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국립극장
[뉴스프리존=심종대 기자]국립극장(극장장 안호상) 전속단체 국립창극단(예술감독 김성녀)은 2016-2017 국립극장 레퍼토리시즌 개막작 ‘오르페오전’을 오는 28일까지 해오름극장 무대에 올린다.
오르페우스의 지고지순한 사랑과 죽음을 다룬 오르페우스 신화는 수천 년 동안 수많은 예술가의 영감이 되고 있다. 악보로는 현존하는 오페라 중 가장 오래된 페리의 ‘에우리디체’를 비롯해 오늘날 무대에 상연되는 오페라 중 가장 오래된, 오페라의 효시 격인 몬테베르디의 ‘오르페오’, 가수의 기교를 넘어서서 레치타티보의 관현악반주 및 합창음악의 극적인 사용으로 오페라 음악의 개혁을 이룬 글루크의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등 오페라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작품들이 모두 이 이야기를 소재로 만들어졌다.
이번 작품의 흐름과 결말에는 이소영 연출만의 해석이 담긴다. 호기심, 의지박약, 연인에 대한 애타는 감정 등으로 해석돼 온 오르페우스의 ‘뒤돌아봄’은 산 자와 죽은 자 간의 순리를 지키기 위한 자발적인 선택으로 새롭게 해석됐다. 그간 이소영 연출의 오페라 작품에서는 철학적인 배경뿐 아니라 무대 요소에서도 동양사상의 영향이 드러났다. 이번 ‘오르페오전’ 또한 윤회부터 방패연에 담긴 의미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전통사상을 담고 있다.
연출가 이소영이 이번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뒤돌아봄’이다. 한국의 ‘장자못 설화’는 뒤에서 아우성 치고 있는 식구가 걱정이 된 며느리가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스님과의 약속을 어기고 뒤를 돌아보자 돌이 됐다는 이야기이다. 이 연출은 서양의 음악극인 오페라의 중요한 소재이자 동서양의 경계를 뛰어넘는 정서를 지닌 오르페우스 신화 이야기가 이번 창극과 오페라의 최초 만남에서 다룰 가장 적합한 작품이라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이 연출은 이번 작품에서 기존 오르페우스 신화를 기반으로 한 작품들과 달리 동양적인 해석을 불어넣어 새로운 결말을 제시한다. 우선 주인공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이름을 각각 올페와 애울로 새롭게 짓고, 20대 초반의 젊은 남녀로 설정했다. 올페가 뒤돌아보는 이유는 인간의 호기심이나 실수로 인한 것이 아니라 인생의 순리, 즉 산 자와 죽은 자간의 이치를 지키고자 했던 애울의 마음을 깨닫고, 그 마음에 능동적 의지로 응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스스로 ‘뒤돌아봄’으로써 저승에서 이승으로 돌아온 올페의 여생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던 의미를 던져주고 있는지 질문하고 있다.
사진제공/국립극장
이소영과 국립창극단의 조우는 지난 해 ‘적벽가’에 이어 두 번째다. 부채를 상징화한 ‘적벽가’ 무대에 이어 이번에는 ‘방패연’이다. 연은 예로부터 인간의 꿈과 소망을 담고 있다. 연의 구성 요소들도 각각 상징성을 갖고 있다. 근원을 상징하는 ‘얼레’와 인연, 관계성을 상징하는 ‘실’은 올페와 애울, 그리고 죽음과 삶 등을 상징한다. 방패연을 상징하는 직사각형 기본 무대에 곡선 경사가 무대를 가득 채우면서 그 중심의 거대한 원형 공간은 방패연의 구멍, 즉 배꼽을 연상시킨다. 해오름극장의 대형 회전 장치를 통해 실현될 방패연의 배꼽 부분은 회전과 함께 상하로 움직이면서 이승과 저승의 경계로 가능케해 시공간을 넘나드는 스펙터클을 보여준다. 올페 역은 김준수와 유태평양이 애울 역에는 이소연이 맡는다.
이 연출은 “방패연은 오늘날 봐도 탄복할만한 여러 동양사상이 깃들어 있어서 이 작품의 상징적 무대요소로 선택함에 망설임이 없었다”고 밝혔다.
‘오르페오전’의 작곡과 음악은 ‘메디아’ 등에서 가슴을 울리는 선율을 만들어 온 황호준이 맡는다. 황호준은 오페라와 창극이 만나는 이번 작품에서 우리 소리의 본질을 돋보이게 하는 새로운 음악을 작곡한다. 이 작품에서의 전체적인 주제와 장면 구성은 황호준의 음악적 영감과 이 연출의 함축적이고 시적인 노랫말이 하나가 됐다. 오페라의 아리아와 같은 기능을 할 이번 작품의 주요 곡들은 가락, 성음, 시김새 등 판소리 가차의 특성을 최대한 고려해 작곡했다.
이소영 연출은 ‘지금 이 시점에 ’뒤돌아봄‘을 택한 이유에 대해 “나는 올페가 산 자와 죽은 자 간의 순리를 지키려는 애울의 마음을 알았고, 그 마음에 응했다고 생각한다”면서, 돌아보라는 애울의 말에 올페가 눈물을 흘리며 뒤돌아보는 것으로 설정했다. 그 지점이 내게는 중요한 연출 포인트”라고 말했다.
이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숱한 패배를 겪는 패배자이고, 마지막 관문을 넘지 못하는 약한 존재들”아라면서. “왜 이 시점에서 ‘뒤돌아봄’인지 묻는다면 오히려 인간미를 잃고 사는 우리를 뒤돌아보기 위함이라고 말하고 싶다”고 설명했다.
또 “마지막 관문을 통과해 최종적으로 성공한 이들에게만 열광하고, 그들에게만 박수를 치는 우리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면서, “마지막 관문에서 승부가 결정되는 세상을 사는 젊은이들, 혹은 마지막 문을 넘지 못한 패배자들에게 그 실패에 대한 당위성을 부여해 주고싶다. 애울의 뜻에 따라 일부러 뒤를 돌아본 올페를 기억하고 박수를 보내면서 인간이 지닌 숭고한 정신적 가치에 승점을 주고 싶다. 이 시대에 이 이야기를 택한 이유”라고 덧붙였다.
심종대 기자, simjd1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