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에 이어
[뉴스프리존=심종대 기자]독도가 한국땅이라는 것은 메이지 정부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었던 사실이다. 1905년 독도를 병탄한 메이지 정부조차도, 처음에는 독도가 조선의 영토라고 인식하고 있었지만, 지금에 와서 자기네 땅이라고 억지 주장을 펴고 있는 것이다.
메이지 정부는 사다 하쿠보 등을 부산에 파견시켰다. 그의 임무는 조선과의 국교 재개 및 병탄 가능성을 내탐하는 것으로, 그 중 눈에 띄는 것은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가 되어 있는 전말을 조사하라는 지시사항이었다.
1870년 조선을 내탐하고 귀국한 사다 하쿠보 일행은 ‘조선국교제시말내탐서’라는 제목의 ‘조사결과보고서’를 제출했다. 병탄을 주장했던 사다 하쿠보였지만, ‘독도는 울릉도의 부속섬’이고 독도에 관해서는 기록된 서류가 없다고 보고 했다.
결국 그의 보고서에 의해서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였다는 사실을 외무성과 태정관이 확인하게 된 셈으로, 이에 따라 1877년 메이지 정부는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의 영토로 더욱 분명하게 인정하게 된 것이다.
한편, 일본 내무성은 1876년 10월 16일자 공문을 통해 울릉도와 독도를 시마네현에 포함시킬 것인가의 여부에 관한 질의를 시마네현으로부터 받는다. 내무성은 약 5개월 간에 걸쳐 심도 있게 검토한 끝에 이 건은 1696년(막부 정부가 ‘울릉도.독도 도해금지령’을 발표했던 해)‘에 해결된 문제로 울릉도와 독도는 조선의 영토로서 일본과는 관계없는 땅이라고 확실하게 결론을 내린다. 이후 그들은 또다시 엉뚱한 말과 행동을 늘어놓고 있다.
1905년 1월 28일, 독도의 시마네현 편입을 일방적으로 결정한 일본 정부는 한동안 그 사실을 공개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1906년 3월 28일 시마네현 관리들이 울릉도에 방문하면서부터 그 사실이 알려지게 됐다. 독도를 거쳐 울릉도에 들린 시마네현 관리 간다 요시타로 등 일본인들이 울릉군수 심홍택에게 독도가 일본에 편입됐다고 알린 것이다.
독도가 일본의 영토가 됐다는 소식에 깜짝 놀란 심홍택은 바로 이 사실을 강원도 관찰사 이명래에게 보고했다. 이명래도 이 사실의 긴급성과 중대함을 인식하고 곧바로 울릉군수의 보고내용을 의정부 참정대신에게 보고했다.
의정부 참정대신 박제순은 1906년 5월 20일자 지령 제3호를 통해 ‘독도가 일본 영토가 되었다는 것은 전혀 사실무근 이며 이 일을 세밀히 조사하여 다시 보고할 것’을 지시했다. 이를 통해 당시 대한제국 정부 역시 독도에 대해서, 독도가 우리의 영토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었다는 하나의 반증이 된다.
이후 한일관계는 계속해서 안좋은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일본의 터무니 억지 주장이 원인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일본의 독도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욕심 속에 숨어 있는 제국주의적의 망상 때문이다.
# 일본은 독도를 자기들의 영토라고 말할 자격 없다(1)
이 부분을 설명하기에 앞서, 독도가 한국땅이라는 근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먼저 ‘고지도 속의 독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목판본 조선전도, <해좌전도>
사진/<해좌전도>19세기 중엽. 98.3cm x 56.0cm. 영남대학교 박물관
19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되는 <해좌전도>는 대표적인 목판본 조선전도이다. 지도의 여백에 地誌와 관련된 내용을 기록해 놓아 지도만으로 확인하기 힘든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산맥솨 하천, 육로, 도경계 등이 표시돼 있다. 특히 울릉도와 대마도, 제주도는 육지와의 뱃길이 표시돼 있다. 울릉도의 경우 강원도 울진에서 연결되는 뱃길이 표현돼있고, 독도는 울릉도의 동쪽에 우산(于山)으1로 표시돼 있다.
*공재 윤두서가 그린 <동국여지지도>
사진/<동국여지지도>. 보물 제481-3호. 윤두서의 동국여지지도는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보다 150년 정도 앞서 제작된 것으로 매우 섬세하고 사실적이다. 특히 채색이 매우 아름다우며 윤두서의 실학자적인 면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조선 후기의 선비화가였던 공재 윤두서가 숙종 36년(1710년)에 그린 조선화가의 지도로, 윤두서는 시, 글씨, 그림에 능했다.
<동국여지지도>는 종이 위에 채색해 그린 그림으로, 우리 나라 최초로 축척이 표시돼 있다. 지도에는 울릉도와 함께 대마도가 그려져 있다. 강줄기와 산맥의 등 대부분을 정화하고 섬세하게 표현했고, 주변 도서를 자세히 그렸으며 섬과 육지의 연결수로까지 표시하고 있다. 이 지도는 정상기의 <동국대지도>가 나올 때가지 표준지도 역할을 했다.
윤두서는 <중국여지도> <일본여도>도 그렸다고 전하고 있으나, 현재는 ‘동국여지지도’와 ‘일본여도’만이 남아 있다.
*경상도 <여지도(與地圖)>
지도첩의 구성은 세계지도와 <조선총도> <경기도> 등 모두 11매로 이뤄져 있고, 채색필사본이다. 제작연대는 기록된 내용으로 볼 때, 1787년 정조 11년에 새로 설치한 함경도 長津이 나타나 있고, 함경도의 利城이 1800년 정조 24년에 이원(利原)으로 바뀌었다. 이 지도에 利原을 기록돼 있는 것으로 보아 1800년 이후에 그려진 것으로 보인다.
*작자미상의 독일지도 추정
독일 지도록 추정된다. 동해를 한국해(Mer de Coree, Meer von Korea)라고 불어와 독일어로 두 번 표기했다. 특히 이 지도에는 대마도가 한국령으로 표시돼 있다.
*목판본 지도, <대동여지전도(大東輿地全圖)>
사진/대동여지전도(大東輿地全圖). 숭실대학교 박물관 소장. 1860년대 김정호 제작, 목판본으로 114.3cm x 64.8cm
<대동여지전도>는 제작자, 제작연대가 밝혀지지 않은 것으로, 대동여지도를 축소해 만든 약 92만분의 1 축적의 우리나라의 전도이다. 오른쪽 아래에 선명하게 대마도가 조선 영토로 표기돼 있다.
*조선방역지도(朝鮮方域之圖)
사진/조선방역지도(朝鮮方域之圖) 비단에 그려진 채색 필사본. 국보 248호. 61cm x 132cm. 과천시 소장
조선 전기의 우리나라 지도로 크기는 가로 61cm, 세로 132cm로, 이 지도는 명종 12년-13년(1557-1558)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임진왜란 때 일본에 유출돼 대마도에 보관돼 있던 것을 1930년대에 입수한 것이다. 동쪽의 울릉도의 모습은 보이지 않으나 만주와 대마도를 우리 영토로 표기한 것에서 조선 전기 영토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조선전도(各道地圖-朝鮮全圖)
사진/조선전도(各道地圖-朝鮮全圖). 18세기 후반.99.0cm x 56.0츠. 영남대학교 박물관.
이 지도는 18세기 이후 유행한 도리도표(道理圖標)에 실려 있는 전도이다. 팔도를 오방색으로 구분하고 동해상에 10촌으로 구성된 백리척(百里尺)을 그려 놓은 점 등 전체적으로 정상기의 동국지도와 닮아 있다. 하지만 압록강과 두만강 북쪽의 산과 하천, 고대 등을 그려 넣은 것은 동국지도와 다른 점이다. 독도는 울진의 동족 바다 가운데 있는 울릉도의 동적에 우산도(于山島)로 표시돼 있다.
*울릉군수 심흥택의 보고서
사진/심흥택 보고서. 강원도 관찰사 서리가 참정대신에게 올린 울도(울릉)군수 심흥택의 보고서와 대한제국 참정대신의 지령문(1906).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
강원도 관찰사 서리 춘천 군수 이명래가 참정대신에게 올린 울도(울릉) 군수 심흥택의 보고서. 심흥택은 이 보고서에서 ‘본군 소속 독도가 본부 바깥 바다 일백여리 밖에 있었는데...’라고 해 독도가 자신이 통치하는 영토임을 밝혀 항의했고, 참정대신은 일본의 ‘독도영유(獨島領有)의 設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라면서 일본 측 주장을 항의 비판했다./자료출처=독도는 보물섬이다 등 -다음호에 계속
심종대 기자,simjd1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