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국립극단
[뉴스프리존=심종대 기자]프랑스 작가 플로리앙 젤레르(Florian Zeller)의 대표작 ‘어머니(Le Mére, 2010)’와 ‘아버지(Le Pére, 2012)’의 기자간담회가 지난달 27일 명동예술극장에서 열렸다.
젤레르는 30대의 젊은 나이에도 수많은 희곡상을 수상하면서 프랑스 문단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젊고 재능 있는 작가로, 두 작품 모두 90분 내외로 짧은 희곡이다. 하지만 이 두 작품 속에는 노령화, 치매, 빈 둥지 증후군, 우울증 등 현대사회의 사회적, 심리적 병인들을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이날 간담회에는 김윤철 국립극단 예술감독, 윤소정 배우, 박근형 배우, 이병훈 연출, 박정희 연출가 참석했다.
하나의 무대에서 두 작품을 올리는 도전적인 기획에 대해 김윤철 예술감독은 “젤레르라는 작가는 유럽 연극에서 정점을 이룬 헤롤드 핀트에 견줄 만큼 새롭게 떠오르는, 이미 전성기에 접어든 듯한 젊은 작가로, 연극적 상상력이 헤롤드 핀트를 연상시키는 작가”라면서, “국립극단에는 여러 기획 주제가 있다. 이번에는 유럽 연극의 신작을 발표하자는 생각에서 자리가 마련, 이번 작품에서는 우리 국립극단이 표방하는 ‘배우’ 중심의 연극을 구현할 수도 있게 됐다”고 말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관객들로 하여금 치매 환자의 머릿속에 들어가 치매 환자가 되어 감상할 수 있게 하는 독특한 구조를 갖고 있다. 작품이 쓰인 시간적 차이가 다소 있긴 하지만 무대 배경이 거의 일치한다. 자기를 돌보지 않는 딸을 그리워하는 아버지, 새 여자 때문에 자신을 더 이상 찾지 않는 어머니의 그리움과 외로움이 강력한 정서로 나타난다.
이 작품들은 현재 우리의 고령화, 기억상실, 빈 둥지 증후군 등이 병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특히 한국사회 현재에 크게 의미 있는 것이 이런 현상들을 단순히 ‘문제’로 치부하면서 ’복지‘적 차원으로 해결하기 위한 차원에서 멈추지 않고 있다. 노인문제는 젊은이들의 문제로 젊은 사람들에게 더 심각해질 수 있는 문제다. 왜냐 하면 노인들을 보살피는 것이 사회적 문제로 더 크게 다가오기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실제로 우리 사회에 빠르게 다가오고 있기도 하다.
이 작품은 관객으로 하여금, 아버지의 머릿속에서 들어가 아버지의 망각과 착각 등을 경험하게 해준다. 또한 어머니가 아들에 대한 편집 때문에 환상과 현실을 오가는 상황이 그대로 연출되기 때문에, 제3자의 시점이 아니라, 1인칭적인 시점으로 바라볼 수 있다.
‘아버지’는 박정희 연출이, ‘어머니’는 이병훈 연출이 맡은 의도에 대해 김윤철 예술감독은 “굉장히 선명한 의도가 있었다”면서, “왜냐하면 아버지를 이해하려다 보니까, 아버지를 향한 딸의 시선이 매우 중요했다. 돌보면서 아버지로부터 사랑받지 못한 안느의 입장이 중요하게 다가왔다. ‘어머니’라는 작품의 주인공 또한 안느로, 젤레르가 끊임없이 묘사하는 인물이 ‘안느’다. ‘어머니’의 안느도 ‘아버지’의 안느처럼 남편을 그렇게 대하지 않았나 싶었다”고 말했다. .
김 감독은 이어 “여성의 입장에서 아버지를 봤고, 지겹게 간섭하고 사랑하는 어머니로부터 해방되고 싶은 아들의 입장에서 어머니를 봤다”면서, “그래서 남성과 여성 연출가를 교차시켜, 이 작품들을 좀 더 객관적으로 조망하는 구도가 성립되지 않을까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번 작품에는 윤소정 배우, 박근형 배우, 이호재 배우가 출연한다.
배우 윤소정/사진제공=국립극단
배우 윤소정은 지난 2013년 ‘에이미’ 이후로 오랜만에 연극 무대에 돌아왔다.
배우 윤소정은 “처음에 이 희곡을 읽었을 때 ‘희곡을 이렇게 쓸 수도 있구나’ 하면서 깜짝 놀랐다. 작가가 우리의 고정관념을 막 흩뜨리고 우리가 ‘이거다’라고 생각하면 그 다음 장에서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면서, “1장이나 2장이나 같은 얘기로, 같은 얘기 같은 장소이지만, 전혀 다르게 표현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말 대단한 작가다, 배우로서 한 번 해보고 싶다는 도전적인 생각이 들었다. 그런 만큼 내가 주제파악을 못했구나 싶었다”면서, “지금은 신경성 위염에 걸려서 소화가 안 될 정도”고 덧붙였다.
또 “하지만 이런 고통이 없으면 작업하는 의미가 없다. 너무 쉬운 것은 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어려운 것에 도전하고픈 마음이 든다. 이 작가가 특별히 여러 장에서 이런 얘기를 한다. 남편이 이 어머니한테는 아들이고, 아들한테서 남편을 본다는 것”이라면서, “이 부인은 평생 해온 것이 가족을 위해 집에서 준비한 것이 다였다. 그것은 희생이 아니라 아내의 즐거움이었다. 그러면서 나이 먹고 남편도 아들도 여자가 생겨 혼자 남겨지니, 내가 더 이상 무언가를 해줄 수 있는 상대가 없어지는 것으로, 그때부터 그녀는 빈 둥지 증후군을 앓게 된다”고 설명했다.
윤소정 씨는 “참 안타깝긴 하지만, 작가가 그런 방향으로 몰아가면서도 흩뜨리고, 여기에서 얘기한 것이 저기에서 중복이 된다. 안나는 빨간 원피스를 좋아한다. 개인적으로 이 빨간색의 의미가 뭘까 고민했을 때 ‘피’를 의미한다 생각했다.”면서, “ 피는 생명으로, 여성이 폐경이 됐을 때 여성의 삶이 끝난다고 생각하곤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래서 ‘빨강’에 대한 집착이 생기는 것으로, 어떻게 하든 이 빨간색을 보여주면서 남편과 아들의 사랑을 되찾고 싶어 하는 간절함, 그것이 가슴에 와 닿았다.”면서, “이 엄마한테는 아들과 남편을 위한 것이 자신의 삶 전부였기에 이럴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관객들이 연극을 통해 이런 것을 느꼈으면 좋겠다. 자기 일을 가지는 것으로, 너무 한 가지에만 집착하지 말고, 자기가 즐길 수 있는 어떤 일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이게 (내) 나름의 관객들을 향한 관람 포인트”라고 전했다.
배우 박근형/사진제공=국립극단
배우 박근형은 1960년대 국립극단을 대표하는 배우로 활동했다가 TV와 영화에서 오랜 시간 활동했다. 1967년 ‘이끼 낀 고향에 돌아오다’를 끝으로 국립극단을 떠났다가 2012년 ‘3월의 눈’으로 국립극단을 다시 찾았다.
이에 배우 박근형은 “김윤철 예술감독님한테 제안 받고 이 '아버지'라는 작품을 읽어봤다. 극작법이나 표현방법이 여느 작품과 달랐다. 우리나라에서 초연하는 작품이자, 퍽 재밌게 읽었던 지라, 단숨에 하겠다고 말했다”면서도, “일정을 조율하는 어려움은 있었지만, 연극은 나의 모태다. 언제든지 돌아오고 싶었고, 어디서든지 얘기하면 좇아가서 하고픈 욕망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아버지는 권위적인 아버지가 가족들에게 사랑을 갈구하지만 자기 시각에서는 다른 인물로 표현되는 이중성, 사회 고발성 등이 함축돼있다. 배우로서는 이 작품을 표현한다는 사실이 연기의 폭을 넓히게 해주는 기회일 것”이라면서, “40년 만에 다시 명동의 이 무대에 선다는 자체만으로도 기쁘고, 연극이 내 일생에서 내 인생의 가는 길에 꽃을 피워줬듯이, 내가 가는 마지막 길에도 꽃을 피워줬으면 하는 소망이 간절하다”고 설명했다.
다른 작품에서 한 여인의 삶을 세심하게 그린 바 있는 이병훈 연출은 이번 ‘어머니’는 어떻게 표현됐는가에 대해 “사실 여성과 어머니는 굉장히 다른 것 같다. 여성들은 이해할 것 같은데, 이번에 ‘어머니’를 작업하면서 어머니란 존재는 정말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했다”면서, “어쩌면 이 작품은 생물학적 비극이라 생각한다. 동물들은 새끼가 성장하면 자연스럽게 보내게 돼 있다. 이것이 자연의 순환이자 섭리지만, 어머니라는 존재만은 너무 많은 진통을 겪으면서 끝까지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 특별한 존재”라고 설명했다.
이 연출은 이어 “나도 어머니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 프랑스에서 이 연극을 본 관객이 ‘공연 끝나고 어머니한테 전화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그만큼 어머니의 심정이 이 작품에 잘 녹아져 있다. 누구나 어떤 극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서, “이 작품은 어머니가 극한 상황에 처했음을 그렸다. 현실과 환상에 대한 구별이 사라지면서 어머니의 의식이 붕괴되어가는 과정을 그렸다.”고 밝혔다.
이 연출은 또 “‘현실이야’라고 생각했다가도 ‘비현실이었나?’ 싶게 되는 식으로 현실과 비현실에 대한 경계가 모호하고, 또한 자식이 어머니를 떠나는 방법이 어머니를 죽이고 갈 수 밖에 없고, 어머니 또한 그걸 받아들인다. 어떤 묘한 신화적 요소도 배경으로 갖고 있다”면서, “그래서 이 작품이 우리 현대인들한테 주는 메시지라는 건 ‘어머니’에 대한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앞으로 미래가 암 다음으로 제일 많은 병이 우울증이라고 한다. 이게 어머니의 전형을 보여주면서 현대인들이 겪는 정체성 혼란 등을 표현하면서 현대성을 띤다. 결국 이 어머니가 끝나는 장면에서 아들에 대한 집착을 하지만, 이제는 관객들한테 주체적인 삶을 찾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고독함, 절망감 등이 잘 표현되길 바란다.”고 부탁했다.
배우 윤소정-박근형/사진제공=국립극장
일반인이 아니라 치매에 걸리는 인물의 시선이 독특한 작품 연출을 맡은 박정희 연출은 “대본이 훌륭하다. 내가 연출로서 잔재주를 부려도 소용없는 작품으로, 어떻게 하면 대본을 충실하고 깊이 있게 해석해서 무대에 형상화할까가 가장 큰 문제였고, 실제로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면서, “작품은 마치 작가가 치매에 걸린 것처럼 자기 기억을 잃어가면서 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1인칭 화법으로 이뤄진 작품으로, 매우 독특한 형식이다. 시간이 퍼즐처럼, 그리고 영화 ‘메멘토’처럼 하도 쪼개져 있어서 처음에는 거기에서 고난을 받았으나, 지금은 정리가 다 됐고, 그걸 다시 한 번 구축하는 단계에 있다”고 설명했다.
박 연출은 이어 “이 작품은 가슴을 매우 묵직하게 하고 서늘해지게 하는 작품으로, 인간의 정체성이 과연 어떻게 구축되고 있는가에 대한 얘기긴 하다. 기억을 잃어가는 것도 무섭지만, 자기가 자신이 누군지 모른다는 것이 무섭다는 것”이라면서, “이 얘기가 던져지는 스펙트럼이 굉장히 다양할 것 같다. 이 작품이 던질 수 있는 정서적 가치는 굉장히 다양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박 연출은 또 “정체성을 잃어가는 한 아버지는 자신이 키워 온 가정 안에서 이물질로 작용되고 있다. 그 관계에서 딸과 딸의 남자친구 등이 아버지와 어떻게 관계하고 있는지, 사회적 문제를 약간 느꼈다”면서, “이 작품이 소멸해가고 있는 한 인간의 의미에 대해, 그리고 이물질을 다루는 그 주위사람들이라는 사회적인 문제. 이 두 가지를 병행하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각자 실제로 어머니, 아버지로서 이 작품을 하면서 공감가는 대목이 있었는 지’에대해, 윤소정 씨는 “대본에서 맨 마지막 장면에, 기다리는 아들에게 한 번도 전화하지 않고, 남편이 다른 여자가 생겼을 거라 생각하고 미워하지만, 마지막에는 결국 둘 뿐”이라면서, “남편밖에 없더라. 남편한테 하는 대사 중에 ‘애들은 우리 인생에서 사라졌어. 애들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려. 그리고 우리한텐 아침의 추억만이 남아 있어. 매일같이 일찍 일어나서 아이들을 위해 준비했던 아침들’이라는 말이 있다”고 말했다.
박근형 씨는 “나이 들면서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면 가족 간의 사랑을 많이 느꼈고, 내 욕심대로 하고픈 대로 살다 보니 가족에게 불행을 겪게 했던 점도 있다. 그냥 봐도 공감이 되는 작품으로, 더구나 치매 때문에 과거의 기억과 현재라는 시점이 교차되는 게 절실하게 공감된다”면서, “특히나 내가 누군지 모르겠다는 말을 할 때 너무나 공감돼 눈물이 난다. 서양이나 동양이나 구분 없이 관객들에게도 공감을 충분히 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배우는 ‘연기를 잘 한다 못한다’ 보다 ‘그 역할에 성공했다, 실패했다’가 중요하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배우 박근형으로 열심히 연기하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심종대 기자, simjd1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