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능(揚能)
《참전계경(參佺戒經)》제249사(事)는 <양능(揚能)>입니다. <양능>이란 남의 장점을 드러내
힘껏 발휘하도록 도와주는 일이지요. 밝은이가 다른 사람의 훌륭한 능력을 발견하면, 마음으로 먼저 기뻐합니다. 그리고 칭찬의 말을 아끼지 않지요. 이는 훌륭한 능력을 가진 사람은 더욱 훌륭하게 힘쓰게 하고, 훌륭한 능력을 갖지 못한 사람은 이를 본받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럼 여기서 ‘밝은이’란 누구일까요? 그 밝은이를 우리는 ‘스승’이라고 합니다. 스승의 뜻은 상담 상대, 지도자, 멘토, 선생 등과 같은 뜻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지도를 받는 사람을 제자 또는 ‘멘티(Mentee)’라고 하지요. 한 대기업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 멘티가 멘토를 필요로 할 때를 알아보았다고 합니다.
그것은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고, ‘불확실한 미래로 두려울 때’, ‘지식이나 노하우가 부족할 때’, ‘마음 속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을 때’라는 답이 뒤를 이었습니다. 이런 일들은 누구라도 사는 동안 피하기 힘든 어려움이니, 동시에 스승이 꼭 필요한 이유가 아닐까요?
스승과 제자 사이에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입니다. 둘 사이에 신뢰가 없으면 아무리 뛰어난 지혜나 지식도 힘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대부분의 경우 스승은 가까이에서 지혜와 용기를 주며 이끌어주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올바르고 이상적인 스승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능력을 갖춰야 하는 것일까요?
1. 스승은 제자에게 조직에서 필요한 업무 역량을 파악하고 전수할 수 있어야 합니다.
2. 스승은 자신의 모습 자체로 제자의 롤 모델이 되어야 합니다.
3. 스승은 조직에서 뿐만이 아니라 친구의 입장에서 도움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4. 스승은 사회적인 인맥을 자연스럽게 형성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어야 합니다.
5. 제자의 업적을 평가해 줄 수 있는 정보와 소문을 알려줄 수 있어야 합니다.
6. 제자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개발하도록 도와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스승은 이 여섯 가지 능력뿐만이 아니라 몇 가지 행하여야 할 덕목이 더 있습니다.
첫째, 제자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요소 한 가지만으로도 사제관계에서 두려움을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랑은 스승이 제자를 변치 않고 책임질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둘째, 제자를 격려하는 것입니다.
좋은 스승은 격려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스승은 인정해 주는 사람, 즐겁게 해 주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너는 해낼 수 있어!’ 제자에게 이런 말을 끊임없이 해 주는 것입니다. 현대의 비극 가운데 하나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자신들을 믿어 주고 장래의 가능성을 발휘하도록 격려해 주는 사람들과의 교류가 거의 없다는 사실입니다.
셋째, 스승은 솔직해야 합니다.
제자에게 자신의 성공뿐 아니라 실패도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 역시 완벽하지 않다’라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제자에게 변명할 구실을 만들어 주려는 것이 아니라, 더욱 현실적인 안목을 심어 주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넷째, 제자를 이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스승의 할 일은 제자를 성장시키는 것입니다. 스승의 개인적인 목적을 위해 제자를 이용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훌륭하게 보이려고 제자를 이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다섯째, 긴장을 풀어야 합니다.
젊은이들은 스승을 원합니다. 그들은 대부분 제자로 삼아 주는 것을 고맙게 여기고 가슴 벅차 합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사제관계에 임하는 것입니다. 제자를 사랑하고 그들에게 관심을 가집니다. 제자를 만날 때는 ‘너의 우선순위는 무엇이냐?’ ‘어떻게 도와줄까?’ 하고 물으며, 긴장을 풀고, 사제관계를 편한 마음으로 즐기는 것입니다.
배우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가르치기 쉽고, 배우고자 하는 열정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스승을 모시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름지기 스승이란 그들을 사랑하고, 도전을 시키며, 지도하고, 확신을 주고, 평생친구라는 자부심을 지닐 정도로 그들을 절친한 친구로 삼아야 합니다.
그리고 스승과 제자 사이에는 자주 챙겨야 하는 처지와 특히 챙기지 아니하여도 좋은 처지가 있습니다. 자주 챙겨야 하는 처지는 안 챙기면 틈이 생길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제자는 아직 알뜰한 권속이 다 되지 못한 것이지요.
특히 챙기지 아니하여도 좋은 처지는 의리와 인정이 형식에 구애되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마음을 합하고 기운을 연한 알뜰한 권속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사제 간에 상대할 때에 사량(思量)과 방편(方便)을 쓸 필요가 없게 되고, 제자가 스승을 모실 때에는 기망(欺罔)과 조작(造作)이 없게 되면, 그 사이에는 자연 대의(大義)가 확립되고, 법맥(法脈)이 연하게 되어 법이 건네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일원대도(一圓大道)》에 귀의(歸依)하고 한 몇 년 스승님의 지도를 받다보니 무얼 좀 아는 것 같이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 엉덩이에 뿔이 나기 시작했지요. 눈에 베는 게 없었습니다. 그 꼴을 보다 못한 스승님께서 엄한 꾸중이 내려 졌습니다. 제 마음대로 할 바에는 이 회상(會上)을 떠나라는 것이지요.
그야말로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질 만큼 엄한 질책이었습니다. 그제 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정말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습니다. 그날부터 지금까지 삼십 여년이 넘도록 저는 스승님의 명령이라면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했습니다. 그런 엄한 질책과 무한한 자비가운데 비로소 진리에 눈을 뜨고 이제야 겨우 이 정도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스승님이 아니시면 이 우매한 중생이 어찌 정당한 사람의 도리를 깨쳐 <양능>의 길을 갈 수 있었을까요!
단기 4352년, 불기 2563년, 서기 2019년, 원기 104년 1월 17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