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이재정 연구관이 21일 상설전시관 1측 고려 3실에서 테마전 '활자의 나라, 조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심종대 기자
[뉴스프리존=심종대 기자]국립중앙박물관(관장 이영훈)은 테마전 ‘활자의 나라, 조선’을 21일부터 오는 9월 11일까지 상설전시실 1층 고려 3실에서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조선시대 활자는 무려 82만여점으로, 15세기에 주조된 한글 금속활자 30여점을 비롯해 17~20세기에 만들어진 금속활자 50만여점, 목활자 32만여점, 도자기 활자 200여점 등 82만여 자의 전모를 최초로 공개했다.
이번 전시물은 대한제국까지 실제 인쇄에 사용되다가 일부 흩어진 상태로 조선총독부로 넘겨졌다가 이후 조선총독부박물관으로 이관된 것으로, 특히 50만여 자에 달하는 금속활자는 세계 최대 규모이면서도, 질적으로도 세계 최고의 수준이다.
조선시대 금속활자는 글자체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제작 기술도 정교해 예술품으로도 손색이 없다. 검박함을 미덕으로 여겼던 유교 국가 조선에서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예술품을 만드는 대신, 금속활자와 이것으로 인쇄한 책에 조선시대 예술과 기술을 집약시켰다.
특히 이번 전시는 조선시대 활자 보관장을 분석, 복원한 결과를 바탕으로 활자를 직접 사용하고 책을 찍던 당시 사람들의 독특한 활자 분류와 방법을 처음 소개하고 있다.
이재정 학예연구관은 "한 왕조에서 일관되게 사용하고 관리한 활자가 이처럼 많이 남아있는 예는 다른 나라에서 찾아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중국에는 근대 이전에 주조된 금속활자가 남아있지 않고 일본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만든 금속활자 3만여점이 전해올 뿐이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관심이 쏠리는 부분은 전시장 한 가운데는 8x1.5m의 면적에 활자를 보관했던 옛 서랍에 넣은 활자 5만여자를 펼쳐놓은 부분으로, 과히 조선이 ‘활자의 나라’였음을 실감케 했다.
이재정 학예연구관/사진=심종대 기자
국가와 왕실의 보물이자 전유물로 여겨졌던 금속활자는, 유교 통치를 위한 필요한 책이나 통치자의 권력을 보여주는 책을 간행하는데 주로 사용됐다. 1403년(태종 3년) 태종이 조선 최초의 금속활자인 계미자(癸未字)를 만든 이후의 통치자들은 수 십 차례에 걸쳐 수백만 자의 활자를 만들었지만, 임진왜란 이전 조선의 활자는 15세기에 주조된 한글 금속활자 30여 자 외에는 남아 있지 않다.
특히 이번에 공개된 금속활자 중에는 정조에 관한 기록이 많다.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탄생 60주년 되는 해에 사도세자의 묘소가 있는 화성에 행차한 기록을 담은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는 활자로 인쇄된 최초의 의궤로 남았다.
이번 전시는 활자와 책을 개별적으로 설명하는 기존의 전시 방식을 탈피해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활자를 7개 주제로 나눠 소개했다. 조선시대 정치와 문화사에서 활자의 제작과 사용이 갖는 의미를 살펴볼 수 있다.
또한 지난 수년간의 활자 정리와 조사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정확하게 고증되지 않은 활자들의 실체를 밝히고, 한 번도 선보이지 않았던 활자들도 소개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정조의 정리자(整理字)를 만드는 과정에 참고용으로 수입한 목활자를 처음 공개했다. 이 활자는 청나라 궁중에서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13세기에 위그루 문자로 만든 활자를 제외하고는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활자이다.
활자와 함께 전해 오는 활자 보관장들의 전모도 처음으로 공개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전시를 위해 지난해부터 이 장들을 수리 복원하면서, 장의 제작연대와 활자 보관 방법 등을 밝혀냈다. 3종의 장 가운데 위부인자(衛夫人字)[갑인자(甲寅字)]의 별칭은 나무 나이테 분석 결과 17세기에 만든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조선시대 연대를 알수 있는 목가구가 별로 없다는 점에서도 의미있는 자료이다.
정리자(整理字)를 보관했던 장에는 안쪽 깊숙한 곳에 소목장(小木匠) 이름과 제작연대가 쓰여 있어, 이 장이 1858년(철종 9)에 정리자를 다시 주조할때 만든 것으로 확인됐다.
활자장들의 서랍에서 나온 기록과 조선시대 활자의 수량을 기록한 목록인 자보(字譜)를 대조해 활자 보관 순수와 방식을 알 수 있었고, 당시 활자들은 한자 자전(字典)과 달리 부수를 줄여, 효율적으로 보관, 관리 했다.
이재정 연구관은 "한자 자전(字典)과 달리 부수를 줄여 효율적으로 보관 관리했고 획수가 아니라 자주 쓰는 글자와 그렇지 않은 글자로 나눠 보관했다"면서, "조선시대 활자를 다루던 사람들의 독창적인 방식"이라고 덧붙였다.
심종대 기자, simjd1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