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음모는 물론 내란선동 유죄선고에 반대하면서) 피고인들의 행위에 실질적 위험성이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 이인복, 이상훈, 김신 대법관
“(내란음모 유죄 의견을 밝히면서) 피고인들이 구체적 공격 대상과 목표 등을 논의했다”
- 신영철, 민일영, 고영한, 김창석 대법관
22일 오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석기 전 의원에 대한 상고심 선고기일을 열고, 이 전 의원에게 내란선동 및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인정해 징역 9년, 자격정지 7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로써 약 1년4개월을 끌어온 헌정 사사 초유의 현직 의원 내란혐의 사건은 마침표를 찍었다.
이날 재판부는 핵심 쟁점이었던 내란음모 혐의에 대해 원심과 같이 무죄 판단을 내렸다.
조직적 차원에서 사전에 내란을 모의했다거나, 이를 위해 구체적인 준비행위를 했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2013년 월 이석기 전 의원이 구속될 때부터 비상한 관심을 끌었던 지하명혁 조직 ‘RO’의 존재에 대해서는, “제보자의 추측에 불과하다”며 원심과 같이 실체를 부정했다.
반면 내란선동 혐의에 대해서는 “이석기 의원과 피고인들이 전쟁 발발을 예상하고, 회합 참석자들에게 남한 혁명을 책임지는 세력으로서 국가기간시설 파괴 등을 비롯해 구체적인 행동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며, 원심과 같이 유죄판단을 내렸다.
이어 대법원 재판부는 ‘RO’의 존재는 ‘증거 부족’을 이유로 부정하면서도, 이석기를 정점으로 130여명의 조직원이 수직적 상하관계를 구축한 특정집단의 존재는 인정했다.
이날 대법원의 판단은 서울고법 항소심의 그것과 궤를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즉, 대법원과 원심인 서울고법 항소심 판단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이석기 전 의원은 국헌문란과 국가기간시설 파괴를 목적으로 위계질서를 갖춘 특정집단의 회합을 주도했으며, 이석기 의원은 이들에게 내란을 선동했다”
“다만, 이석기 전 의원과 피고인들이 내란목적 달성을 위해 구체적인 준비를 했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므로, 내란음모 부분은 무죄로 본다”
대법원 판결이 원심과 같은 입장을 취한 반면, 지난해 12월19일 통진당에 대한 위헌정당 해산결정을 내린 헌법재판소의 판단과는 ‘느낌’이 다르다는 판단이 적지 않다.
특히 지하혁명조직 ‘RO’의 존재 및 그 성격에 대한 판단에 있어, 헌재와 대법원이 대조적인 판단을 내렸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이런 분석은, 대법원이 구 통진당 잔존 세력이 헌재의 결정에 반발할 빌미를 줬다는 비판과 맞닿아 있다.
대법원이 헌재에 대한 견제심리에 매몰돼, 국민적 혼란을 가중하는 오판을 내렸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같은 이유다.
그러나 대법원과 헌재의 판단은 그 대상이나 성격에 있어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어, 통진당 해산결정과 이석기 형사 상고심 판결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난센스라는 의견도 많다.
통진당 해산심판에서 헌재가 판단은 것은 통진당의 목적 및 활동의 위헌성이다. 법무부는 이와 관련해 통진당 강령에서 나타난 진보적 민주주의, 민중주권주의의 실체와 성격을 규명하면서 ‘목적의 위헌성’을 입증하는데 성공했다.
통진당 활동의 위헌성 역시, 민혁당을 비록한 주사파 핵심들이 민노당을 거쳐 통진당 창당에 주도적으로 참여했으며, 이들이 민노당 및 통진당의 핵심당원으로 활동한 사실을 밝힘으로써, 입증이 됐다.
이에 반해 이석기 상고심은 이석기 전 의원과 함께 기소된 피고인들이 지하혁명조직 ‘RO’를 통해 내란을 모의했느냐가 핵심이었다.
즉, 통진당 정당해산 심판에 있어, 이석기 전 의원의 내란모의 혐의는, 정당 활동의 위헌성을 입증하는 주요 쟁점 중 하나였을 뿐, 해산심판 전체의 결론을 바꿀만한 절대적 사안은 아니다.
이렇게 볼 때, 이석기 전 의원이 ‘국헌문란의 목적’을 가지고, 내란을 선동한 점에 대해 유죄를 인정한 대법원의 판단을 헌재의 그것과 상반된 것으로 보는 것은 적절치 않다.
대법원의 판단은,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수 없을 만큼 확신할 수 없다면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라”는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을 충실하게 지킨 결과라는 분석도 있다.
재판부가 ‘RO’의 존재를 부정한 것이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재판부는 ‘RO’에 대해 “강령과 목적, 지휘체계 등을 갖춘 조직이 존재하고 회합 참석자들이 그 구성원이라는 점이 충분히 증명되지 않았다”며, “RO는 제보자의 추측에 불과하다”고 판시했다.
판결내용이 알려지면서 새로운 해석도 나오고 있다.
내란음모는 물론 내란선동에 있어서도 유죄를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며, 무죄취지의 소수의견을 낸 세 명의 대법관과, 내란음모 유죄를 인정하면서 사건을 파기환송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대법관 네 명의 존재가 이석기 전 의원의 운명을 갈랐다는 분석이 그것이다.
우선, “(내란음모는 물론 내란선동 유죄선고에 반대하면서) 피고인들의 행위에 실질적 위험성이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이석기 전 의원과 통진당 측 손을 들어준 대법관은 이인복, 이상훈, 김신 대법관이다.
이인복, 이상훈 대법관은 이용훈 전 대법원장이 제청권을 행사해 이명박 대통령이 임명했다.
김신 대법관은 이른바 ‘향판’ 배려 차원에서 2012년 양승태 대법원장이 제청권을 행사했으며, 역시 이명박 대통령이 임명했다.
이들은 추천 당시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으로부터 호된 비난을 받았다. 특히 김신 대법관의 경우, 좌파 언론들이 ‘친재벌’ 성향이란 보도를 잇따라 내보내면서 청문회 낙마가능성까지 거론됐다.
그러나 이인복, 이상훈, 김신 대법관은 임명 후 가장 소수의견을 많이 낸 대법관으로 꼽히고 있다. 때문에 좌파 매체들로부터 ‘순응형’ 대법관이란 비난을 받았던 이들의 ‘변신’은 법원 안팍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국가보안법 위반을 제외하고, 내란선동마저 유죄라고 본 이들의 판단이 조금만 더 세(勢0를 얻었다면, 이석기 전 의원 사건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제로섬 게임이 될 뻔 했다.
이들의 대척점에 서, “피고인들이 구체적 공격 대상과 목표 등을 논의했다”며 이석기 전 의원의 내란음모 유죄를 주장한 대법관은 신영철, 민일영, 고영한, 김창석 대법관이다.
신영철, 민일영 대법관은 2009년 이용훈 대법원장이, 고영한, 김창석 대법관은 2012년 양승태 대법원장이 각각 제청권을 행사했으며, 모두 이명박 대통령이 임명했다.
만약 이들의 주장에 동조하는 대법관들이 몇 명만 더 됐어도, 이석기 전 의원의 재판은 원심인 서울고법으로 되돌아갔을 것이다.
내란선동 혐의마저 무죄로 본 이인복, 이상훈, 김신 대법관은, 이석기 전 의원의 내란음모 무죄 판단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신영철, 민일영, 고영한, 김창석 대법관은 “이석기 전 의원이 국헌문란을 목적으로 내란을 선동했다”는 판단을 이끌어 내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 사법부가 ‘방어적 민주주의’의 원리에 눈을 떴다는 점에서 이번 판결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이번 판결 역시, “정당활동의 자유를 빌미삼아 자유를 파괴하는 자유까지 보장할 수 없다”는 헌법의 기본 원칙이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이 그것이다.
한편 이석기 전 의원은 이날 선고가 끝난 직후, 오른손을 치켜들면서 큰 목소리로 “사법정의는 죽었다”고 외치는 등 자신의 혐의를 끝까지 부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