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옷이 젖은 상태에서 힘없이 산사의 찻집으로 들어섰다. 마침 다실 내에는 주지스님으로 보이는 분이 공양을 하며 몇 사람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선거를 앞둔 정치의 계절이라 절간에서도 정치얘기가 이어졌다. 우리는 이방인이라 끼어 들 수 도 없어서 차만 홀짝이며 대화의 연결고리를 찾아 자연스럽게 “만덕산방”(토굴)을 알아내고자 하였다.
나는 김 사장한테 불교대학원사무총장 직함으로 주지스님께 부탁을 해보라고 넌지시 말하였다. 그는 용기 있게 주지스님(여연)께 큰 절을 하고 명함을 내밀자 “아이고 나는 정치는 잘 모르고 아무 것도 모르요.”남 도 특유의 말투로 손사래를 치신다. “정치 얘기가 아니고 불교대학원....”얘길 하자 여연 스님은 그제서야 “내가 실례했습니다.” 하고 몇 마디 대화를 나눈 후 휭하니 나가버린다.
0
여연 스님과 대화를 나누던 윤거사라는 분은 우리의 얘길 듣고 정체를 밝히시면 주지스님께 보고를 드려 결정할 사항이지 절대로 면담 자체가 불가하다는 얘기를 하였다. 기대했던 우리는 뻘쭘해졌다. 김 사장은 나에게 정공법으로 정체를 밝히고 부딪쳐 보라고 권유한다. 하지만 수많은 취재기자들이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정식으로 인터뷰에 응한 적이 없기 때문에 망설여진다. 더구나 야당 원내대표까지 만나러 갔어도 만나주지 않고 돌려보냈던 사실이 나를 더욱 움츠리게 하였다. 하지만 다른 뾰족한 방법이 없어서 정식으로 인사를 하고 명함을 건네주었다.
그런데 명함을 받아든 윤거사라는 분이 내가 쓴 기사를 읽었는지 내 이름을 알고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역시 주지스님께서 한 눈에 알아 보셨네요.”하며 빙긋이 웃는다. 서광이 조금은 보였다. 이 시골에 유명하지도 않은 나의 졸고가 알려져 있다는 게 신기하고 반가웠다.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했더니 명함이 없다며 메모지에 이름과 찻집의 전화번호만 써주었다. 적잖은 실망이었다.
하지만 손 대표께서 점심때 식사를 하러 공양간에 오신다는 소식을 알려주어 한 가닥 희망을 안고 기다리기로 했다. 우리는 또다시 좋은 묘안이 없을까 궁리하며 대화를 나누는 사이 그는 배낭을 메고 밖으로 나가 버렸다. 김 사장은 장흥의 산소에 갔다 오겠노라고 나를 남겨둔 채 떠나갔다. 난 공양간 답사를 나갔다.
어차피 혼자인 나는 어떻게 하면 만날 수 있을까를 궁리하며 산사의 뜰을 걷고 있었다. 예사롭지 않은 산사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고 있을 때 윤거사라는 분이 반갑게 다가오며 자기를 따라오라고 하였다. 그는 선방을 지나 그토록 찾고자 했던 “만덕산방”을 알려주며 자기가 안내했다고 하지 말라며 산비탈을 내려갔다. 가쁜 호흡을 내쉬며 산비탈을 올라가면서 지난 2월 초 쓴 “손학규의 선택”기사를 스마트 폰으로 찾아 빠르게 읽어 나갔다.
산비탈을 휘돌아 한참을 오르자 마침내 그토록 찾아 헤매던 “만덕산방”이 시야에 나타났다. 반가웠다. 하지만 그곳에도 경계의 문이 둘러쳐 있었다. 제주도에서 출입을 금지하는 표시로 긴 장대나무를 막아놓듯이 들어오는 것을 금지하는 뜻으로 길을 막아놓고 있었다. 죽림의 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서자 일명 “순덕”이라는 제법 큰 진돗개가 짖지도 않고 나를 반긴다. 미국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43대)이 휴가를 갈 때면 공군1호기에 애견을 태웠는데 그 모습이 순덕이와 오버랩 되었다. 나또한 집에서 말티즈 “탱글이”를 키우고 있어 녀석을 살갑게 대해주었다.
손 대표의 부인 이윤영 여사는 화장기 없는 순수한 모습 그대로 엷은 미소를 머금은 채 반갑게 맞아주었다. 여사께서는 처마 끝에 달린 벌집을 바라보고 신기해하며 무언의 말을 건넸다. 이 여사는 시국사범으로 형을 산 서대문구치소에서 손 대표를 처음 만났다고 한다. 이화여대 약대에 다닐 때 독서회 회원으로 활동하다 체포됐고, 손 대표는 학생운동과 불온서적 소지혐의로 잡혀와 있었다. 그 후 손대표가 학생운동과 수배로 집을 떠나 있을 때 약국을 열어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고 한다.
나는 “만덕산방”을 오르느라 숨도 차고 목이 말라 뒤뜰에 있는 옹달샘을 찾았다. 나무로 된 덮개를 열자 천하의 일품인 청정 샘물이 있었다. 맑은 물을 한바가지 떠서 마셨다. 산비탈을 오르느라 목말랐던 갈증이 한 순간에 가셨다. 뒤뜰을 돌아 앞마당으로 나오자 어제 저녁부터 그 토록 만나 뵙고 싶었던 손 대표께서 환한 미소를 지으시며 반갑게 맞아주셨다.
“어제 왔었는데 손 대표님을 만나 뵈는 게 너무 힘들었습니다.”
알듯 모를 듯 미소만 지으시면서 차를 끓이시기에 바쁘다.
“어디서 주무셨어요?” “강진 읍내에서 여장을 풀었습니다.”
“언론사 기사마다 손 대표께서 기거하고 계신 이곳이 토굴, 토담집, 흙집 등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시간이 흘러 다산 정약용 선생, 초의 선사에 이어 손 대표님의 이름도 오르내릴 것 같은데 정확한 명칭은 무엇입니까?” (파안대소를 하며)“스님들이 토굴이나 암자에서 도를 닦기도 하고 연세가 들어 살기도 했었는데 이곳이 바로 그곳입니다. 70년대 지어진 토담집으로 “만덕산방”이 원래 명칭이죠.“
딱딱한 국내 정치를 얘기하는 것 보다는 국제정세의 흐름과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안보에 대한 견해를 듣는 것이 우선 일 것 같아 지난 번 러시아에 다녀온 얘기부터 시작했다.
“러시아에서는 우리나라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서운하게 생각하죠.”
그는 지난 1월 25일 6박 7일 일정으로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극동연구소 초청으로 러시아를 방문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러시아의 역할'을 주제로 강연했었다.
손학규 전 대표는 "19세기 러시아가 한반도 주변열강 중에서 한반도를 차지하려는 영토적 야심이 없었던 유일한 국가였다"면서 "냉전체제 해체로 한반도 긴장완화에도 기여했으며 푸틴정부가 추진하는 신 동방정책은 남북,러 협력관계의 객관적 조건을 형성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반도 평화를 유지하고 국제적으로 일류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남북관계를 안정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우리가 주도적으로 북한에 대한 지하자원 개발과 인프라 투자를 하면서 러시아와는 시베리아 경유 유라시아 철도건설과 북한을 경유한 가스관 건설 등 투자와 협력으로 북한을 개방경제로 이끌고, 장차 통일을 대비하여 러시아의 협력을 이끌어 내야한다고 주장한다.
세계질서가 G2로 재편되는 시점에 미중이 충돌하는 한반도에서 우리의 외교가 기로에 서 있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박근혜 대통령이 제안한 5자 회담에 대해서도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대통령이 제의를 했는데 중국과 러시아가 정면으로 거부를 했잖아요. 이건 외교적인 재앙“이라고 주장했다.
진보정권 10년 동안 남북관계 개선과 경제협력으로 우리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이 확대됨에 따라 북한은 남한 의존도가 높아져 긴장이 완화되고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명박, 박근혜 보수 정부 8년 동안 지나친 등가성 원칙주의에 매몰, 남북교류의 상징인 개성공단도 폐쇄되고 남북교류가 완전히 단절되어 대신 중국과 러시아의 북한투자가 확대되었다.
이는 북한의 대중국,러시아에 대한 종속이 강화됨으로써 우리의 영향력은 축소될 뿐만 아니라 통일의 주도권도 빼앗겨 우리가 원하는 남북협력과 평화유지, 평화통일의 길이 더 요원해지게 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하면 보수 세력의 북한 퍼주기에 대한 비판이 두려워 남북교류와 경제적 협력을 소홀히 한 대북정책의 패착이라고 할 수 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갈파했다. 1905년 러일전쟁 중 미국과 일본이 체결한 가쓰라-태프트 밀약(1905.7.29)은 일본 총리 가쓰라 다로[桂太郞]와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의 특사인 육군장관 W.H. 태프트사이에 체결한 비밀 협약이다. 이 협약은 110년이 지난 오늘에도 우리에게 치욕과 불행을 안겨준 살아있는 역사다. 가쓰라-태프트 밀약의 핵심은 한마디로 한반도는 일본이 먹고, 필리핀은 미국이 먹는다는 내용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만주 신경 군관학교 2기)가 스승처럼 떠받들던 기시 노부스케(岸信介)의 외손자 아베 신조 일본 수상은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을 개정해 미군과 일본 자위대가 한 몸이 되어 유사시 한반도 진출과 점령을 목표로 하고 있고, 더 나아가 한반도를 포함한 전 세계에서 연합 작전을 합법적으로 펼치기 위한 작업을 착착 진행시키고 있다.
러시아 방문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 손대표는 "정치가 우물에 빠져 미래를 볼 수 없는 답답한 현실 속에 있다. 새 판을 짜서 국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고 우물에 빠진 정치에서 헤어날 수 있는 길을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4대 열강에 둘러싸인 우리의 생존전략은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슬쩍 국내 정치를 물었다.
“정치권 새판 짜기 로드 맵은 있는가? 총선도 며칠 남지 않았는데 언제쯤 하산할 계획인가?” 권력의지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는데 그에 대한 생각이 무엇인지 등을 물었지만 염화시중의 미소만 지은 채 마치 차만 얼른 마시고 하산하기를 바라는지 빈 찻잔에 연신 차를 따랐다.
그의 말에는 지난해 카자흐스탄 방문과 올해 러시아 초청 특강을 통해 국제정세의 흐름을 보면서 우리 정치도 민주화 이후 30년을 거치며 근본적으로 변해야만이 국제사회에서 주도적 발언권을 행사하고, 부국강병을 이뤄 선진 복지국가가 될 수 있겠구나 하는 뼈저린 느낌이 배어 있는 것 같았다.
“이곳에 연고가 있는가?”물으신다. 대한민국 최남단인 이곳에서 얼마 멀지 않은 하의도라고 하자 대뜸 “김대중 대통령 고향?” “네, 하의도는 가보셨습니까?” “당연히 가보았죠.” 질문은 계속되었다. 내가 연청에도 있었고, 당에서는 김대중 대통령 후보시절에 TV토론과 라디오 연설 관련, 전문위원(간사)으로 참여하여 밤늦게 12시 넘어 동교동 자택 지하에서 대국민 연설과 각 당 후보들과의 토론 리허설에 실무진으로 참여하고, 마지막 당직은 국민회의 국가경영전략위원회 수석부위원장(상근)을 맡았다고 이력을 소개하였다.
인터뷰를 하러 온 내가 오히려 인터뷰를 당하는 느낌이었다. 자신의 속내는 닫아걸고 나에 대한 경계심을 가지고 탐색전을 하고 계신 것 같았다. 손대표의 속내는 알 수 없지만 향후 정국전망이 어떻게 전개될지에 대하여 마음이 복잡하리라 생각되었다. 결단 여하에 따라 향후 자신의 정치적 명운은 물론 국가의 정치상황이 요동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에서 힘의 논리를 배제할 수 없음은 자명하다. 왜냐하면 정치권은 철저히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영역인데 손 대표는 더민주나 국민의당 어디에도 아직은 실질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더민주에는 킹이 될지 아니면 킹 메이커에 만족할지 향후 총선 승패에 따라 김종인 대표 진퇴도 결정되겠지만 실질적 오너인 문재인 전 대표까지 버티고 있다. 국민의당은 어떤가? 안철수공동대표 또한 원내 교섭단체 구성은 물론 제3당으로서의 존재감이 이번 총선에서 확보될 것으로 예측된다.
그렇다면 정계은퇴를 하고 이곳 강진 만덕산방에서 자발적 현대판 귀양살이를 하고 있는 손대표의 향후 운신의 폭은 어떻게 될까? 일여다야의 틀 속에 치러진 총선에서 국민이 선택한 각 당 의석수의 황금분할이 어떻게 설정되느냐에 따라 총선 승패와 내부 진통, 그리고 그 해법에 따라 정치권 복귀가 늦어지기도, 빨라지기도 하지 않을까?
일여다야로 분열해 치른 선거에서 야권이 참패한다는 것은 기정사실인 것 같다. 박근혜정부는 자기들이 만든 국회 선진화법을 폐기하려고 할 것이다. 또한 각종 법안을 통과시켜 수구보수의 장기집권을 위한 발판을 마련해 갈 것이다.
현 정부는 획일화된 국정교과서로 5.16군사 쿠데타를 미화하고 친일의 잔재를 역사에서 지우는 작업들을 힘의 논리로 밀어부처 당대가 아닌 50년,100년 후를 생각하는 무서운 집착을 보이고 있다. 새롭게 출범한 20대 여당은 국민의 심판을 명분으로 다수결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 전횡이 판치는 정국을 이끌어 갈 것으로 예측된다. 일본의 자민당 장기집권의 전철을 밟아 나가듯이.
박근혜정부의 레임덕을 인위적으로 막기 위해 청와대가 국회를 하부기관으로 전락시키면서까지 과욕을 부릴 때, 새누리당의 원내 과반수 확보로 힘의 논리에 밀려 야권이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할 때, 이렇게 해서는 정권교체를 할 수 없다고 국민이 느낄 때, 야권을 새롭게 재편하여 현 정부의 무소불위의 전횡을 막아 설 수 있는 야의 인물이 누구인가에 대한 국민의 질문이 어쩌면 손대표의 정계복귀 시나리오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이것은 나만의 생각일 뿐 그는 역사적 은둔을 통하여 다산 정약용선생, 초의 선사, 추사 김정희에 대한 역사의 향기를 이곳 만덕산방에서 긴 호흡으로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봄 햇살이 한없이 밝고 따스하게 비추는 만덕산방 마당에서 손 대표께서 직접 끓여 준 차를 마시며 예정에 없던 짧은 귀한 만남을 가졌다. 끝으로 이 여사께서 직접 기념사진을 찍어주는 수고를 하셨다. 매스컴에 취재를 많이 접해본 손 대표께서는 카메라 각도까지 지적하며 잘 찍기를 주문하는 따뜻함을 보여주었다.
정치권은 총선이 끝나면 곧바로 대선정국으로 바뀔 것이다. 말미에 영원히 이곳에서 살지는 않을 것이기에 언제 하산할 계획인지를 물었다. 손 대표께서 알듯 모를 듯 미소만 지으신 걸로 봐서는 분명 결단을 내리기 위한 깊은 장고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백련사 뒷산 중턱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흩날리는 동백꽃 향기와 강진만 바다 내음이 한데 버무러진 따뜻한 봄 햇살이 만덕산방 뜨락에 살포시 내리 쬐고 있었다.
시대의 부름을, 역사의 부름을, 국민의 부름을 다시 받을 수 있기를 소망하면서 칩거하고 있는 은둔자 손학규! 휴화산으로 남을지 아니면 활화산으로 폭발하여 차기 대선의 정치권에 핵폭탄으로 등장, 정치혁명을 이룰지 현재는 가늠키 어렵다. 적어도 기자의 눈에는 하산할 시기만 저울질 할 뿐 그 시기는 의외로 빨리 오지 않을까 그렇게 비춰진 그를 뒤로 한 채 다음엔 정식 인터뷰를 약속하며 백련사의 동백꽃 숲길을 헤쳐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