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세력 몰아내야 합니다. 아직도 말도 안 되는 말을 여기저기서 해대고 있을 때 저희 후손들로선 어이가 없습니다. 이 백주대낮에 성조기 일장기를 들고 무리지어 거리를 몰려다니고 국회에서 언론에서 떠들어대고 있기 때문에 아베가 지금도 여전히 대한민국을 자신 있게 공격할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한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우리나라입니다. 이 시점에서 대통령을 공격하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아베 정권이 떼쓰기식 경제보복에 나선 데 이어, 한국을 수출심사 우대국(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한 데 대해 우리 국민들이 모여 규탄 목소리를 냈다.
약 700여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역사왜곡·경제침략·평화위협 아베 규탄 시민행동’(이하 시민행동)은 10일 오후 7시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역사 왜곡, 경제침략, 평화위협 아베 규탄 4차 촛불 문화제’를 열었다. 36~37도의 폭염에도 이날 집회에는 주최 측 추산 1만5천명이 참여했다.
이날 무대에는 반민특위 피해자 유족들도 올라 발언했다. 반민특위는 일제 강점기에 있었던 친일파들의 반민족 행위를 조사하고 처벌하기 위해 1948년 제헌 국회에 입법돼 설치됐던 특별 기구였으나, 이승만 정권의 훼방에 의해 와해됐다. 그러면서 70년 넘게 민족 반역자들이 단죄받기는커녕 사회 곳곳의 기득권을 장악하게 됐다.
김웅진 제헌의원의 딸인 김옥자 씨는 이날 발언을 통해 이승만 정권에 반민특위가 심한 박해를 당했음을 설명했다.
“이승만 정권에서 친일세력 앞세워 (반민특위를) 와해시키려고 무척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꿋꿋하게 반민특별법에 의해 친일세력을 잡아들이기 시작했고, 독립운동가를 고문하고 악랄하게 굴었던 고등계 형사 노덕술을 잡아들였습니다. 이승만 정권은 놔주라고 풀어주라고 했습니다. 못한다고 했습니다. 거기서부터 마찰이 생겨서 박해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반민특위 청사는 1949년 6월 6일 경찰에 의해 습격을 당했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반민특위 위원, 특경대원들이 상해를 입는다. 이런 이승만 정권의 폭압으로, 반민특위는 사실상 해체수순에 접어들게 된다.
김옥자 씨는 “이승만 정권 이후에 박정희, 박근혜를 거쳐서 오늘날까지 왔는데 아직까지도 친일세력들은 청산되지 못하고 각계각층에서 그 많은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고 개탄했다.
그는 특히 “우리나라가 지금 경제적으로 아베한테 곤욕을 치르고 있음에도 한 목소릴 내지 않고 아베를 두둔하고 우리들이 뽑은 대통령을 음해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아베에게 사죄하라는 말을 하질 않나. 여러 가지 말도 안 되는 일을 하여 우리를 힘들게 하고 있다”며 대놓고 일본 극우들 편드는 자들을 꾸짖었다.
그는 지난 3월 “반민특위가 국론을 분열시켰다”고 한 나경원 자한당 원내대표를 겨냥해 말을 이어갔다. 그러면서 반민특위 후손들이 뭉치게 된 것은 나경원 원내대표 때문임을 강조했다.
“아직도 친일세력들은 곳곳에서 언론에서 국회에서 더군다나 제 1야당 원내대표가 막말까지 하고 있습니다. 반민특위가 국론을 분열시켰다는 말입니다. 말도 안 되지 않습니까? 저희들이 다시 뭉친 것은 나경원 의원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가만히 있어서 되겠느냐. 우리는 그 후손들 아니냐. 그래서 다시 뭉친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이렇게 함께해주시고 앞장서주시니 더욱 고맙고 감사합니다”
그는 “이 백주대낮에 성조기 일장기를 들고 무리지어 거리를 몰려다니고 국회에서 언론에서 떠들어대고 있기 때문에 아베가 지금도 여전히 대한민국을 자신 있게 공격할 수 있는 거 아니겠느냐”라며 “우리가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일본에도 극우파만 있는 것이 아니고 양심적인 세력이 있는 걸로 안다. 그 분들과 함께 해서 정말 이웃한 좋은 나라 되기를 희망한다. 우리는 아베를 규탄하는 것이지, 일본을 규탄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독립운동은 못했어도 불매운동은 하겠다는 우리 시민들 정말로 자랑스럽고 또 자랑스럽다. 우리 시민들 사랑한다. 이로써 우리 반민특위는 부활했다”고 말했다. 이에 시민들도 동의하며 적극 박수로 화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