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H 전관에서 홍익대학교 이은호 교수의 개인전이 전시 중이다. 3월 6일(수)부터 오는 3월 19일(화)까지 ‘순환-시간’이라는 주제로 전시되며 대부분이 100호 채색화 대작이다.
이은호 작가는 동양화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고 현재는 홍익대학교 동양화과와 대학원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며 전통회화기법을 통한 한국화의 현대적 표현에 주력하고 있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단순히 작가의 손으로 이루어지는 활동이 아니라 철학적인 행위다. 작가는 자기 작품의 정신적 토대를 구축하기 위해 고전과 현대를 아우르며 다양한 방법론을 찾아 고심한다.
2000년대 초반까지 이은호 작가는 그림을 통해 인간의 내면을 나타내는 데 관심이 있었다. 주체는 항상 인간이었고, 조형 요소로 자연과 일상의 이미지를 해체하여 혼돈스러운 감정을 이입했다.
최근 이은호 작가 작업의 주제는 ‘생성과 소멸의 반복적 순환’이다. 이는 주체와 객체의 구분이 없다는 것을 전제로 이루어진다. 작품에는 자연과 인간, 인간이 만든 인공물의 이미지들이 유기적으로 얽혀 상징적 의미의 형태나 기호로 나타나는데, 증식하듯 이어지는 이미지들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생각을 뜻한다. 각 형태들은 머리속에 떠오르는 생각의 한 마디와 같다. 그 생각의 마디들이 얽혀 한 작품을 이루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엄마가 된 이은호 작가는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과 자신과 주변 여러 삶의 형태들이 변하는 것을 보면서 지위나 재물, 기쁨과 슬픔도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작가는 “이런 사실을 깨닫고 내 작품에서 주체와 객체의 분별이 없어졌다. 소재의 형태나 크기, 색채가 덜 중요해졌고 발상에 대한 확장과 자유로움이 생겼다”고 말한다. 이전의 작품들이 현실에 근거한 사적인 자기표현이었다면 최근의 작업은 근원적 물음에 대한 탐구의 여정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정제된 표현을 지향한다. 직접적인 감정분출보다 시간을 갖고 하나씩 쌓고 덜어내고 지워가며 마음을 닦듯 그림을 그린다. 한편으로는 화면에서 전혀 다른 이미지들의 조합으로 혼란스러움을 야기시키기도 한다. 이는 형태의 유사성이나 조형적 안정감을 파괴하면서 새로운 시각적 자극을 주고, 의문이나 불편함을 갖게 하기 위한 의도된 장치다.
이은호 작가는 “일상적인 여러 사건들과 관계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들여다보면 긍정적인 요소들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러한 발견들을 그려냄으로써 마음의 위안과 삶의 생동감을 표현하고 싶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