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몰랐지? 논어는 공자의 책이 아니다!"
의외의 반전을 보였던 이번 선거의 가장 아픈 대목은 진보 정당의 나쁜 성적입니다. 아마 4월 13일 진보 정당에 투표하면서 '내가 표를 주려는 정당이 올바른 건 알겠는데, 내 한 표가 무슨 의미가 있지?' 하며 고민하신 분도 있으실 겁니다.
큰 뜻, 올바른 뜻은 대체로 동시대에는 좀처럼 환영받지 못하는가 봅니다. 당장 공자(孔子)의 생애가 그렇습니다. 살육이 정의였고, 배반이 진리였던 혼란의 춘추 시대, 소국 노나라에 살았던 대현 공자는 올바른 정치에 뜻을 품고도 당시 기득권층, 이웃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배반한다는 이유로 유랑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떻습니까?
당시 노나라 왕 이름을 아는 사람은 없어도, 공자의 가르침을 모르는 사람은 지구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배움이 중요하다, 정당하게 살아야 한다, 내가 싫은 것은 남에게도 강요하지 마라, 수직적 인간관계에 얽매이지 말고 진심으로 상대방을 존중하라는 가르침. 어떻습니까. 우리 어릴 적 모두가 배운 이 가르침이 공자에게서 나왔습니다.
오죽하면 서양 학자들도 자기들 식으로 공자를 '콘푸키우스(Confucius)'라 부르며 추앙하겠습니까. '자왈(子曰)'이란 '선생님 말씀하시길' 정도의 뜻인데, 여기서 '선생님'은 바로 공자입니다. 공자 사후 중국에서 '선생님'이란 곧 공자였던 셈이죠. 이름을 말할 필요도 없는 온 중국인의 스승이라는 말입니다.
공자의 말씀을 기록한 가장 중요한 경전은 <논어(論語)>입니다. 그러나 <논어>를 읽을 마음을 갖기란 쉽지 않습니다. 뭔가 어려울 것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 '꼰대 사상'이라는 선입견이 작용하기 쉽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알고 보면 재미있고, 인간미 넘치며, 신선하고, 지금도 진보적 생각이 가득 담긴 이야기가 바로 <논어>입니다.
'독서통'은 12일 <논어>와 공자를 이야기합니다. 김시천 숭실대학교 초빙교수의 신간 <논어, 학자들의 수다 : 사람을 읽다>(더퀘스트 펴냄)를 들고 말이지요. 공자의 여러 제자 가운데 열두 제자의 삶을 중심으로 <논어>를 이야기한 이 책은 총 세 권으로 계획한 <논어> 읽기의 첫 책입니다. 우리가 오해한 공자의 가르침, 우리가 몰랐던 공자 제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인터뷰 전문을 소개해드리기에 앞서, 안내 말씀을 드립니다. 이번 시간을 마지막으로 독서통은 약 한 달의 휴식기를 가집니다. 이후 새로운 모습으로 독자 여러분을 다시 찾아뵐 것을 약속합니다.
김종배 : 매주 화요일 오후를 장식하는 독서통 시간입니다. 오늘 우리가 소개할 책은 뭐죠?
강양구 : 지난 시간에 살펴본 <정치는 뉴스가 아니라 삶이다>(스기타 아쓰시 지음, 임경택 옮김, 사계절 펴냄)의 열쇳말 가운데 하나가 '거리'였잖아요. 다들 정치에 몰입하는 때일수록 정치와 거리를 두고 우리의 삶 전반을 성찰하는 게 필요할 것 같아서 색다른 책을 골라봤어요. 최근 입소문을 타면서 화제가 되는 책입니다.
<논어, 학자들의 수다 : 사람을 읽다>입니다. 사실 처음에 이 책은 저자가 눈에 들어와서 읽었어요. 도발적인 저서로 유명한 동양 철학자 김시천 숭실대학교 초빙교수입니다.
김종배 : <시사통>에도 여러 차례 출연하셨죠. 김시천 교수와 인사 나누겠습니다. 교수님, 오랜만입니다.
김시천 : 네. 안녕하세요.
김종배 : 김시천 교수께서는 <시사통> 출연으로 방송에 맛을 들이고 나서, 아예 독립하셨어요. <학자들의 수다>라는 팟캐스트를 운영하고 계시죠. <학자들의 수다>는 잘 됩니까? (웃음)
김시천 : 네, 그렇습니다. <시사통>만큼 많지는 않지만, 열성 청취자가 꽤 있습니다. (웃음)
김종배 : 이 책도 <시사통>에서 방송한 내용을 바탕으로 만든 것이죠? 그런데 부제가 '사람을 읽다'입니다. <논어>에 등장하는 공자의 열두 제자에 관한 이야기여서 그렇게 붙였나요?
김시천 : 네. 그런데 다른 뜻도 있어요. 보통 <논어>라고 하면 범인과 다른 훌륭한 성인군자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이 책이 말하는 '사람'은 우리와 같이 아주 평범한 사람을 말하죠.
강양구 : 김시천 교수께서 예전에 쓰신 책 <노자의 칼 장자의 방패>(책세상 펴냄), <이기주의자를 위한 변명>(웅진지식하우스 펴냄) 등에서도 계속해서 하시는 주장이죠. <논어>와 같은 고전 텍스트를 현대적 관점에서 재해석해야 한다는 얘기를 하십니다. 이 책에서도 그런 문제의식이 보여서 반가웠어요. 솔직히 말하면, 엄청나게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런데 김시천 교수께서 전공하신 분야는 (공자가 아니라)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 또 <장자(莊子)>가 아닌가요?
김시천 : 학위 논문을 그렇게 썼죠. 그런데 <논어>를 건너뛰고 중국 고대 사상을 말할 수는 없습니다.
김종배 : 그러고 보니 이 책의 주요 내용 가운데 하나가 '<장자>는 <논어>와 별개가 아니다'라는 거예요. 오히려 하나의 갈래일 수 있다고 하셨어요.
강양구 : 우리가 흔히 '노장사상'이라고 해서 <노자>와 <장자>를 한 묶음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김시천 교수께서는 <장자>를 <논어>와 한 묶음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논장사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거예요. <논어>에 <장자>의 씨앗이 이미 있고, 공자의 제자 가운데 상당수는 <장자>의 뿌리라고도 하셨습니다. 아주 흥미로웠어요. 독특한 견해이신가요?
김시천 : 아니에요. (웃음) (<장자>가 <논어>의 갈래라는 건) 가장 정통한 견해입니다.
강양구 : <노자>와 <장자>를 묶어서 보는 시각이 오히려 이단적인가요?
김시천 :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해석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하지만 20세기의 독특한 견해입니다.
김종배 : 우리가 여태 잘못 알고 있었군요. (웃음)
김시천 : 그런데요. 흔히 <노자>와 <장자>를 묶어서 해석하는 시각 자체도 지극히 유학자의 관점일 뿐이에요. 그러니까 노장사상도 <노자>와 <장자>에 관한 유가의 해석 체계일 뿐입니다. <장자>를 <논어>와 연관 지어서 해석하는 것도 역시 유가의 해석 가운데 하나고요. 그러니까 <논어>와 관련이 깊을 수밖에 없죠.
강양구 : 우리가 중국 고대 철학에 관한 고정관념이 있어요. 흔히 유교는 사대부의 입신양명 수단으로 활용되는 사상이고, 도교는 '안빈낙도'로 상징되듯이 세속의 시류에 휩쓸리지 않으려는 이들의 저항(?) 사상이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런 식으로 해석하는 책들도 많고요. 그런데 꼭 그렇게 이해해야 할 건 아니군요.
김시천 : 그렇게 이해하는 게 틀렸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저는 이렇게 묻고 싶어요. 입신양명을 외치는 사람과 안빈낙도를 외치는 사람이 그렇게 다른 사람일까? 사실은 아니에요. 현실 정치를 하는 사람은 <논어>를 읽고, 현실 정치에서 좌절해 재야로 밀려나면 <장자>를 읽을 뿐이죠. (웃음)
<논어>는 누가 썼을까?
김종배 : 이제 본격적으로 책을 개괄해보죠. 이 책은 <논어>에 관한 다른 책과는 구성이 달라요. 구절 하나하나를 짚으며 그 뜻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논어>에 등장하는 공자와 그 제자를 조명하고, 이들의 이야기에서 나오는 개념을 색다르게 해석합니다. 그래서 재미있습니다.
강양구 : 아마 <논어>를 직접 읽어보면 다들 놀라실 거예요. 흔히 <논어>를 공자의 말씀이나 공자의 행동을 제자들이 기록한 책이라고 생각하실 거예요. 그런데 <논어, 학자들의 수다 : 사람을 읽다>를 보면, 공자의 어록이 <논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5%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55%는 전부 공자의 제자들, 특히 이 책이 언급하는 열두 제자의 이야기예요.
김시천 : <논어, 학자들의 수다 : 사람을 읽다>를 쓴 계기가 바로 지금 강양구 기자가 언급한 통계 자료입니다. 사실 <논어>를 언제, 누가 썼느냐에 관해 논란이 많습니다.
지금까지 통설은 공자의 제자인 증삼(曾參, 증자)과 유약(有若, 유자)을 중심으로 <논어>가 쓰였다는 거였어요. 왜냐하면, <논어>에서 공자 외에 '~자'로 존칭 되는 사람이 바로 이들이거든요. 저는 이 주장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통계를 뽑아보면 <논어>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인물은 자로(子路)입니다. 그다음은 자공(子貢), 안회(顔回) 순이죠. 증삼과 유약은 사실 주변 인물이에요. 이상하잖아요?
공자의 제자 각자가 등장하는 부분을 따로 모아서 읽어보면 이해가 더 안 가죠. 보통 <논어>를 읽을 때 개념 중심으로 공부합니다. 그런데 공자의 중요한 개념 가운데 하나인 '인(仁)'의 경우, 듣는 사람(제자)이 누구냐에 따라서 개념이 달라요. 그런데 이걸 제자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같은 제자와의 대화에서는 같은 내용이 반복됩니다.
김종배 : 공자가 똑같이 '인'을 이야기했다손 치더라도, 어떤 제자를 상대로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뜻을 다르게 말했다는 거군요.
김시천 : 심지어 '인'의 여러 개념 정의 가운데 일부는 (공자가 아니라) 제자의 입을 통해 나오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논어>는 공자의 책이 아니라 공자와 그의 제자의 이야기예요.
이런 부분 때문에라도 제자를 중심으로 <논어>를 새롭게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강양구 : <논어>를 공자 중심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자로의 <논어>'로 볼 수 있고, '안회의 <논어>'로도 해석할 수 있다는 거군요. 그렇게 읽어야 풍부하게 해석할 수 있고, 오히려 <논어>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게 바로 이 책의 주장이죠? 상당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김시천 : 그렇죠.
중요한 건 <논어>를 누가 지었느냐가 아닙니다. <논어>는 공자가 쓴 책이 아니라는 이 책의 주장의 실질적 내용은 <논어>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이 공자와 똑같이 생각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제자별로 <논어>를 다시 읽어보니, 공자의 제자 가운데 공자 말씀을 실질적으로 따른 이가 아무도 없어요.
강양구 : 공자는 불행한 스승이었군요? (웃음)
김시천 : 그런데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생각이 달랐고,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도 달랐죠. 그렇다면, <논어>에도 이런 스승과 제자 관계가 얼마든지 적용될 수 있죠.
김종배 : 사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제자가 스승의 이야기를 다르게 해석하는 건 당연하죠. 청출어람 청어람이라고 했던가요? (웃음)
강양구 : 공자가 처했던 상황과 제자의 상황도 다를 수 있고요. 당장 이 책에도 그런 이야기가 나와요. 그렇다면, 같은 개념도 다른 현실에 맞춰 달리 적용할 수 있죠.
김종배 : 그렇다면, 김시천 교수께서 보시기에는 <논어>를 편찬한 이가 누구입니까?
김시천 : 확정하기는 힘듭니다. 다만, 영미권 연구자 의견을 받아들이자면 일단 시기는 전국 시대 말기에서 한나라 초기 즈음으로 추정됩니다. 공자가 세상을 뜨고 약 300년 정도 후죠.
다만 <논어>에 등장하는 문구를 어떤 식으로 해석하더라도, 공자 사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말씀이 문자화되었다는 건 확실합니다.
김종배 : 편찬까지 진행된 건 아니라손 치더라도, '자왈(子曰)'로 시작하는 이야기가 전국 시대 말기에서 한나라 초기 이전에 이미 죽간에 기록되었다는 거죠? 그냥 메모라고 할까요?
강양구 : 그렇다면, 그 메모들이 정리되고, (<논어> 편찬이 가능할 정도로) 어느 정도 수집된 건 언제쯤인가요?
김시천 : 자공의 주도로 공자 사후 6년 동안 이뤄졌다는 게 저의 가설입니다.
김종배 : 책을 보면 자공이 공자 사후 6년 동안 시묘살이를 했더라고요.
공자의 제자1: 협객의 초상 자로
강양구 : 길어도 삼년상인데, 굳이 육년상을 한 이유가 있다는 거예요. 그 6년 동안 곡만 했을 리 없다는 겁니다. 그 기간 공자 생전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공자와 제자의 언행을 메모하고 수집하는 일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었고, 그 작업이 이후 <논어> 편찬의 시작이 되었다는 거죠?
자공 이야기가 나왔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공자의 제자 이야기를 해봐야겠습니다. <논어, 학자들의 수다 : 사람을 읽다>에서 가장 먼저 중요하게 언급한 인물인 자로부터 볼까요?
김시천 : 자로는 산도적, 사실은 야인이었던 인물입니다. 단순 무식, 과격, 다혈질. 이런 캐릭터로 이해되곤 했어요. 그런데 자로가 공자와 만나 대화한 내용을 모아 놓고, 이들의 대화 장면을 상상하며 읽어보면 매우 일관된 개성을 가진 인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자로는 공자의 영향을 받았지만, 공자가 원한 사람이 되지 않았습니다.
공자는 "(너라는) 화살에 촉과 깃을 달아 정확히 과녁을 찾을 수 있게 성장하라"고 했어요. 자로에게 '인'을 심어주려 했죠. 그런데 자로는 공자의 가르침을 정의감, 즉 '의(義)'로 소화합니다. 꼿꼿하게, 죽을 때까지 이 생각을 버리지 않습니다. 공자가 자로에게 마지막 가르침을 주려고 하니 "스승님은 왜 그렇게 답답하고 고지식하십니까" 하며, 자기 이야기를 하죠.
강양구 : 자로는 무협지의 주인공, 강호 무림에 몸담은 사람 같더라고요.
김시천 : 통찰력 좋으시군요. (웃음) 실제 유협(游俠)의 원조를 자로로 해석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강양구 : 저는 자로가 성숙한 사람에 관해 공자에게 묻고 답하는 장면에서 감동했어요. 해당 내용은 이렇습니다.
자로가 성숙한 사람에 관해 물었다. 선생님이 말했다. "장무중(臧武仲)의 지혜와 공작(公綽)의 무욕과 변장자(卞莊子)의 용기와 염구(求)의 재능에 예악으로 꾸민다면 성숙한 사람이라고 할 만하다." (그러자 자로가 동의하지 않는다며 이렇게) 말했다. "오늘날의 성숙한 사람이 왜 꼭 그래야 합니까? (제가 생각하기에 성숙한 사람이란) 이익을 보면 의를 생각하고, 위험을 보면 목숨을 내놓으며, 오랫동안 어려운 상황에 처해도 평소 (자신이 했던) 말을 잊지 않으면 성숙한 사람이라 할 만합니다."
자기(자로)가 그렇다는 얘기잖아요? 오늘날 저 같은 사람으로서는 범접하기 힘든 인간형입니다만, 우리 누구나 마음 한 편에 품고 싶은 곧은 사람의 원형이 자로인 것 같아요.
김종배 : 제자 가운데 공자에게 가장 많이 대든 인물이잖아요? 자로가 공자와 나이 차가 얼마 나지 않아서 그랬던 것 아닐까요? (웃음)
김시천 : 이 책에서 제가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입니다. (웃음) 여태 <논어>를 해석할 때 제자의 나이를 고려하지 않았어요. 안회의 경우 서른한 살에 요절했는데, 이걸 고려하면 그가 젊은 시절 공자와 나눈 이야기는 40~50대의 어른과 10대 청소년의 대화로 이해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제대로 해석이 됩니다.
김종배 : 안회는 전적으로 공자의 말을 따랐지만, 자로는 '난 머리 굵을 만큼 굵었는데 왜 자꾸 가르치려 해?' 이랬을 수도 있죠. (웃음) 베이징 올림픽을 기념해 중국에서 <공자>라는 영화도 만들었잖아요? 저우룬파(周潤發)가 주연한 영화로 기억하는데, 거기 나오는 제자 중 덩치가 가장 큰 사람이 자로입니다. 마치 장비를 연상케 하죠.
김시천 : 그런 과격한 모습이 공자를 만나기 전의 자로였다면, 공자를 만난 후 자로는 완벽한 군인의 형상입니다. 제가 이 책을 쓸 때 주변 인물 여럿을 떠올리면서 공자의 제자들을 그렸어요. 자로 역시 제가 가까이하는 선배 한 분을 떠올리면서 썼습니다.
강양구 : 독자 여러분도 이 책을 보면서 공자의 제자에게서 주변의 인물을 떠올리실 수 있을 겁니다.
공자의 제자2: '공자의 플라톤' 자공
김종배 : 자로가 막걸리라면 자공은 와인 정도 되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안회는 뭐가 되나? 탄산음료 정도 되나? (웃음)
김시천 : 밀키스요? (웃음)
바로 이처럼 독자가 쉽게 <논어>를 읽을 수 있도록 돕자는 게 이 책의 목표입니다. 독자가 <논어>에 등장하는 인물을 내 주변의 평범한 사람으로 해석하게끔 하고 싶었어요.
강양구 : 이 책을 보고 나서 <논어>를 읽으면 피식 웃음이 나올 것 같아요. 그게 이 책의 장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제 다음 제자로 자공 이야기를 해 보죠. 와인으로 비유한 자공은 어떤 사람입니까?
김시천 : 상인 가문 출신이죠. 우리가 앞서 <논어>를 해석할 때 나이를 고려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사실 기존의 해석 체계 속에서는 제자의 출신 가문도 고려하지 않습니다. 자공은 공자의 제자 가운데 가장 성공한 사람입니다. 많은 학자가 '자공이 없었다면 공자도 없었다'고 이야기할 정도죠.
강양구 : 언변도 좋고, 행정력도 있고, 문, 사, 철에도 능하고, 심지어 돈 버는 재주까지 있는, 한마디로 다재다능한 인물이더라고요.
김시천 : 보통 <논어> 공부하는 학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인물입니다. (웃음)
강양구 : 자공한테 자기를 감정 이입하는 건 아닐까요? (웃음)
김종배 : 자공이 없었다면 공자도 없었다는 말은 왜 나온 겁니까?
김시천 : 일단 공자의 말씀을 기록으로 정리하려 한 초기 제자는 자공뿐이었죠. 안회와 같은 다른 초기 제자에게서는 공자의 가르침을 문자로 남기려는 생각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때만 하더라도 구술 문화가 지배적이었죠. 공자가 노나라에 돌아온 다음 맞은 후기 제자인 자하(子夏)나 자장(子張)은 문자에 익숙한 사람이지만요.
자공, 자하, 자장과 같은 인물이 <논어> 편찬을 위한 초기 기록 과정에 가장 깊숙이 개입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게 또 있어요. 이들이 전부 노나라 출신이 아니에요. 외국의 유학생이 논어 초기 기록의 주도권을 잡았다는 거예요. 바로 그런 점이 <논어>의 다채로운 색깔을 만들어 낸 거죠.
강양구 : 공자를 소크라테스에 비유한다면 자공은 플라톤에 비유해도 될 것 같아요. 스승의 말씀을 기록으로 남겼으니까요.
김시천 : 네. 소크라테스도 플라톤이 없었다면 남을 수 없었죠.
김종배 : 자로가 의를 중시했다면, 자공은 어떻습니까?
김시천 : 자공은 문(文)과 서(恕)라는, 유학의 뼈대를 세웠죠.
우리가 흔히 공자하면 '인'이라고 생각하는데, 인은 공자가 만든 개념이 아닙니다. 공자 생전에 이미 광범위하게 사용하던 개념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식의 대화가 오갔죠. 맹무백(孟武伯)이 공자에게 자로를 예로 들어 "자로처럼 용맹한 자가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어진 사람이냐"고 질문합니다. 사실은 맹부백 자신이 생각하는 인이 있었어요. 바로 남자다움, 귀족다움이었죠.
강양구 : 그러니까, 우리가 생각하는 인은 이것(남자다움, 귀족다움)인데, 공자 네가 말하는 인은 뭐냐는 거군요.
김시천 : 네. 칼을 든 용맹한 귀족의 상이 (춘추시대 당시) 인의 본래 모습이었다면, 공자는 '통치는 칼로 하는 게 아니라 말로 하는 것'이라는 획기적인 사상의 변화를 일으켰죠.
강양구 : 그 말로써 하는 통치의 모습에 가장 부합한 제자가 바로 자공이고요.
김시천 : 그래서 <논어>라는 책을 해석할 때, 공자의 사상을 수용하고 계승했다는 측면에서는 자공을 중요한 한 축으로 봐야 합니다. 자공이 펼친 공자 사상의 핵심은 앞서 말씀드린 문과 서입니다. 이는 유가의 핵심이죠. 따라서 유학을 익히는 사람을 '문인(文人)'이라고 불렀습니다. 우리가 인문학이라고 부르는 학문도 바로 이 '문' 앞뒤에 '인(人)'과 '학(學)'을 붙인 거죠.
그렇다면 서는 뭘까요? 공자는 문을 인간 사회에서 실현할 수 있는 핵심 덕목으로 인을 제기했습니다. 서는 바로 인을 구체적으로 실행하는 방법입니다. 자공과 공자의 문답에서 서의 개념을 알 수 있습니다.
자공이 물었다. "평생 실행에 옮길 만한 한마디 말이 있을까요?" 선생님이 말했다. "아마 '서(恕)'일 것이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하지 않는 것이다."
서는 우리가 보통 '너그럽다'고 해석하는데, 글자 그대로 풀면 '사람의 마음이 서로 같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자공은 문과 서를 함께 이야기한, 공자 사상의 핵심 전달자죠.
김종배 : 인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서가 따라와야 한다. 역지사지의 태도를 보여야만 인이 성립할 수 있다. 이 (공자의) 가르침을 강조한 이가 바로 자공이라는 거군요.
강양구 : 이 책에서 제가 재미있게 읽은 부분 중 하나가 아마 자공은 공자도 질투한 인물일 것이라는 대목이었습니다.
김종배 : 금수저니까. (웃음)
강양구 : 금수저에 똑똑하기까지 하니까요. 잘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웃음)
김시천 : (공자가 자공을) 부러워했으리라 생각합니다.
공자의 제자3: 신분의 굴레를 벗지 못한 안회
김종배 : 그렇다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공자의 수제자'로 기억하는 안회는 어떤 인물입니까? 교수께서는 이 책에서 '안회는 공자의 수제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내비치셨어요.
강양구 : 안회를 보면 짠하죠. (웃음)
김시천 : 제가 안회 부분을 쓰면서 울었어요. <논어>를 보면 희한한 게, 안회가 출연 빈도로는 세 번째인데 반해 직접 말하는 부분은 다섯 번뿐이에요. 달리 말하면, 안회는 수제자라고 불리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논어>에서 배척당한 인물입니다. 이 책에서는 왜 그랬는가를 추적했죠.
김종배 : 일단 이것부터 명확히 해 보죠. 안회를 공자의 수제자로 여기는 건 왜입니까?
김시천 : <논어>를 보면, 공자가 안회 칭찬을 많이 합니다. 이 때문에 안회가 수제자라는 시각이 생겼죠. 그런데 제가 그 말들을 모아서 보니 실은 공자가 안회를 안타까워했어요.
김종배 : 여기서 중요한 게, 안회는 전형적인 흙수저입니다. 주눅 들어 있고, 제자 중에서도 나이가 어리고, 뒤치다꺼리도 하고.
강양구 : 유명한 고사도 있잖아요? 안회가 밥을 짓다 다른 이가 먹기 전에 먼저 먹는 모습을 보고 다른 제자들이 뭐라고 하죠. 진실은 이랬죠. 밥에 먼지가 앉은 걸 보고서 안회가 공자나 다른 제자가 더러운 밥을 먹지 마라고 그 부분만 떼먹은 건데요. 더 중요한 건, 같은 제자인데 다른 제자들은 밥을 기다리고, 안회가 밥을 한다는 거죠.
김시천 : 제가 그 장면을 글로 쓴 적이 서너 번 됩니다. 왜 안회가 거기서 밥을 하고 있었을까. 안회가 자공보다 나이 한 살이 많아요. 공자학단에 들어온 시기도 적어도 10여 년 이상 빨라요. 공자가 54세에 노나라를 떠난 직후에 자공이 제자로 들어왔는데, 안회는 공자 나이 마흔 전후에, 공자가 노나라에 있을 때 공자 문하에 들어왔어요.
한참 선배이고, 나이도 비슷한데 왜 안회가 밥했을까. 신분이 미천해서 그렇죠. 양반하고 노비가 같이 여행하면 노비가 밥하잖아요? 우리가 이런 부분을 생각하지 않고 그간 <논어>를 읽었죠.
공자의 제자4: 유가와 도가를 이은 제자들
김종배 : 여태 우리가 공자의 여러 제자 가운데 자로, 자공, 안회를 이야기했습니다. 이제 <논어>에서 <장자>로 넘어가는 중요한 역할을 한 제자인 원헌(原憲)을 이야기해봐야 할 것 같은데요?
김시천 : 안회와 원헌은 <장자>에 많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들이 공자가 제자 가운데 가장 아낀 덕행파에 속해요. 이들의 공통점이 바로 출신이 비천했다는 겁니다.
김종배 : 겉으로는 벼슬길을 거부했고.
강양구 : 진실은 벼슬을 못한 거고요.
김시천 : 제자 가운데 역시 비천한 사람이었던 중궁(仲弓)은 한미한 벼슬을 했고, 민자건(閔子騫)은 거부했죠. 특히 민자건은 절름발이였죠. 장애는 무인을 중심으로 했던 당시 사회에서는 공직에 나아가기에 상당한 결격 사유였죠. 당장 전투를 할 수 없으니까요.
어떻게 본다면 <논어>에서 배척당한 인물(안회, 원헌, 중궁, 민자건 등)들이 나름의 삶을 꾸리고자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는데, 바로 이들로부터 사적인 삶에 관한 긍정이라는 의식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런 인식이 <장자>로 이어졌다는 점을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김종배 : 공자의 가르침 중 무엇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분파가 갈라지는데, 그중 한 갈래가 <장자>, 더 나아가 도가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는 건가요?
김시천 : 그렇죠.
성리학은 과격한 진보사상이었다
김종배 : 핵심 개념 하나만 짚죠. 인이니 의니, 이런 얘기 말고, '성(聖)'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성인'이라고 할 때 쓰는 '성'요. 성은 어떤 개념이죠?
김시천 : 성인은 한자를 풀이하면 '수많은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요구를 들어줄 줄 아는 귀를 가진 자'입니다. 아무 곳에서나 듣는 게 아니라, 제단에서 듣죠.
김종배 : 임금(황제)의 덕목이 성이었다는 거죠?
김시천 : 네. 백성에게 시혜적 정치를 하는 사람의 덕목이었던 거죠.
김종배 : 그런데 이 개념이 확장되죠.
강양구 : 성인은 임금뿐만 아니라 누구나 될 수 있다.
김시천 : 그게 바로 성리학(性理學)의 핵심입니다.
강양구 : 우리는 성리학을 고담준론만 일삼은 꽉 막힌 유학자의 보수적인 이론으로 생각하곤 하죠. 그런데 당시만 하더라도 혁명적인 개념이었죠?
김시천 : 그렇죠. 당시 상황에서는 대단히 혁신적 생각이었습니다. 현대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성인이 된다'는 말은 '정치 주체가 누구냐'는 말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성리학 이전까지 유학의 모토는 정치 주체인 황제를 성인으로 만들자는 거였습니다. 그런데 성리학 이후에는 내가 성인이 되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변화가 일어납니다.
김종배 : 내가 임금이 될 수 있다는 겁니까?
김시천 : 그것과는 다르죠. 교화의 주체로서 자신을 세우자는 겁니다.
김종배 : 향학 운동 등이 여기서 나왔고요.
김시천 : 네.
강양구 : 유학자들이 내가 나라는 다스리지 못하더라도, 내 주변 백성을 교화해 좋은 마을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갖게 되었군요.
김시천 : 저는 그래서 성리학은 조선 사회를 바라보는 중요한 키워드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논어>라는 텍스트에 감춰진 정치적 함의가 많습니다. 그것의 가장 완벽한 재현이 바로 정도전이 꿈꿨던 세계와 연결됩니다. 왕과 신하의 관계가 <논어>에서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입니다. 제자가 스승에게 대드는 게 자연스러운 관계죠. <논어>에 나오는 유일한 관계입니다. 그런데 이건 (무조건 복종과 다스림의 관계로 한정되는) 오륜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아요. 따라서 <논어>는 정치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또 하나 재미난 건, 한나라까지만 해도 군신과 부자 관계는 일치해야 한다는 게 철학적 목표였어요. 혈연 중심, 씨족 중심 사회였으니까요. 그런데 사제 관계는 확장성이 있습니다. 혈연을 나누지 않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스승과 제자가 될 수 있거든요.
강양구 : 심지어 나이가 더 어린 사람도 스승으로 모실 수 있죠.
김종배 : 그래서 나온 게 조선 시대 경연 제도입니까?
김시천 : 저는 그런 방식의 군신 관계가 만들어진 배경이 <논어>라고 추측하죠.
강양구 : 왕이 신하 위에 군림하긴 하지만, 왕은 신하와 스승(신하)과 제자(왕) 관계로 맺어진다는 거죠.
김종배 : "조선은 사대부의 나라"라는 말을 사극에서 보곤 하는데, 이게 절대왕정 시대에 대역죄에 해당하는 말일 수 있죠.
김시천 : 대역죄에 해당하지만, 그렇게 말해도 안 죽습니다.
강양구 : 실제로 조선 시대에 경연을 등한시한 왕일수록 폭정을 펼쳤다고 하더군요.
김시천 : 그만큼 조선 통치 체제는 사대부와 왕의 합의가 이뤄져야만 안정될 수 있었죠. 이게 이뤄지지 않으면 반정으로 인해 왕이 축출되지 않았습니까? 대단한 정치력이었죠.
<논어>는 사람 이야기
김종배 : 이 성이라는 글자가 함축한 의미가 참 크군요. 성리학에 관한 단편적 인식에서 나오는 오해도 짚어봤습니다.
<논어, 학자들의 수다 : 사람을 읽다>에 나오진 않습니다만, 김시천 교수께서 예전 <시사통>에 출연하실 때 이런 말씀 하신 적 있어요. '과연 <논어>가 철학일까'라고 말이죠.
김시천 : <철학>이 아니라고 단정적으로 말할 순 없죠. 다만 이런 부분을 확실히 짚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19세기 후반 이후 개념과 논리를 강조하게 됐습니다. 그러나 동아시아 고전 텍스트를 해석할 때 개념과 논리를 중심으로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많습니다. 사람, 역사, 상황을 고려하면서 수사적이나 문학적으로 해석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따라서 다른 길을 통하면 고전을 쉽게, 그리고 유익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제가 굳이 <논어>를 철학 이외의 것으로 읽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한 겁니다.
김종배 : 정치인들이 걸핏하면 사자성어 들며 이야기하는 건 어떻게 보세요?
김시천 : 그럴 수 있죠. 다만 더 중요한 건 말한 만큼 책임졌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정치인들한테 이 상황에 맞춤한 사자성어를 가르쳐 달라는 전화도 몇 통 받았습니다. (웃음) 현대 중국 정치를 이해하려면 사자성어에 관한 이해가 사실 필요합니다. 중국 정치인은 지금도 사자성어를 이용해서 정치적 표현을 많이 쓰거든요.
강양구 : 시진핑은 꼭 한마디씩 하더라고요.
김시천 : 그게 정치인으로서의 격을 보여준다고 생각하기도 하니까요. 그러니 중국과 외교할 때 사자성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강양구 : 이번 책의 부제는 '사람을 읽다'인데요, <논어>와 관련된 다음 책도 준비하고 계신가요?
김시천 : 네. 같은 제목으로 2부 '역사를 읽다', 3부 '인생을 읽다'도 낼 예정입니다.
김종배 : '역사를 읽다'는 <논어>의 시대, 즉 춘추 시대 이야기입니까?
김시천 : 이 책의 경우 공자의 제자를 중심으로 <논어>를 읽었죠. 그런데 <논어> 안에는 제자 외에도 여러 사람이 등장합니다.
강양구 : 공자나 제자가 마주쳤던 당대의 정치인들이죠.
김종배 : 맞아요. 공자를 이야기할 때는 당시 유력자들이 어떤 맥락에서 어떻게 등장해 공자와 얽혔는가를 역사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후편인 '역사를 읽다'는 바로 그런 얘기를 할 거예요. '인생을 읽다'는 '자왈(子曰)'로 시작하는 문장을 통해 공자의 개인사를 축으로 동아시아 사람의 인생 모델을 이야기할 예정입니다.
강양구 : 살아생전에는 실패한 인생이죠. (웃음) 다음에 나올 책도 기대됩니다.
김종배 : 이제 마무리하죠. <논어, 학자들의 수다 : 사람을 읽다>를 쓴 김시천 숭실대학교 철학과 초빙교수를 모시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교수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김시천 :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