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심종대 기자
[뉴스프리존=심종대 기자]2016서울아리랑페스티벌어워즈는 제2회 ‘서울아라랑’ 수상자로 1926년 10월 1일 단성사에서 개봉한 영화 ‘아리랑’의 감독이자 주연배우였던 춘사 나운규 감독을 선정했다. 시상은 2016서울아리랑페스티벌 첫째 날인 오는 10월 14일 오후 7시 축제무대에서 진행한다.
나운규는 1923년 한국 최초로 영화사인 조선키네마에 합류해 단역으로 배우 인생을 시작해, 영화계에서 활동한 약 15년 동안 29편의 작품을 남겼고, 26편의 영화에 직접 배우로 출연했다. 그중 1926년
개봉한 ‘아리랑’은 배우로 활동하던 당시 구상한 것으로, 주연뿐만 아니라 각본, 감독까지 맡았다.
영화 ‘아리랑’과 주제곡 ‘아리랑’은 영화와 음악을 포함해 한국 문화사적인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조선키네마사가 제작하고 나운규 감독 주연, 시나리오, 각색을 맡아 단성사에서 1926년 10월 1일 개봉한 ‘아리랑’은 35mm 흑백무성영화로, 여주인공 신일선, 변사 성동호, 막간 여가수 유경아가 함께 했다.
영화는 서울에 유학 갔다 실성해 고향으로 돌아온 청년 영진이가 아들의 성공만을 기대하고 사는 아버지와 순박한 누이동생(영화/신일선)이 일제의 토지수탈로 지주와 그 앞잡이들의 횡포가 구조화된 상황에서 곤경을 겪는다는 내용이다. 또 개와 고양이를 첫 타이틀로 제시해 조선과 일제의 관계를 현실화하고 수난의 땅에서는 살수가 없어 정든 고향산천을 등지고 북간도로 떠날 수밖에 없음을 고발해, 당시 관객들은 나의 이야기로 공감과 공분으로 받아들여 볼 수 밖에 없는 영화로 열광한 바 있다.
개봉일 새벽 총독부가 전단지 1만장에 불온한 가사가 담겨 있다는 이유로 모두 압수하는 등 탄압을 했으나 서울의 15개 극장, 전국 30여 개 극장 상영으로부터 시작, 기록상 1946년까지 서울에서만 8백여회나 재상영 됐다. 또한 내용의 일부가 삭제된 상태이긴 하지만 일본에 수출되고 중국 동포사회와 일본의 조선인 노동현장 가설극장에서까지 상영됐다. 이로 인해 1940년대 초 조선영화사상 최고의 작품으로 꼽고, 1960년대 남북 공히 영화 ‘아리랑’을 민족영화로 꼽게 됐다.
영화의 주제곡 ‘아리랑’은 영화보다 앞서 전국적으로 유행했다. 영화에서는 주인공과 동리사람 등에 의해 일부 가사로 네 번이나 불렀다. 특히 마지막 장면인 아리랑고개에서의 합창은 영화의 주제를 각인시켰다.
주인공 영진이 포승에 묶여 일본 순사에 호송돼 갈 때 주인공인 뒤따르는 동리사람들을 향해 “나를 위해 울지 마십시오. 반드시 살아 돌아오겠습니다. 대신 우리가 함께 부르던 아리랑을 불러 주십시오”라면서 대합창이 이뤄진다. 이때 이미 네 번이나 들어 그 곡을 외우게 된 관객들은 모두 울면서 불렀다고 전한다.
나운규는 생전 인터뷰에서 아리랑을 만들게 된 배경에 대해 “내가 아주 어린 소학생 때 청진에서 회령까지 철도가 놓이기 시작했는데, 그때 남쪽에서 오는 노동자들이 철도길을 닦으면서 ‘아리랑 아리랑’하고 구슬픈 노래를 부르더군요. 그것이 어쩐지 가슴에 충동을 주어서 길 가다가도 그 노랫소리가 들리면 걸음을 멈추고 한창 들었다”면서, “그리고 애련하고 아름답게 넘어가는 그 멜로디를 생각해내 가사를 짓고 악보는 단성사 음악대에 부탁해 만들었다”며 당시 단성사 소속의 변사이자 작사작곡가이기도 한 김연환이 나운규의 의뢰로 편곡을 했고, 가사는 처음 총 4절이었으나 일부가 삭제돼 부르지 못하게 되자 상영극장마다 새로운 가사로 불리기도 했다.
심종대 기자, simjd1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