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윤소정/국립극단 제공
[뉴스프리존=심종대 기자]경계성 치매를 앓고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뇌작용을 따라가면서 기억과 망각, 현실과 착각을 표현주의적으로 악몽처럼 그대로 반영해 극의 형식과 내용을 일치시키는 연극 <어머니>가 오는 14일까지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오른다.
연극 <어머니>는 프랑스 연극을 대표하는 극작가이자 신예 소설가 플로리앙 젤레르의 작품으로, 2002년 첫 소설 <인공 눈>을 발표해 ‘아셰트 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후 2004년 파리 마튀랭극장에서 첫 희곡 <타인>을 공연해 관객들의 환호와 비평가들의 격찬을 받았다. 2007년 크리스탈 글로브상을 수상하는 등 10여 년 동안 6편의 소설과 10편의 희곡들의 절반은 프랑스의 저명한 문학, 연극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 작품의 내용은 어머니 ‘안나’는 ‘빈 둥지 증후군’과 ‘우울증’을 앓고 있는 초로의 여인으로, 거기에 치매 증세까지 나타난다. 기억의 혼란에서 야기된 착각이 이 작품의 줄거리 속에 갈등 구조가 형성된다.
장성한 아들과 딸을 떠나보낸 중년의 여인 ‘안느’는 예전에 어린 자녀를 돌보던 때를 회상하면서 그리워한다. 그는 남편이 몰래 바람을 피우고 있다고 확신하고 퇴근이 늦은 남편에게 어디 갔다 오는 거냐고 계속 묻는다. 아들 니콜라가 애인 엘로다와 다툼을 벌인 뒤 갑자기 찾아오고, 평소 자신의 아들은 애인에게 빼앗겼다고 생각한 안느는 자신이 산 빨간 드레스를 보여주며 산책을 나가자고 한다. 그녀의 일방적인 사랑에 지쳐가는 가족, 안느는 자신이 점점 주변 사람들에게 걸리적거리는 존재가 된다는 것에 절망한다.
안나의 집착, 혼란, 착각, 오해, 불신 등으로 인해 병증이 악화되면서 그 혼란과정이 정면에 미디어 아트 미술작품처럼 투사된다. 여주인공의 자아상실 상태로 병원 환자실 침상에 앉은 애처로운 모습에서 연극은 마무리 된다.
이 작품에서 어머니 역을 맡은 윤소정은 이 작품의 어머니에 대해 “마흔 후반의 빈 둥지 증후군, 우을증 환자의 이야기”라면서, “어느 배우든지 이 역할을 한 번쯤은 해 보고 싶을 정도로 환상 속에서 이야기하는 것. 남편과 아들과 각각 환상 속에서는 어떤 말이든 할 수 있다. 실제로는 그렇게 못해도. 그런 환상 속에 들어갔다가 나왔다가 하는 다중적인 역할을 할 수 있어서 아주 매력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진제공/국립극단
이어 “(극중 인물은) 40대 후반인데, 난 좀 늙었죠? 그렇지만 연극이란 것은 약속이니까 이해해주시고, 우리 주위에서 우울증 환자를 너무 많이 본다”면서, “볼 때마다. 고맙게 생각하고 상대한테 모든 작은 일에도 감사하게 느끼면 절대 우울증이 없을텐데. 모든 것을 다 가졌는데도 우울증이 있더라구요.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일수록, 교육수준이 높은 사람일수록 우울증이 더 많다”고 덧붙였다.
이병훈 연출은 “이 작품은 ‘빈 둥지 증후군’의 어머니 모습으로, 현실과 환각 사이에서 처음에는 비교적 균형을 맞춰가다가 의식세계가 점점 더 무너져 내리고 결국에는 작품 전체가 현실인지 환상인지 알 수 없다. 현실이라고 했던 것마저도 ‘이것도 환상이었나 할 정도로 미스터리하게 진행 된다”고 말했다.
이 연출은 이어 “같은 장면이 반복되기도 하고 전혀 생각지도 않은 것이 들어오면서, 관객들은 퍼즐처럼 만들어가야 한다.”면서, “기존의 연극은 현상적인 스토리로 진행된다. 하지만 이 작품은 드라이하고 감성적인 요소가 별로 없다. 굉장히 단순하면서 어떤 상태만을 보여주고, 또한 현실과 환상을 자유롭게 넘나 든다”고 설명했다.
윤소정은 어머니 ‘안느’라는 인물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대해 “우리가 처음 이 작품을 봤을 때 1장은 환상이고, 2장은 실제다. 거의 또 그렇게 써갔다. 그런데 2막 3장에서는 그것을 다 아주 흩어놨다”면서, “우리의 고정관념을 완전히 깨버리는 그런 작가이다. 또 맨 나중에는, 마지막 막 내리기 직전에 어떤 디렉션이 있나하면, ‘아들이 나타난다. 또는 안 나타난다’ 그걸 보고 너무 놀랐어요. 대개 작가는 자기의 의도한 것을 분명히 제시할텐테 맨 마지막에 ‘아들이 나타난다. 또는 안 나타난다’ 연출이 알아서 해라, 또는 작품을 만드는 사람들이 알아서 해라, 그런 거 쟎이요. 어느 작가도 그렇게 쓴 적이 없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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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그래서 아주 맹랑한 그런 얘기고, 그런 것들에 당황했다. 제시돼 있으면 좋을텐데. 나타난다. 안 나타난다. 그리고 또 어떤 것은 ‘삭제되어도 좋음’ 그렇게 써놨고, 여러 씬에서 작가가 우리 고정관념을 막 흐트러뜨리는 것에 대해서 너무 재미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작품이 처음부터 끝가지 연결이 되면서 하나도 이 작가에 대한 질문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 작품의 무대 색깔도 단조롭고 공간도 간단하다. 무대에는 아무것도 없고 벽이다 집인지 병원인지, 약간 정신병원 같기도 하고 집 같기도 하다. 또한 쇼파를 보면 집같기도 하다. 무대의 문은 살짝 열려있고 엄마는 누군가를 기다린다.
무대 전환 또한 영상이 사용된다. 머릿속에 영상이 스쳐가는 것처럼 어렸을 때 모습이나 남편이 바람피우는 것, 아들이 딴 여자와 가는 것, 찾아오는 여자가 남편의 애인 같기도 하고 아들의 연인 같기도 하는 것들이 중첩되면서 마치 여자가 자기 남자를 다 뺏어가는 것과 같은 장면을 이미지로 보여준다.
윤소정은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빨간 원피스’에 대해 “엄마가 빨간색 원피스를 하나 입는다. 그 원피스를 입는데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기회가 필요하다”면서, “그 빨간색이 주는 의미, 또 아들의 애인이며 남편의 애인이라고 생각하는 그 아가씨가 들어 왔을 때도 빨간 옷을 입고 들어온다. 빨간색, 내가 좋아하는 색깔, 그 빨간색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고 밝혔다.
산진제공/국립극단
그녀는 그러면서 “왜 이렇게 빨간색을 많이 썼지? 그런데 저는 그 빨간색이, 우리가 조금 빨간색을 원초적인 색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그렇지만 저는 그것이 생명이라고 생각을 한다. 그리고 우리가 폐경이 됐을 때를 많이 생각한다. 여자들이 폐경이 될 때 제일 우울해 한다. 그러니까 이 엄마는 마흔 후반이니까 폐경이 됐을지도, 될지도 모르는 그런 불안감이고 그리고 다시 여자이고 싶어지니까 빨간색을 원하고, 그리고 젊은 애가 빨간색을 입고 들어왔을 때 ‘너는 그 빨간색이 안 어울려’ 그렇게 얘기를 하거든요. 그리고 자기는 그 빨간색을 입으려면 용기가 필요하다고 얘기할 정도면 ‘걔는 너무 젊은데 네가 굳이 그런 걸 신경 쓰니?하고 일축해 버리는 거고. 그러나 ’나는 빨간색이 필요하다‘라는 것에 대해서 이렇게 은유적으로 묘사한 것이 참 좋았고, 이 사람이 쓰는 단어들 하나하나가’ ‘왜 이 말을 썼을까?’가 이해가 되면서 (이 작품에)아주 참 감탄했다. 특히 빨간 드레스를 말하면서 ‘당신 장례식에 입을 거야’라는 말을 한다. 장례식에 빨간 옷 입는 사람은 없잖아요. 이는 또 하나의 시작이라는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라고 전했다.
윤소정은 <어머니>라는 작품의 매력 포인트에 대해 “플로리앙 젤레르가 쓴 <어머니> 대본을 처음 봤을 때, 제가 깜짝 놀랐다. 이렇게 젊은 사람이 이렇게 나이 든 엄마 얘기를 이렇게 디테일하게,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것뿐만이 아니라, ‘이 희곡을 이렇게도 쓸 수 있네, 너무 재미있다’ 그런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면서, “지금껏 접해 보지 못했던 그런 희곡을 딱 손에 쥐고, ‘하고 싶다, 한 번 해보고 싶다, 도전하고 싶다’ 사실 쉬운 건 매력 없다. 그렇게 이 작품 엄청 어렵더라고요. 그리고 지금은 너무 힘들어 후회하고 있다. 하지만 이 작가가 어떤 작품을 쓰던 앞으로 저는 개인적으로 이 작가한테 많은 기대가 된다. 그리고 다음에 어떤 작품을 쓰던 한 번 또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 것 같다”고 말했다.
심종대 기자, simjd1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