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심종대 기자
[뉴스프리존=심종대 기자]국립중앙박물관(관장 이영훈)은 신안해저선 발굴 40주년을 맞아 특별전 ‘신안해저선에서 찾아낸 것들’을 개최한다.
신안해저선에 대한 발굴은 지난 1975년 8월 전남 신안 증도 앞바다에서 한 어부의 그물에 걸려 올라온 도자기 6점에서 비롯됐다. 어부는 초등학교 교사인 동생에게 도자기를 보여줬고, 동생은 다음 해인 1976년 ‘청자꽃병’ 한 점을 신안군청에 신고했다.
그 도자기가 놀랍게도 元(1271-1368) 나라 때에 존재했던 용천요(龍泉窯)라는 가마에서 만든 청자로 밝혀졌다. 이어 나머지 5점도 신고가 됐다. 650여 년이 지났지만 잘 보존된 원대 도자기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국내.외로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
당시 문화재관리국(현재의 문화재청)은 1976년 10월 27일부터 본격적인 발굴을 시작, 그 결과 신안해저선의 존재를 확인했다. 이후 1984년까지 9년여 동안 11차례에 걸쳐 배와 함께 실려 있었던 각종 물품 2만 4천여 점과 동전 28톤 상당의 엄청난 양의 문화재를 발굴했다. 이것들이 바로 이번 특별전에 선보이는 ‘신안해저선에서 찾아낸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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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선의 남아 있는 선체가 길이 24.2m, 너비 9.15m, 깊이 1.98m으로, 본래는 최대 길이가 약 34m, 최대 폭이 약 11m, 최대 깊이가 약 3.7m, 중량이 200톤급이 넘는 선박이었을 것이다. 이 정도의 규모라면 10여 명을 태울 수 있고, 또한 선박의 특징을 고려할 때 푸첸 성 취안지우의 선박과 유사한 점이 많아 이곳에서 건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고대 청자를 생산한 가마로 유명한 용천요의 그 중심 가마는 저장 남부 룽취안 경내에 있다. 용천요는 송대를 시작으로 원명부터 청대까지 제작을 지속해 그 역사가 유구하다. 용천요 도자는 당시 국내 뿐 아니라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의 많은 국가 및 지역들에게도 대량으로 수출돼 미치는 영향이 매우 컸다.
신안해저선에서 발견된 용천요 청자는 남송 후기부터 원초 상품과 원중기 상품으로 구분된다. 남중 후기부터 원초에 이르는 상품으로 청자어룡식양이병, 청자장강병, 청자연판문접시, 삼족수반 등으로 유색에 천청에 가깝고, 유약이 두터운 후유이다. 문양이 없는 것이 대부분이고, 연판의 폭이 두껍거나 유면에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마찰흔이 심한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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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해저선에서 발견된 중국 도자기의 특징을 살펴보면, 먼저 신안해저선에서 발견된 도자기의 조합에 관한 것으로, 가장 높은 선호도를 보이는 것은 용천요 청자이고, 경덕진요 청백자이다. 기종으로 살펴보면 접시류가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그 다음은 대접류이다. 특별히 이번 특별전에서 주의를 끄는 것은 다완, 향로, 화병, 수반, 화분 등 장식용기의 형태가 매우 다양하다. 이는 곧 일본인의 심미관이 반영된 것으로 당시 일본에 불었던 중국 열풍과 관련이 있고, 생활 속에서 차, 향, 꽃과 관련된 문화가 얼마나 꽃피우고 있었는지 추정할 수 있다.
두 번째로, 도자기 중에는 남송 후기에서 원대 초기까지 올라가는 것도 상당한 양이 발견됐다는 점으로, 일본인들에게 남송의 문화가 끼친 영향이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주면서, 곧 구매 상품을 통해서 말해 주고 있다. 일본인들은 중국과의 문물을 통한 교류를 통해 고미술품에 대한 의식을 배웠을 것이라 여겨지고, 고미술품에 대한 전문 의식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시기가 올라가는 상품을 제법 많이 구입했다고 볼 수 있다.
세 번째로, 신안 해저의 이동 경로에 관한 문제이다. 신안해저선은 최초 푸젠의 취안저우에서 자단목이나 향로, 동전을 싣고 닝보로 향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전국의 상품이 운집하는 항저우와 닝보 지역에서 용천요 청자, 철점요, 경덕진요, 자주요 등 각지에서 모인 도자기를 싣고 일본을 향해 출항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발굴 당시 상품의 포장 방법을 살펴보면, 각 상자의 상품은 백자나 청자 등 유형별 분류라던가 용천요나 경덕진요 등 생산지별로 분류해 포장되지 않았기 때문에, 구매자의 요구에 따라 구분해 포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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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여러 차례 신안해저선에서 발굴된 문화재들을 전시해 왔지만, 종류별로 대표성이 있는 것들만을 선별해 공개한 명품 위주의 전시였다. 이는 2만 4천여 점에 이르는 발굴품 가운데 지금까지 공개된 것은 전체의 5% 정도인 1천 여점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 특별전에서는 신안해저선의 전모를 생생히 실감할 수 있도록, 발굴된 2만 4천여 점의 문화재 가운데 현시점에서 전시 가능한 것들을 모두 모아 최초로 공개한 전시로, 국립중앙박물관의 특별전 역사상 가장 많은 수량의 전시이다.
특별전은 3부로 구성됐다. 제1부는 ‘신안해저선의 문화기호 읽기’로, 복고푼의 그릇들과 차(茶), 향, 꽃꽂이 등과 관련된 완성품들을 소개한다. 당시 동아시아에서 유행한 중국의 취향과 그에 따른 일본 상류층이 선호했던 문화생활을 살펴보고, 나아가 고려에 있었던 비슷한 문화 적 취향에 대해서도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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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14세기 최대의 무역선’에서는 신안해저선이 닻을 올렸던 중국 저장성의 닝보항을 중심으로 이뤄진 교역활동을 소개한다. 신안해저선의 선원과 승객들의 선상 생활도 살펴본다.
끝으로 제3부 ‘보물창고가 열리다’에선 으뜸 전시공간으로, 신안해저선에 살렸던 ‘화물’들을 생생하게 실감할 수 있도록 도자기, 동전, 자단목, 금속품 및 향신료 등을 ‘큰덩어리’로 소개했다. 일부는 당시의 발굴 상황 등을 재현해 전시해 신안해저선의 실체와 함께 중세 동아시아의 문화교류 양상을 보여주고자 했다.
신안해저선의 발굴은 우리나라 수중고고학의 효시가 됐다. 그 경험과 성과는 이후 수많은 수중문화재 조사의 밑바탕이 되었다. 발굴된 문화재들은 14세기 동아시아의 경제적, 문화적 교류 등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가 됐다.
바닷물 속에 잠겨 있다가 타임캡슐처럼 650여 년 만에 나타난 신안해저선은 우리에게 여전히 많은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한편, 특별전 연계 학술행사로 오는 9월 2일 국제학술심포지엄을 마련했다. 이번 전시에 이어 전시내용과 수량을 조정해 10월 25일부터 2017년 1월 30일까지 국립광주박물관에서 전시한다.
심종대 기자, simjd1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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