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국립극단
[뉴스프리존=심종대 기자](재)국립극단(예술감독 김윤철)은 7월 프랑스 작가 플로리앙 젤레르의 대표작 <아버지>와 <어머니>를 동시에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올린다.
작가 젤레르는 30대의 젊은 나이에도 수많은 희곡상을 수상하면서, 프랑스 문단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젊고 재능 있는 작가로, 두 작품 모두 90분 내외로 짧은 희곡이지만 노령화, 치매, 빈 둥지 증후군, 우울증 등 현대 사회의 사회적, 심리적 병인들을 깊이 다루고 있다.
이번 공연은 국립극단이 표방하는 ‘배우중심 연극’으로 <아버지>에서는 박근형이 치매에 걸린 아버지 앙드레 역을, <어머니>애서는 윤소정이 빈 둥지 증후군을 앓는 어머니 안느 역으로, 이호재가 안느의 남편 피에르 역을 맡았다.
두 작품 모두 프랑스를 비롯해 영국, 독일, 미국의 주요 무대에서 각 나라를 대표하는 국민배우가 출연하면서 큰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이번 국립극단 공연에는 박근형, 윤소정, 이호재 외에도 김정은 우정원, 박윤희 문현정 등이 함께한다.
최근 국립극단의 <시련>과 <키 큰 세 여자>에서 원작에 충실한 세심한 해석과 연출력을 보여 준 박정희와 이병훈 연출이 각각 <아버지>와 <어머니>의 연출을 맡아 치밀한 고도의 심리극을 선보일 예정이다.
국립극단은 올해 기획주제인 ‘도전’에 걸맞게 프랑스의 천재작가의 최신작 두 편을 가지고 기획적인 도전을 시작했다. 다른 해에 발표된 <어머니>와 <아버지> 두 작품이 그 형식과 주제에 있어 닮은꼴인 점에 착안해 두 작품을 하나의 무대에서 날마다 번갈아 공연하고, 주말에는 두 작품을 연어 공연한다.
동일한 무대에 서로 다른 두 공연을 동시에 올리는 기획은 국내에서 좀처럼 찾기 힘들다. 두 작품을 음악의 대위법처럼 나란히 교차공연하면서 관객들은 아버지의 치매와 어머니의 우울증을 1인칭으로 보여주고 있다.
도시의 어느 아파트 거실로 꾸며진 무대는 차츰 비워져가면서 두 작품의 주인공들, 늙은 아버지와 중년의 어머니의 상실감을 형상화하면서 사실적이면서도 상징적인 작품의 분위기를 담아낸다.
김윤철 예술감독은 “이 두 작품은 감상의 연극이 아닌 체험의 연극으로 형식과 내용의 일치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요즘과 같은 고령화 시대에 젊은 세대가 적극적으로 관람해 극 중 아버지와 어머니가 겪는 고통, 외로움, 존재적 위기를 그들과 함께 체험함으로서 스스로의 미래를 정신적, 심리적으로 대비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사진제공/국립극단
# 기억을 잃어가는 한 개인의 소멸 ‘치매’...멀지 않은 우리 주변의 이야기 ‘아버지’
플로리앙 젤레트의 7번째 희곡 <아버지>가 국내 초연된다. 자신을 잃어가는 낮선 두려움에 갇힌 노년의 아버지를 온몸으로 표현하면서 점차 비워져 가는 무대를 가득 채우는 아버지 앙드레 역은 배우 박근형이 맡았다.
치매에 걸린 아버지가 자신의 관점에서 딸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치밀하면서도 재치 있게 묘사한 이 작품은 고령화 사회를 살아가는 지금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공연은 치매 환자의 이야기를 슬프고 안타깝게 묘사하기보다 한 인간의 기억과 현실이 맞부딪쳐 개인이 소멸되어가는 과정으로, 장면마다 바뀌는 인물들과 그들의 이야기는 관객들을 끊임없이 당황케 한다.
# 가족을 위해 사랑과 희생을 아끼지 않는 ‘어머니’...모두를 떠나보내고 빈 둥지에 혼자 남다.
플로리앙 젤레트의 <어머니>는 장성한 자녀를 떠나보낸 뒤 찾아온 상실감을 겪는 어머니의 내적 갈등과 그로 인한 주변인들과의 외적 갈등을 다루고 있다.
사진제공/국립극단
배우 윤소정이 지난 2013년 ‘에이미’ 이후 무대로 돌아와 <어머니>의 주인공 안느 역을 맡아 고독 속에 붕괴되어 가는 어머니의 깊은 상실감을 관객에게 쏟아낼 예정이다. 속을 알 수 없는 남편 피에르 역에는 윤소정과 연극무대에서 열 세 번이나 부부역할로 호흡을 맞춘 배우 이호재가, 어머니의 넘치는 사랑에 부담을 느끼는 아들 니콜라와 안느의 질투를 불러일으키는 니콜라의 여자친구 엘로디 역에는 박윤희와 문현정이 각각 맡는다.
여성의 삶을 세심하게 그려낸 이병훈 연출이 가족에게 모든 것을 바쳤다가 중년기에 접어들면서 정체성을 잃어버린 여성의 두려움과 불안감을 그려내고 있다.
자식을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어머니>는 수년간 자녀에게 조건없는 사랑을 준 것에 대한 보상이 자신을 떠나는 것이라면 그것을 감정적으로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 작품은 전 세계적으로 사회적 문제로 다뤄지고 있는 ‘빈 둥지 증후군’을 소재로 하고 있다.
빈 둥지 증후군은 중년의 부부가 자기 정체성 상실을 느끼는 심리적 현상으로, 유난히 기러기 아빠가 많은 우리나라에서는 주부뿐만 아니라 중년 남성들에게도 빈번히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작품에서 애지중지하는 아들의 독립, 아들을 자신으로부터 빼앗았다고 하는 아들의 여자 친구에 대한 질투심, 남편의 외도에 대한 병적인 믿음 등 상실감과 의심으로 가득차 붕괴 직전까지 온 어머니의 심리를 심오하게 그렸다.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면서도 조금씩 변주해 우울증을 앓는 어머니가 현실감각을 점차 잃어가는 모습을 탁월한 심리극으로 보여준다. 어머니로서 그리고 자신으로서 회피할 수 없는 헤어짐에 맞닥뜨린 한 가족의 일상을 객관적으로 그려냈다.
심종대 기자, simjd1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