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대구=문해청 기자] 시민과 함께하는 역사탐방단(총무 이상균, 역사해설 류돈하, 기획 진행 주형돈 등)은 19일 남구 대명동 소극장 ‘함께 사는 세상’(약칭 함세상)에서 野星 강창덕 선생(93세) 토크콘서트를 척박한 식민지조국의 근·현대사의 고통과 시련의 삶의 이야기를 문화공연과 함께 개최했다.
토크콘서트에는 범민련 한기명 의장, 이용수 선생, 강성덕 고문, 남칠우 위원장, 이헌태 위원장, 김태용 대표(문예미학사), 박형룡 대표(DASCO), 박정희 의원, 이경숙 의원, 안경완 의원, 김종련 대표(연인무대), 최창희 본부장(인카금융서비스 대구), 서재헌 위원장, 윤선진 교수, 차우미 교수, 손종남 교사, 김정희 평통위원 등 지역의 시민이 자리를 함께 했다.
경북 경산에서 출생한 강창덕 선생(약칭 강 고문)은 청소년시절부터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처음으로 강 고문은 17살 때 북만주 무장독립군 활동을 얘기하다 반일사상 고취 혐의로 구속되었다.
이후 내가 조국독립을 위해 싸우지는 못할망정 일본군을 위해 전쟁터에 가고 싶지 않다는 마음으로 1945년 일본군 징병거부를 하여 일제 헌병에 의해 또 다시 구속되었다.
과거 대구상고 학생시절 1947년 대구 공회당에서 미군정을 비판하다 공회당(현재 시민체육관) 웅변대회 소요사건에 연류되어 포고령위반 혐의로 구속되었다. 1952년 한국전쟁 중에 동족상쟁의 피비린내 나는 북미전쟁을 반대하는 북진통일 무력통일을 공개적 반대하는 주장과 평화통일을 주장하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었다.
또 1961년 군부 쿠테타를 일으킨 박정희 군부 독재정권에 저항하는 반공법 제정반대 집회 등으로 2차례 구속되었다. 이후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사건과 인혁당(인민혁명당)사건 등으로 친일파 자유당 정권, 군사독재정권에 의해 총 7차례 투옥되었다.
그는 대구상업학교와 건국대 정치학과를 졸업했으며 1956년 영남일보 공채 1기로 입사해 정치부 기자로 활동했고 열혈혁명당원(레지탕스)으로 사회변혁운동에 헌신하며 불꽃처럼 참여했다.
강 고문은 1974년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구속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이후 8년여 간 복역하다 1982년 형집행정지로 출소했다. 2006년 국무총리실 소속 '민주화운동 명예회복·보상심의위원회'에서 '민주화운동관련자'로 인정받아 2007년 서울중앙지방법원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현재 강 고문은 평화통일에 대한 열정 뜨거워 이용수 선생님께서 젊은 오빠라고 애칭하며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했다. 이에 강 고문은 93세 나이에도 불구하고 평화통일대구시민연대 상임고문, 남북평화나눔운동본부 고문 등을 맡고 있다.
토크콘서트 사회를 탁월하게 봐준 차우미씨, 대담을 해주신 김두현 의원, 해설을 맡아주신 류돈하 역사학자, 강 고문의 자작시 “시월항쟁의 조약돌”을 낭송한 김종련 대표(연인무대), 강 고문의 마술을 입증해준 마술사 루시 등의 진행으로 대구시민의 화합으로 역사와 문화로 마음과 힘을 진솔하게 보여준 행사였다.
다음은 “끝나지 않은 식민지의 시월” 대구경북작가회의 10월 문학제 2017년 시첩에 실린 강 고문의 시(詩)이다.
[10월 항쟁의 조약돌] // 들별 강창덕 // 36년의 적막을 깬 8.15 // ‘개다’소리 ‘일장기’ 사라진 이 강산 // 울려 퍼진 해방만세 독립만세 / 밤을 지새운 백의민족의 환희 감격 / 어느 날 갑자기 보기 드문 태극기 / 북한산 밑 광화문엔 성조기 물결 //
만세소리 태극기 / 노랑머리 군홧발에 휘말리고 / 다시 시작한 고난의 길 한숨의 길 // 아~ 슬픈 역사여! // 탕탕, 탕탕, 또 탕탕 // 한밤중 총소리 ~~ / ‘전평 사무실’ 앞 태평로에 / 쓰러진 시신 두 구 / 싸늘한 죽음은 메마른 노동자 //
기억해야 할 1946년 10월 1일 / 분노의 파도는 2일 오전부터 / 대구에서 경북으로 / 영남과 호남 그리고 한강 이남 / 10월 항쟁의 불길은 요원의 불바다로 / 도청(현 경상감영공원)앞 넓은 아스팔트 길 / 밟고 지나가는 성난 물결의 함성 //
시신을 들것에 맨 시위대는 / 대구 의전(현 경북대 의대) 학생들 / 뒤따르는 시민과 청년 학생들 // 외치는 구호는 ‘경찰은 무장해제하라’ 는 절규 / 삽시간에 운집한 대구경찰서 <현 중부경찰서> 앞 네거리 // 인산인해로 뭉치고 뭉친 분노의 파도, 파도 //
경찰 고문관 미군 장교 그리고 군정 경찰 간부 / 시민대표의 요구대로 굴복, 굴복 / 민중의 승리였어라! 민중의 승리였어라! // 대구 시내 골목골목, 악덕 경찰 친일파, 악덕 모리배 등등 / 처벌과 처단 살벌한 풍경과 풍경 //
보기에도 전율을 느끼게 한 민중의 응징, 또 응징 / 쾌재를 부르는 짓밟혀온 시민들의 얼굴, 얼굴 // 아 그러나 / 뜻밖에 나타난 미군 장갑차! / 검은 안경, 전투복, 무시무시한 기관총의 총알 //
일촉즉발의 공포의 도가니 / 수 천 수만의 시위 군중을 겨누는 해산 촉구, 진격, 또 진격 / 충천하는 반미의 함성, 분노의 함성 // 또 한 번 약소민족의 설움과 눈물 / 해방만세, 독립만세 소리, 귀에만 쟁쟁 // 응원 온 충청도 경기도 경찰에 쫓긴 항쟁의 용사들 / 산으로 산으로 가족을 버렸다 //
그것이 세칭 산사람, 야산대, 구빨지로 / 수많은 민중의 희생, 상당수의 경찰관 희생 / 아직도 떠도는 수 천 수만의 원혼들 // 분단극복, 통일의 길 함께 함께 하기를~~~ / 분단극복, 통일의 길 함께 함께 하기를~~~
강창덕 <작가약력> 10월항쟁 현장 참가자(1948년 10월 2일), 민자통 고문, 6.15대경본부 고문, (사)4.9인혁재단 이사장, 경산 코발트광산 피학살 사건 전국 최초 보도, 일제저항, 평화통일, 민주화운동 관련 7차 투옥(13년 복역)
이날 더불어 민주당 대구시당 남칠우 위원장은 “진실한 삶의 감동으로 너무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고 지금도 쿵당거리는 가슴이 먹먹하기만 했다.”고 참가했던 소회를 밝혔다.
김우철 사무처장은 "고문님께서는 일곱 차례의 투옥과 시련 속에서도 민족과 민주주의를 향한 집념을 변치 않으신 위대한 민주당원이시다. 자기희생과 헌신, 화합과 단결이 더없이 요구되는 대구시당에 있어서 야성 강창덕 고문님은 모든 당원의 본보기요 참스승이시다."
"토크쇼와 뒷풀이 과정에서 보여준 대구시당 당원들의 화기애애하고 단결된 모습은 시당의 발전을 위한 당원들의 역량을 여과 없이 보여줬다."며 잔잔한 소회를 밝혔다.
김태용 대표(문예미학사)는 “척박한 대구 경북에서 한 점 부끄럼 없이 오직 평화통일에 한길을 걸어왔던 삶을 생각하면 가슴이 찡하고 눈물이 난다.”고 청강했던 소감을 담담하게 밝혔다.
멀리 충남 세종시에서 달려온 박형룡 대표(DASCO)는 “젊은 청춘의 열정으로 긴 세월동안 끈질기고 일관되게 한 삶을 토크콘서트를 통해 더욱 깊이 있게 알게 되었고 교훈이 되었다.”하며 더 낮은 자세로 시민과 함께 하겠다고 다짐했다.
대담자 김두현은 현대사 민주화운동 평화통일의 길에서 평생 헌신한 야성 강창덕 선생님의 새로운 역사의 장이다. 93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생생한 사실증언은 감동과 울림이다. 어느 누가 말했던가? 개인의 삶이 역사와 일치할 때 인간의 삶은 참으로 아름답고 진정 존엄존귀하다.”고 진중한 역사관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