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회에서 옳고 그름의 기준을 공유하지 못하는 사회가 사실 그게 분열의 원인이거든요. 옳고 그름의 기준을 세우지 못하고, ‘친일파도 괜찮다, 반민족 행위자도 괜찮다, 친일경찰도 괜찮다, 일본 밀정이어도 괜찮다’ 이런 식의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도대체 어디에서 옳고 그름의 기준을 잡고 국민이 통합을 할 수 있겠는가를 거꾸로 보자면 반민특위 때문에 국민이 분열한 것이 아니라 반민특위가 와해됐기 때문에 그 이후에 올바른 가치관의 중심을 잡지 못하고, 국민 통합이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하는 것이 역사적 해석으로 보자면 그게 맞는 말이라고 해야겠죠”
역사학자 전우용 씨는 21일 YTN <김호성의 출발 새아침> 과의 인터뷰에서 ‘반민특위 때문에 국민이 분열됐다’는 망언을 한 나경원 자한당 원내대표를 향해 “반민특위가 좌절했다는 것은 과거의 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을 무너뜨려 버렸다는 얘기”라며 위와 같이 일침 했다.
전 씨는 반민특위 위원장이었던 김상덕 선생이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음을 언급했다. 일제에 협력하며 동족을 못살게 군 자들을 응징 없이 어떻게 용서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어떻게 동족의 뼈를 바르고, 뼈를 뭉개고, 살을 찢고, 고춧가루를 들이붓고, 손톱에 대못을 박고, 이랬던 자들을 어떻게 용서할 수 있는가. 이들을 용서하고서 어떻게 새 나라를 만들 수 있는가“
전 씨는 사회에서 옳고 그름의 기준이 세워지지 못한 데 대해 “(이승만 정권이)반민특위가 제 역할을 할 수 없도록 몰아가고 와해시켰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현재 반민특위 표석조차 제자리에 있지 않음을 언급했다.
그는 “반민특위에 대한 기억조차 보존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일부 있다. 돈 때문에. 그런 게 우리의 가치관이 얼마나 제대로 잡혀있지 않은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고 개탄했다.
전 씨는 제헌헌법에 ‘정의, 인도, 동포애에 입각하여 민족적으로 단결을 공고히 해야 한다’는 부분이 있었음을 거론하며 “올바른 헌법적 가치를 수립하기 위해서도 반민특위의 활동이 제대로 결실을 맺었어야 했었다.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헌법 가치도 구현되지 못했고, 또 국민이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판단 기준을 갖지 못하고 사익에 따라서 분열하는 현상을 낳았다”고 설명했다.
전 씨는 특히 반민특위 좌절로, 사람들 간에 대화와 토론도 제대로 진행될 수 없었음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사람들 간 쉽게 적대하게 됐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싸울 때도, 자기들끼리 다툴 때도 뭐가 옳고 그른지에 대한 판단 기준을 가지고 다투지 않습니까? 그것을 알아야 누가 승복을 하든, 아니면 사과를 하든 이러면서 서로 더 친해지고, 그렇게 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이것은 뭐가 옳고 그른지에 대한 기준을 없애버렸기 때문에 이게 서로 토론과 대화가 되는 식의 분열이 아니고, 서로 적대하는 그런 분열이 되어 버린 거죠”
전 씨는 ‘힘이 있으면 부정의해도 덮을 수 있다’의 최초 실례를 보여준 게 반민특위 좌절이었음을 설명하며, 그런 일들이 현재도 반복되고 있음을 설명했다.
“무력을 가지고 있었던 일제강점기의 경찰들이, 경찰로서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했던 사람들이 자기들에 대한 수사망이 좁혀오자 총을 들고 반민특위 사무실을 습격했어요. 사람들을 구타하고, 연행하고, 고문하고, 이러면서 와해시켰던 거잖아요. 그런 현상이 1948년에 일어났을 뿐만 아니라 최근에 예컨대 몇몇 사건에서 보듯 검찰이 그랬느니, 경찰이 그랬느니, 여러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사건 자체를 축소, 은폐하고, 덮어버리려고 들고, 이런 양상이 아직까지 남아있는 것이 우리 첫 단추에서 잘못 끼웠다는 것, 그리고 그래도 된다고 하는 식의 역사적 선례를 남겼다는 것입니다”
이같은 반민특위 좌절이 결국엔 ‘친일하면 3대가 흥하고,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한다’라는 굴욕적인 말을 통용되게 한 셈이다. 그래서 ‘모난 돌이 정 맞는다’ ‘대세에 휩쓸려 살아라’ ‘사회 전체 일보다는, 네 것 챙기는 게 가장 중요하다’ ‘나만 아니면 돼’ 라는 말들이 유행처럼 번졌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유독 한국에서 자기계발서라는 이름으로 나온 처세술, 성공학 책들이 베스트셀러처럼 번진 게 아닐까. 전우용씨는 과거 이런 책들을 읽지 말고, ‘이완용 전기’ 하나만 읽으면 된다고 일침한 바 있다. 매국노의 대명사 이완용이야말로 가장 처세술에 능한 자라는 해석이다.
“서점에 가보세요. 성공한 사람들의 몇 가지 습관이니. 이렇게 해야 성공한다(는 제목의 책들)볼 거 없어요. 이완용 전기 읽으면 되요. 이완용만큼 그 가르침을 충실하게 해 낸 사람이 없어요. 일찌감치 영어 배웠죠. 그리고 인간관계 잘 다져놨죠. 스펙 잘 쌓았죠. 기회를 보면 잡는데 주저하지 않았고 눈치 빠르게 세상의 변화를 잘 파악했어요. 성공하는 사람의 습관 그대로 따라간 거예요. 그런데 가보니까 이완용이야” (딴지방송국 다스뵈이다 42회 중)
전 씨는 앞으로 사회적 갈등을 풀기 위해선 “과거의 잘잘못을 덮고, 미래로 나아가자는 말을 우리가 하지 말아야 한다. 과거의 잘못을 제대로 직시하고, 책임질 부분에 대해선 책임지게 하고, 이런 관행을 만들어나가야 과거와 같은 잘못이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는 지나갔으니까 과거는 잊고, 미래를 향해서 모두 단결해서 나아가자’는 주장은 이승만이나 반민특위를 와해시켰던 사람들이 하던 말이다. 자신의 과거 잘못을 따지지 말자면서, 스스로 자신에게 은근슬쩍 ‘면죄부’를 주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 씨는 반민특위 표석을 새로 세워, 사람들이 기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그래야 제대로 된 역사인식을 후대에 전할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