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검찰은 사법농단 사건에 대한 중간수사 발표를 하면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구속기소했다고 밝혔다. 공소장만 296쪽에 이르고 적시된 범죄혐의는 47개였다.
민주주의 정치체제의 중요한 원리인 3권 분립의 한 축인 사법부의 수장이 개인적 비리가 아니라 직무수행과 관련하여 구속기소 되었다는 점에서 사법역사 상 충격적 사건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이 사건은 한편으로 보면 일평생 승승장구하며 꽃길만 걷던 엘리트판사의 몰락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 하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부산출신으로서 서울대 법대를 나왔다. 1970년 대학 졸업과 함께 제12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였으며, 1975년 서울민사지법 판사로 법관생활을 시작했다. 사법연수원 교수와 법원 행정처 송무국장, 서울지법 파산수석부장 등을 거쳐 최종영 대법원장 시절인 2003년 2월 법원행정처 차장을 맡았다.
하지만 그해 이른바‘4차 사법파동’이 발생하면서 양승태는 9월 특허법원장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4차 사법파동’은 연공서열에 따른 대법관 제청에 반대하면서 판사 160명이 연판장에 서명하고 사법개혁을 요구한 사건이다.
이후 노무현 정부시절인 2005년 2월 대법원장 추천으로 대법관에 임명되었고, 2009년 2월부터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겸직했으며,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1년 9월 제15대 대법원장 자리에 올랐다. 말 그대로 엘리트코스를 밟아 온 것이다.
사법시험이 있던 시절 법조계에는 대법관이 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엘리트코스가 있다는 말이 떠돌았다. 사법시험과 사법연수원 졸업 성적이 모두 좋아 서울 4대문 안, 그것도 서울 중앙지법, 동부지법, 남부지법 중 한 군데에서 법관생활을 시작하고, 이후로도 의무적 지방순환을 제외하면 대부분 서울 내지 수도권 법원에서 근무하며, 대법원 재판연구관이나 법원행정처 근무를 마치고 지방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한 후 서울중앙지법 형사부 내지 파산부 부장판사로 있다가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하고, 고등법원 부장판사가 된 후에도 잠깐 지방근무를 마치고 서울로 옮겼다가 몇 년 후 법원장으로 승진한다. 이런 경로를 밟아 법원장이 된 사람만이 대법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외가 없지는 않지만 위에서 말한 코스를 거친 사람이 다수를 차지한다.
이렇게 엘리트 코스만 밟는 법관들은 우월의식이 강하다. 이들은 자신의 몸이 힘들어도 소수 정예법관으로서 대접받는 것을 좋아한다. 밤에 우리나라 지방법원의 중심이라고도 불리는 서울중앙지법 청사를 올려다보면 거의 대부분의 방에 불이 켜져 있다. 업무량이 많아 제시간에 퇴근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업무량이 너무 많으면 판사 숫자를 늘려달라고 할 것 같은데, 그런 요구는 많지 않은 것 같다.
잘 나가는 판사들은 대부분 소수 정예의 순혈주의 인식을 갖고 있어서 법관 숫자를 늘리는 데에 소극적이고, 그런 사람들만 모인 법원 상층부는 그 인식이 더욱 강하다.
우리 헌법 상 모든 국민은 재판청구권을 갖는다. 그리고 재판청구권에는 법원이 사실판단과 법률적용을 잘못하는 경우 3번에 걸쳐 법원의 판단을 받아볼 수 있는 심급제도가 인정된다. 제1심 단독판사 재판에 대해서는 지방법원 항소부에, 제1심 합의부 재판에 대해서는 고등법원에 각 항소할 수 있고, 항소심 재판에 불복하는 사람은 대법원에 상고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법원에 대한 불신 때문인지 항소 내지 상고율이 무척 높다. 재판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기어이 대법원까지 가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대법원에 상고를 제기하는 사람은 많고 대법관의 숫자는 적다보니 사건처리가 계속 지체된다.
이를 막기 위해 민사재판에 한해 법률심인 대법원에서 판단할 내용이 포함되지 않으면 간략하게 기각하는 심리불속행기각제도를 두고 있지만 여전히 대법원의 업무부담이 너무 크다.
이를 해결하려면 대법관 숫자를 더 늘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엘리트로서 순혈주의 인식이 강한 판사들은 대법원이 소수 정예로 구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여 대법관 숫자를 늘리는 것에 부정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아이디어가 상고법원이다. 대법원의 과중한 업무 부담을 줄이기 위해 대법원이 맡는 상고심(3심) 사건 중 단순한 사건만을 별도로 처리하는 법원을 두자는 것이다. 항소심까지는 현행 제도대로 유지하되, 3심은 대법원이 판단하여 간단한 일반사건은 상고법원이, 사회적으로 파장이 크거나 판례를 변경해야 하는 사건은 대법원이 맡는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상고법원 도입 논의가 나왔을 때부터 사실상 4심제(1심-2심-상고법원-대법원)가 아니냐며 위헌 논란이 불거졌고, 또 상고법원 설치가 대법원의 위상 강화와 법원 인사 적체 해소를 노린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됐다.
상고법원 설치 법안(각급 법원 설치와 관할구역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2014년 12월 국회의원 168명에 의해 발의되었으나, 19대 국회에서 2년 가까이 표류하다 2016년 5월 19대 국회가 끝나면서 자동 폐기됐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바로 이 상고법원 설치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박근혜 전 대통령의 관심사건에 관해 재판거래를 시도한 것이다.
재판거래에 관한 가장 핵심적인 혐의는 일제 전범기업 강제노역 손해배상청구소송 재상고심을 박근혜 청와대의 요청에 따라 지연시키고 전원합의체에 회부해 전범기업 측의 편의를 봐 주었다는 것이다. 소송결과를 뒤집거나 지연시킴으로써 박근혜 정부는 외교적 이득을 챙기고, 양승태 사법부는 상고법원 추진이나 법관 재외공관 파견 등의 목적을 달성하려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전범기업의 대리인인 김앤장의 변호사를 만나 전원합의체 회부 계획을 전달하고, 주심을 맡은 김용덕 전 대법관에게 “배상판결이 확정되면 국제법적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하는 등 직접 실행자로 활동한 정황이 검찰수사에서 드러나기도 했다.
이외에도 옛 통합진보당 의원 지위확인소송,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관련 행정소송,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댓글사건 형사재판 등에 개입한 혐의도 포함되었다. 헌법재판소의 옛 통합진보당에 대한 해산결정 후 통합진보당 소속 의원들이 의원직을 유지하느냐 하는 점이 법률적 쟁점이 되었는데,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이에 개입하였던 것이다.
심지어 법원행정처는 전교조 법외노조처분 효력을 정지한 서울고법 결정에 고용노동부가 재항고하자 재항고이유서를 대필하기까지 했다. 법원행정처 소속 판사들이 대필한 재항고이유서는 청와대를 거쳐 노동부에 직접 전달했다고 한다. 법원이 심판자가 아니라 분쟁의 한 당사자를 위해 활동했다는 사실은 정당한 심판자의 지위를 기대하였던 국민의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처참하게 무너뜨리는 죄악이라 아니할 수 없다.
재판거래 뿐 아니라 인사개입 문제도 중요한 공소사실의 하나이다. 법관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정책에 비판적인 판사들에게 불이익을 줬다는 것이다. 검찰수사결과에 의하면 양승태 사법부는 2012년부터 2017년까지 「물의 야기 법관 인사조치 보고」 문건을 작성하고 문책성 인사 조치를 했다. 이른바 '법관 블랙리스트'에 오른 판사는 2013년 2명, 2014년 4명, 2015년 6명, 2016년 12명, 2017년 7명 등 총 31명이다.
일평생 승승장구하며 꽃길만 걷던 엘리트판사 양승태는 자신의 엘리트 의식을 지키기 위해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무참히 짓밟고 3권 분립이라는 민주주의 기초를 뭉개버렸다. 그리고 그 스스로도 몰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