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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칼럼] 배려(配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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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칼럼] 배려(配慮)

김덕권 기자 duksan4037@daum.net 입력 2019/01/22 00:47 수정 2019.01.24 01:02

배려(配慮)

요즘 사람들이 남을 전혀 배려(配慮)할 줄 모르는 것 같습니다. 특히 젊은 세대들이 대부분 자기밖에 모르지요. 이를테면 여닫이문을 닫을 때 뒷사람을 생각하지 않는 것, 주차장에 그어 놓은 차선을 무시하고 차를 세워 다른 차를 세울 수 없도록 하는 것, 출입문을 조심스럽게 닫지 않고 꽝하고 닫아 다른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하는 것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조직생활에서는 언제나 주위를 배려해야만 합니다. 혹시 내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는가를 먼저 살펴야 하는 것이지요. 그래야 원만한 조직생활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남을 먼저 배려할 때 우리의 주변은 훈훈한 정(情)이 넘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저 사람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인가를 늘 생각해야 합니다.

우울해 보이면 무엇 때문에 그런지 물어봅니다. 몸이 불편하다면 자신의 능력껏 도와주며, 그 사람의 생활에 무엇이 필요한지,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이러한 조그마한 배려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듭니다.

배려란 여러 가지로 마음을 써서 보살피고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관심을 가지고 도와주거나 마음을 써서 보살펴 주는 것이지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는 다툼이 참으로 많습니다. 다툼과 갈등은 외부의 관계에서도 발생되지만 내면의 세계에서 생기는 갈등도 적지 않지요. 내면의 욕망과 욕망의 갈등, 이성과 감정의 갈등 등,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습니다.

우리 인간은 참으로 복잡하고 다양한 갈등과 다툼을 가지고 있습니다. 조직생활을 시작할 때에는 갖가지 다툼 없는 활동하기를 발원(發願)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처님의 《육화경(六和經)》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육화경》은 세상의 어느 조직에서라도 실천하기만 하면 매우 큰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첫째, 견화동해(見和同解)입니다.

동지들끼리 목표와 방향성 그리고 견해가 일치해야 합니다. 조직원 전원이 동의하는 공동의 견해를 세우면 그 견해를 바탕으로 화합하고 서로 공경할 수 있는 것이지요.

둘째, 계화동수(戒和同修)입니다.

같은 규칙으로 화합해야 자기의 잘못을 고치고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각자의 규칙을 주장하면 갈등과 다툼이 생겨납니다. 조직에는 공동으로 지켜야할 규칙이 있습니다. 그 규칙을 지켜야 공동의 이익과 개인의 이익을 원만하게 얻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 신화동주(身和同住)입니다.

몸과 몸의 기운이 화합해야 함께 조직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자비심을 바탕으로 몸과 말과 마음의 행위를 서로 배려하여야 합니다. 조직 안에서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성실하게 실천하고, 나아가 다른 사람에 대하여 너그럽게 배려하는 행위를 하는 것이지요.

넷째, 구화무쟁(口和無諍)입니다.

많은 불화가 입으로 말하는 것 때문에 생깁니다. 순간의 이익과 편리를 위해 또는 일시의 통쾌함을 위해, 우리는 거짓말, 이간하는 말, 상처 주는 말, 그리고 유혹하는 말 등을 합니다. 그래서 정직하고 자비스러우며 배려하는 말의 습관을 길들여야 합니다.

다섯째, 이화동균(利和同均)입니다.

이익이 생기면 공동의 이익으로 돌리고 개인은 검소하고 청렴한 생활을 기본으로 합니다. 보살핌이 더 필요한 사람이 생기면 공동의 동의하에 배려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개인은 따뜻하고 간결한 생활을 근간으로 하는 것이지요.

여섯째, 의화동열(意和同悅)입니다.

마음이 서로 화합해야 함께 지내며 함께 기뻐하게 되는 것입니다.

장 프랑수아 밀레(Jean-François Mille : 1814~1875)는 프랑스의 화가입니다. 그는 ‘이삭 줍기’ ‘만종’ ‘씨 뿌리는 사람’ 등 농부들의 일상을 그린 작품으로 유명합니다. 그리고 그의 친구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 : 1712~1778)는 스위스 제네바 공화국에서 태어난 사회계약론과 직접민주주의자, 공화주의자, 계몽주의 철학자입니다.

밀레는 지금은 세계적으로 알려진 화가였지만, 처음부터 그의 그림이 인정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그림을 눈여겨 봐왔던 것은 평론가들이 아니라 그의 친구 사상가 루소였습니다. 작품이 팔리지 않아 가난에 허덕이던 밀레에게 어느 날 루소가 찾아왔습니다.

“여보게, 드디어 자네의 그림을 사려는 사람이 나타났네.” 밀레는 친구 루소의 말에 기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의아했지요. 왜냐하면, 그때까지 밀레는 작품을 팔아본 적이 별로 없는 무명화가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루소는 이렇게 말하며 밀레에게 300프랑을 건네주었습니다.

입에 풀칠할 길이 없어 막막하던 밀레에게 그 돈은 생명줄이었습니다. 또 자신의 그림이 인정받고 있다는 희망을 안겨주었지요. 몇 년 후 밀레의 작품은 진짜로 화단의 호평을 받아 비싼 값에 팔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경제적 여유를 찾게 된 밀레는 친구 루소를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몇 년 전에 루소가 남의부탁이라면서 사간 그 그림이 루소의 거실 벽에 걸려있는 것이 아닌 가요!

밀레는 그제야 친구 루소의 깊은 배려의 마음을 알고 그 고마움에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가난에 찌들려 있는 친구의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 사려 깊은 루소는 남의 이름을 빌려 밀레의 그림을 사주었던 것이지요. 이런 인간관계는 인생을 아름답게 사는 밑거름이 되게 하는 큰 배려일 것입니다.

이렇게 조직과 자기를 하나로 보고 활동하는 사람은 남이 알아주든 몰라주든 언제나 마음이 한가롭습니다. 그러나 조직과 자기를 둘로 알고 활동하는 사람은 몰라주면 야속하고 원망이 나오게 됩니다. 그러나 조직의 주인은 항상 너그럽고, 앎이 많으며, 서로 화합하고 배려하는 동지이어야 합니다.

우리 덕화만발 가족은 서로 남이 아니요 여러 생을 함께한 다정한 형제간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사랑하기를 금(金)같이 하고, 서로 위하기를 옥(玉)같이 하며, 서로 배려하고 화합하면 영생을 일관할 지중한 인연이 되는 것이지요!

단기 4352년, 불기 2563년, 서기 2019년, 원기 104년 1월 22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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