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경-21, 180 x 180cm Acrylic on canvas - Scratched 2015/사진제공=장은선 갤러리
[뉴스프리존=심종대 기자]하얀 캔버스 위 밑 작업을 하고 색을 입혀 형상을 칼로 긁어낸다. 이러한 작업방법은 유화물감에서 아크릴로, 붓에서 칼날 끝으로, 그리기에서 긁기로 바뀌어 나의 화구는 십여 년이 넘게 ‘붓’이 아닌 ‘칼’이다.
작가는 말한다. 나의 작품은 온전히 일상의 생활환경에서 비롯됐다. 유년시절 외조부의 유품 중 빨간색 채색분말 물감의 강렬한 기억과 절지(折枝), 영모(翎毛), 화훼(花卉), 산수화(山水畵) 작품들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내 안의 풍경이 만들어졌다. 칼은 내가 가진 열정과 에너지를 분출하고 스치는 칼날의 끝 하나에도 예민하게 표현되어지는 나의 손끝과도 같고, 칼로 찍어 내리듯 긁는 행위의 시간은 반복되는 수직의 선으로 묵묵히 강직하게 때로는 유연한 곡선으로 쌓인 긁는 산수로 완성된다.
칼로 긁는 이미지는 인물에서 시작해 문자도, 전통산수를 기반으로 한 산수경시리즈, 금강 전도에서 시작된 붉은 산에 이르러 다양하게 변화했다. 내게 반복적으로 긁는 행위는 인내의 시간을 거쳐 흐트러진 마음을 잡아주는 정신적 수양 과정이다.
‘칼로 그리는 산수’ 전은 화폭 안에 산과 바위, 계곡, 호수 등을 가득 채우던 사각의 풍경에서 나아가 풍경의 일부분을 확대하거나 산의 형세를 강조하고 부벽준법을 통한 뾰족하게 솟아 오른 봉우리들과 기암괴석들로 고루한 화면에 생동감을 더했다.
칼끝-풍경과 같은 최근작업은 정선의 양화진, 청풍계 작품 등을 패러디하면서 숲속 곳곳에 숨어 있는 호랑이, 사슴, 멧돼지 등의 동물들은 민화적 해학과 위트로 숲의 침묵을 깨우고, 삶의 무게만큼 쌓인 칼로 긁어내는 풍경은 캔버스 위 빈 공간에서 칼춤을 추듯 날카로운 칼날 끝으로 화폭을 누비며 많은 이야기를 만든다.
오는 29일부터 7월 5일까지 인사동 장은선 갤러리.
심종대 기자, simjd1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