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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칼럼] 자살공화국
오피니언

[덕산 칼럼] 자살공화국

김덕권 기자 duksan4037@daum.net 입력 2019/01/15 06:20 수정 2019.01.16 08:24

자살공화국

요즘 살기가 어려워서인지 자살 사건이 연이어 터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9월 포항 국도변 승용차서 20~30대 4명 쓰러진 채 발견 되었고 그 중 한명이 죽었습니다. 또 최근에는 택시 운전사가 ‘카카오 택시 법’에 반대하며 연이어 분신자살을 감행했습니다.

왜 이렇게 이런 불행한 사태가 연 이어 벌어지는 것일까요? 2005년부터 2017년까지 대한민국이 OECD 나라 중 자살률 1위였다는 건 이미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특히 2012년 통계에서는 OECD 평균에 비해 2.6배 높은 1등이었습니다. 그리고 2018년에는 OECD 2위를 기록했다고 하네요. 이것은 자살률이 떨어진 것이 아니라 한국보다 자살률이 더 높은 리투아니아가 새로 OECD에 새로 가입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한국의 자살률은 OECD를 넘어 전 세계 순위에서 최 상위권에 있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자살은 현대로 올수록, 즉 과학기술이 발전할수록, 거주하는 사회가 조밀해질수록, 국민소득이 높아질수록 더욱더 심해집니다.

자살!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런데 자살도 행위이니 과보(果報)가 없을 수 없습니다.《화엄경(華嚴經)》에「온갖 중생은 자기의 번뇌로 지어진 업(業)에 의해 그 몸과 사는 세계를 스스로 만들어 간다. 하나하나 자기의 몸과 사는 세계와 수용해 지니는 것을 스스로 이루는 것이지, 업을 제쳐놓고 다른 무엇이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업은 살아있는 동안 지어서 받는 현세 보(現世報)도 있지만, 죽은 뒤나 먼 미래에 받는 미래보(未來報)도 있습니다. 그래서 자살을 하는 것이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해도 자신에게 업을 짓는 것이 되므로 언젠가는 그 과보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 자살의 과보는 여러 가지의 형태로 나타날 수 있는데, 다음생의 몸을 받을 때, 지옥에 떨어지거나, 목숨에 대한 고통을 겪거나, 일찍 죽게 되는 과보를 받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자살의 과보가 무섭지 않으신가요? ‘자살’을 반대로 읽으면 ‘살자’입니다.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은 역으로 보면 가장 살기를 소망하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소태산(少太山) 부처님께서는 “살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죽어지는 이치를 알지 못하고, 자살을 도모하는 사람이 다시 살아지는 이치를 알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우리가 정신수양을 하는 것은 최종적으로 자살을 방지하고, 온전한 정신을 얻어 자주력을 양성하기 위해서 수양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이 세계적으로 부끄러운 통계가 있다면 ‘자살공화국’이라는 오명일 것입니다. 어쨌든 한국의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2003년부터 15년 동안 ‘부동의 1위’입니다.

우리가 주목할 대목은 자살률이 유독 눈에 띄게 증가한 시기에 늘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등 경제위기가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럼 우리 한국이 왜 유독 경제위기 때 자살률이 치솟을까하는 문제입니다. 대개 자살의 원인을 개인의 문제로만 보는 경향이 많은데 우리나라는 경제, 사회적 요건도 크게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한국은 사회안전망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경제성장이 급속도로 이뤄지고 노동시장 유연화가 가속화되는 과정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늘었습니다. 사람들은 좋고 나쁘고를 떠나 급격한 환경이나 체제 변화에 인간은 가장 큰 혼란과 스트레스를 겪게 됩니다.

외환위기,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 우리나라가 위기를 극복한 방법은 금융사들이 해고를 늘리고 채권을 회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제일 먼저 취약계층들에게 타격이 왔습니다. 그리고 자살의 또 다른 특징은 점염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회학자인 데이비드 필립스(David Fhilips)는 20년 간 자살을 연구하여 유명인의 자살이 언론에 보도된 후 자살률이 급증하는 베르테르 효과를 입증하였습니다.

‘베르테르 효과’란 자살 사건이 신문 등의 미디어를 통해 크게 알려지면, 이후 모방 자살이 증가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괴테(Goethe)의『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인기를 끌자, 유럽 전역에서 소설의 주인공인 베르테르처럼 권총 자살하는 사건이 확산된 현상에서 유래한 것이지요. 주로 유명인이나 충격적인 자살 사건이 대대적으로 보도되면 비슷한 형식의 자살이 늘어난다는 이론입니다.

성균관의대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의 전홍진 교수팀도 한국에서의 베르테르효과를 입증했습니다. 유명인 1명이 자살하고 한 달 간 하루 평균 자살 빈도가 36.2명에서 45.5명으로 25.9%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일본의 대표적 베르테르 효과는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며 ‘설국(雪國’의 작가인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효과입니다. 가와바타가 자살을 하자 약 3000명이 동반 자살을 시도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후 일본은 자살 방지법을 만들어 자살의 동기, 도구, 방법 등을 언론에서 공개하는 것을 금지시켰습니다.

우리가 정신수양을 하는 것은 최종적으로 자살을 방지하고 온전한 정신을 얻어 자주력을 양성하기 위해서 수양을 하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자살을 방지하는 가장 완벽한 방지책은 바로 원불교의 삼학수행(三學修行)인 ‘정신수양, 사리연구, 작업취사’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자살을 기도하는 사람은 살고자 하는 욕망이 지나친 사람인 것입니다. 하지만 자살하는 심정이 오죽할까요? 세상에 대한 원망이나 분노, 슬픔, 괴로움으로 자살하기 마련 아닌가요? 이런 상황에서 좋은 과보를 바라는 것은 매우 힘들 것입니다. 혹 다음 생에 대한 기대로 자살한다고 해도, 그건 욕심에 속해서 나쁜 곳에 태어날 가능성이 높은 것이지요.

만에 하나 자살을 결심했더라도 세상에 대한 원망, 분노, 슬픔, 등등의 해로운 마음을 가진 채 죽어버리면, 결과가 좋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법상한 사람들은 현세(現世)에 사는 것만 큰일로 알지마는, 지각(知覺)이 열린 사람은 죽는 일도 크게 압니다.

그것은 잘 죽는 사람이라야 잘 나서 잘 살 수 있으며. 잘 나서 잘 살 수 있는 사람이라야 잘 죽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삼학수행으로 자살공화국의 오명을 벗어나면 어떨 까요!

 단기 4352년, 불기 2563년, 서기 2019년, 원기 104년 1월 15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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