 것이지요!

단기 4352년, 불기 2563년, 서기 2019년, 원기 104년 1월 11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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