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환 작가의 '폭력'/사진제공=서울시립미술관
[뉴스프리존=심종대 기자]서울시립박물관은 오는 10월 16일까지 노원구 중계동에 소재한 북서울미술관에 서 한국미술계의 대표 원로작가와 21세기 차세대 작가를 한 자리에 초대해 세대 간의 상생적 소통을 모색하는 <타이틀 매치>전을 개최한다.
북서울미술관을 대표하는 연례전으로 올해 3회째를 맞는 <2016 타이틀 매치>전은 전방위적으로 다양한 매체와 장르를 넘나들면서 특유의 유머와 해학으로 현실에 대해 발언하는 작업을 해 온 주재환과 빠르게 소비되고 폐기되는 현대사회의 시각물들에 집중해 이를 날카롭게 통찰하는 작업을 펼치는 김동규 작가가 참여한다.
<빛나는 폭력, 눈 감는 별빛>이라는 부제 하에 개최되는 이번 전시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폭력’을 주제로 연령과 시대를 넘어선 예술적 대화를 도출한다. 세대를 관통하는 키워드가 두 작가에게 이해되고 해석되는 방식을 통해 서로 다름 속에서 세대 간의 연대와 화합의 가능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폭력’이리는 공통의 주제 하에 새롭게 제작된 신작 중심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는 두 작가의 세대 간 간극만큼 서로 다른 시각과 태도를 반영하는 작업들이 대조를 이루면서 흥미롭게 펼쳐진다. 원로작가 주재환은 역사가 기록되기 시작한 이래 쉼 없이 계속되고 있는 지구상의 전쟁, 테러, 분쟁과 같은 거시적 폭력에 집중했다면, 차세대 작가 김동규는 일상의 풍경 곳곳에 부지불식간 배어있는 미시적 폭력에 주목된다.
주재환 작가는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무력 분쟁으로 인한 생명 경시의 실상, 죽음의 힘이 삶의 힘을 압도하는 현실을 드러낸다. 분쟁과 살상을 상징하는 오브제와 이미지, 군축평화운동 단체들의 최근 수년간의 활동자료와 팔레스타인 현역 만화가의 시사만평 등으로 구성된 이번 작업은 날로 강도를 더해가는 폭력에 무감각해진 현실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이끌어낸다.
주 작가는 설치, 영상, 평면 등 25점이 전시됐다. 이 가운데 폭력기의 이미지로, 폭격기 기체 밑에는 수많은 미사일이 장착돼 있다. 그 거대한 이미지 아래쪽 밑에 아주 자그마한 석고상(빈 라덴)이 놓여 있다.(작품/크기의 비교 B-52 vs. 빈 라덴) 이 작품은 강하고 거대한 힘과 작고 미소한 한 인간의 싸움을 대비해 보여준다, 복잡한 세계 정치의 맥락 속에서 작건 거대하건 크기와는 별도로 싸움은 지속된다.
그리고 양 옆으로는 천장까지 쌓아올린 금빛 포장으로 싸여진 박스들...거대한 박스 덩어리 아래쪽 가운데 부분에는 마치 벽감 같은 굴이 파여 있고 그 안에 있는 것은 어버이연합이 사용했던(?) 프로판가스통이다. 게다가 그 가스통 쪽에는 불아 붙어 불꽃이 올라온다.(작품/폭력) 특히 이 작품의 박스 속에는 박스 하나에 10만 달러씩 모두 1조 6천 8백만 달러(2015년 세계 총군사비)가 채워져 있다. 이 박스들은 프로판가스통으로 날려버린다(상상을 통해서만...)
김동규 작가의 '각개전투'/사진제공=서울시립미술관
김동규 작가는 빠르게 효용가치를 다하고 버려지는 현대사회의 시각물들을 포착해 그 안에 내재된 의미를 끈질기게 탐구하는 작업을 진행해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온라인 매체, 거리의 애드벌룬 입간판, 학교 교실에 걸려 있는 국가와 교훈, 반성문 등을 소재로 한 설치, 영상, 드로잉 작품들을 통해 이제는 우리사회의 환경으로 자리 잡아버려 미처 일치하지 못하게 된 일상 속의 폭력을 드러낸다.
김 작가의 ‘폭력’을 이해하고 접근하는 방식은 원로작가와의 그것과는 다르다. 그가 주목하는 것은 생활 속에서 그가 감지한 폭력으로 그에게 가해지는 폭력이다. 이 폭력은 물리적, 육체적 폭력이 아니면서도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우리가 지금 이곳에서 그것을 폭력으로 느끼고 있기 때문에, 그로인해 고통 받는 그러한 폭력들이다.
김 작가의 <각개전투>에서 그려진 폭력은 ‘사는 게 전쟁’이라는 맥락에서 접근된다. 지금 이 곳을 살아내려면 폭력을 주고받아 내는 일이 불가피하다. 생존은 그리 쉽지만은 않겠지마는 지금 이곳에서의 생존은 그저 건전하고 성실하다고 될 일이 아니다. 생존이라면 인간의 훼손이 필요하고, 기계와 같은 전투력이 필요하다.
이 작업은 가게 앞에 흔히 광고용으로 설치되던 비닐풍선 입간판을 변형한 것으로, 여기에서 풍선입간판들은 각각 평화, 행복, 희망, 기쁨, 나눔, 믿음, 사랑과 같은 공허하지만, 애처로운 상호를 단 이발소, 독서실, 철물점, 노래방들이다. 이 작품의 요체는 바람이 통과해 비닐풍선이 될 때 그 떨림의 생경함과 황당함에 자신의 육체가 공명하는가를 확인 할 수 있는 경우 드러난다.
이번 전시는 확연히 다른 두 작가의 작업은 한 공간 안에서 대결하고 아우러지는 협업으로 완성된다. 폭력이라는 주제에 대해 그것을 대하는 태도나 작업화해 내는 방식은 작가 개개인의 성향을 드러내는 것이자 이를 작가가 속한 세대의 특성을 반영하는 것이고, 더 나아가 이들이 대별하는 세대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는 우리 사회의 현 상태를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일부가 되어 버린 이제는 그것을 폭력이라고 인식할 수조차 없게 되어버린 일상적인 폭력에서부터 전쟁이라는 거대한 폭력까지를 살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에 완연한 폭력을 인식할 수 있는 각성의 첫 걸음을 뗄 수 있기를 생각하게 한다.
심종대 기자, simjd1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