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 박수용기자] 아무리 멋진 몸매의 소유자라도, 자신의 장점을 부각시키고 단점을 보완하는 옷을 입지 않는다면 그 매력은 반감된다. 자동차의 옷은 컬러다. 뛰어난 동력 성능과 첨단 기술, 유려한 차체 디자인이 적용되었다 할지라도 그에 걸맞는 컬러를 입지 않는다면 미완성일 뿐이다. 자동차의 컬러는 외관뿐만 아니라 성격, 더 나아가 해당 제조사의 역사와 산업의 트렌드 등 다양한 의미를 부여한다.
기본적인 자동차 색상과 질감 표현
세분화되어 발전한 자동차의 외형이나 파워트레인도 몇 가지의 기본형이 있는 것처럼, 컬러도 대표적이고 기본적인 색이 있다. 자동차 디자인의 권위자 구상 교수는 자동차의 기본적인 컬러로 흰색, 검정, 은색, 빨강, 파랑의 다섯 가지를 꼽는다. 이 색상들은 단지 컬러 자체만이 아니라 장르나 디자인의 성격을 더욱 잘 드러내주는 수단이다. 뿐만 아니라 때에 따라서는 기능적 역할도 수행한다.
질감은 자동차의 색상을 다채롭게 만들어 주는 요소다. 원색의 이미지를 그대로 살린 솔리드, 금속의 연마된 면이나 절단면을 연상케 하는 메탈릭, 운모 등 광물질을 안료에 합성해 진주와 같은 아름다운 반사를 만들어내는 펄 등이 있다. 특히 솔리드 컬러 외의 질감은 빛을 받는 위치나 자동차의 실루엣에 따라 다양한 효과를 만들어내는 역할을 한다. 이 질감과 색의 조화만으로도 제조사 고유의 성격을 드러낼 수 있다.
흰색에 관한 몇 가지 진실
흰색은 자동차의 기본이 되는 색상이다. 변색이 쉽고 관리하기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지만, 유행에 따라 쉽게 질리지 않는다는 장점도 있다. 또한 흰색 자체가 다른 색상에 비해 차체가 커 보이게 만든다. 물론 반사가 심해 세부적인 디테일을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대신 차의 전체적인 실루엣을 표현하는 데 좋은 색이다. 세단이나 쿠페처럼 외형의 유려한 선을 강조하려는 경우 대표 색상으로 선택하기도 한다.
세계적인 도료 기업 액솔타의 2015년 ‘세계 자동차 컬러 선호도’ 조사를 보면 전세계에서 팔린 차량의 약 35%가 흰색이다. 특히 중국에서 팔린 자동차 중 절반인 50%가 흰색이었다. 같은 아시아 국가인 한국과 일본도 각각 36%, 33%로 비중이 높았다. 참고로 질감 면에서는 솔리드 컬러가 압도적으로 높지만, 일본만은 특이하게도 펄 질감의 흰색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아시아 외에 흰색 자동차의 인기가 높았던 곳은 아프리카. 소비자들의 흰색 자동차 선호도가 46%로 중국에 이어 2위였다.
흰색과 관련해 눈에 띄는 또 다른 트렌드가 있다. 바로 하이브리드 및 전기 자동차 장르에서 흰색의 선호도가 높다는 사실이다. 2013년식 테슬라 모델S의 ‘펄 화이트’ 색상은, 1,500달러의 별도 비용을 지불해야 함에도 해당 기종에서 가장 높은 인기를 기록했다. 또한 국내의 경우 2016년 상반기까지 팔린 아이오닉 하이브리드를 구매한 고객들은 무려 60% 이상이 흰색을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그랜저 하이브리드, 쏘나타 하이브리드 등에서도 흰색에 대한 선호도가 높게 나타났다. 기능적인 면에서도 흰색은 복사열을 차단해 여름철 냉방 효율을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러한 요소들이 하이브리드, 전기차와 같은 저공해 차량의 이미지와 잘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검정이 가진 비밀
고급 자동차를 상징하는 색처럼 굳어진 검정색. 특히 권위, 힘이라는 이미지와 결부되어 있다. 각 국가의 행정부 수반이나 기업 고위 인사의 의전 차량으로 사용되는 것도 그런 이유다. 특히 오랫동안 미국 대통령의 의전차량을 제작해 온 캐딜락의 경우는 1940년대부터 검정을 자사의 최고급 기종에 사용해 왔다.
검정의 매력은 여러 가지로 표현된다. 특히 도장 관리가 잘 된 검정색 차량은 풍부한 반사 효과를 통해 주변 풍경을 담아내는 등 극적인 효과를 연출한다. 이는 주로 최고급 자동차에 비친 야경 등으로 연출된다. 그런가 하면 무광 컬러는 주변 풍경으로부터 자동차가 완전히 별개의 존재로 독립되는 인상을 제시한다. 대형 세단이 아니더라도, 스포티한 감각을 살린 해치백 등 첨단의 감각이 필요한 자동차에 어울리는 컬러로 각광받고 있다.
그런데 반전이 숨어 있다. 1920년대 포드가 생산하던 모델 T가 모두 검정 색상으로만 제작되었는데, 이는 검정색이 다른 페인트보다 일찍 건조되는 특성을 갖고 있었던 까닭이라고 한다. 즉 고급화 전략과는 반대되는 의미로 검정색이 사용됐던 셈이다.
한국에서는 흰색만큼 검정 차량도 인기가 높아 보인다. 그런데 이는 체감 현상으로, 실제 구매 시 색상 선호도는 은색에 이은 3위다. 흰색 다음으로 검정에 대한 선호가 높은 권역을 오히려 다채로운 컬러에 대한 소구가 높다고 알려진 유럽이다. 참고로 인도에서는 검정색 차량에 대한 선호도가 3%로 나타나 극명한 대조를 보였다. 죽음의 여신인 칼리가 ‘검은 여인’이라는 뜻을 갖고 있는 만큼,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포드 모델 T(1924)
상상력과 포용력의 은색
지난 해 69세를 일기로 떠난 팝 스타 데이빗 보위, 팝 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은 공유하는 영역이 많았다. 특히 두 사람 모두 은발을 멋지게 소화했다. 은색은 그만큼 전위적이고 상상력을 상징하는 컬러로 인식되고 있다. 자동차에서도 은색은 적용할 수 있는 차종과 차체의 크기가 다양하다. 세단과 쿠페, 소형과 대형을 가리지 않는다. 올드카와 최첨단의 자동차가 같은 은색 옷을 입고 나란히 서 있으면 묘한 유전적 동질감을 전하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금속성 분말을 주 재료로 하는 은색 페인트의 색은, 아무것도 칠하지 않은 섀시 자체의 색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은색은 자동차의 기계적 특성을 잘 나타내는 색상이기도 하다. 각 제조사의 은색에 금속과 관련한 이름이 많이 붙는 것도 이러한 속성과 무관하지 않다. 예컨대 은색을 자사의 상징처럼 사용해 온 메르세데스 벤츠는 ‘이리듐 실버’, ‘팔라듐 실버’ 등의 이름을 가진 은색 계열 색상이 유명하다. 또한 현대자동차와 렉서스의 경우에는 ‘플래티넘 실버’라는 색상명을 사용하고 있다. 물론 같은 실버라도 금속 분말의 배합 비율과, 이를 혼합한 수지의 특성, 도장 처리 방식에 따라 같은 은색 안에서도 천차만별의 분위기를 낸다.
그렇다면 은색을 띠는 이 도료의 금속성 분말의 원재료가 되는 분말은 무엇일까? 실제 은이라면 무척 비싸겠지만, 다행히도 주 재료는 산화 알루미늄(Al2O3)이다. 은색 자동차는 이 금속 분말들의 반사로 인해, 빛의 위치에 따라 다채로운 실루엣을 갖게 된다.
사실 흰색, 검정, 은색 그리고 회색까지 합쳐 무채색 계열은 관리의 용이성과 트렌드를 아우를 수 있는 포용력 덕분에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정반대로 은색은 인기가 낮아, 신차구입 고객 중 약 7%만이 은색을 찾는 것으로 알려졌다.
생명력과 개성의 파랑
파랑을 대표적인 색상으로 사용하는 경우는 드물다. 파랑 자체가 워낙 독특한 개성을 갖고 있는 까닭이다. 하지만 파랑은 뚜렷한 개성을 가진 자동차들과 만나면 큰 시너지 효과를 이룬다. 즉 ‘이 자동차라면 파랑 외엔 생각할 수 없다’와 ‘파랑이야말로 이 자동차를 위한 컬러다’라는 표현이 동시에 성립하는 경우가 분명히 있다는 것. 특히 고성능 머신 중, 파랑이나 파랑 계열의 색상을 가진 자동차들이 적지 않다. 미국을 대표하는 스포츠카인 쉘비는 세부 기종과 여러 세대에 거쳐 이 파랑을 대표적인 컬러로 활용해 오고 있다.
파랑과 그로부터 파생된 색상들은 바다로부터 영감을 얻는 경우가 많다. KBS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 등장했던 투싼의 색상인 ‘아라 블루’가 대표적이다. ‘아라’는 바다를 뜻하는 우리말로, 개발 당시 디자이너의 이름과도 같아 화제가 되었던 색상이다. BMW의 고성능 기종인 M 시리즈의 색상인 야스 마리나 메탈릭 블루와 롱비치 블루는 모두 관광지로 유명한 바닷가의 물빛으로부터 영감을 얻은 것이다. 야스 마리나는 세계적 서킷이 있는 아랍 에미리트의 섬이며, 롱비치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항구 도시다. 모두 독특하고 개성 강한 디자인으로 젊은 수요자들을 노리는 자동차들이기도 하다.
파랑은 전세계적으로 봤을 때도 극명하게 호불호가 갈린다. 유럽과 국내의 경우 무채색 다음으로 선호도가 높은 색이지만 인도의 경우 카스트 제도 상에서 천민들을 상징하는 색이었기에 기피 대상이 된다.
이탈리아의 열정 녹아 있는 빨강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컬러다. 자동차와 관련된 그 모든 낭만적 전설이 이 붉은 빛 속에 녹아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20세기 중반 이래 자동차 디자인을 이끌었던 이탈리아 디자이너들과 제조사들은 강렬한 원색의 빨강을 자신들의 시그니처로 삼고자 했다.
그러나 빨강 자체가 워낙 원색이다 보니 제조사의 정체성이나 독특한 뉘앙스를 표현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이에, 빨강의 명가라고 할 수 있는 페라리는 보라색 안료를 일정 비율로 섞었다. 이렇게 해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원색의 빨강보다 차가운 느낌을 살짝 더함으로써, 세련된 인상을 구현해 온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페라리는 빨강이라는 컬러에 있어 누구보다 많은 지분을 선점할 수 있었다. 이 외에 빨강과 떼려야 뗄 수 없는 피아트와 알파로메오 그리고 마세라티 역시 이탈리아 제조사라는 점도 흥미롭다. 오죽하면 ‘이탈리안 레드’라는 명칭이 사용될 정도니 말이다.
빨강을 잘 만드는 것은 이탈리아 제조사지만, 많이 구매하는 것은 아메리카 대륙 국가의 소비자들이다. 반대로 빨강을 길하게 여기는 중국은, 자동차에서만큼은 빨강을 크게 선호하지 않는다.
독특한 개성으로 오감 자극하는 컬러들
위에서 열거한 기본적인 컬러 외에 독특함 그 자체로 시선을 사로잡는 색들도 있다. 특히 이런 색상들은 이름도 유별나다. 이런 컬러들은 주로 슈퍼카에 적용되는 경우가 많다. 주황 계열에서는 우선 람보르기니 우라칸의 색상 중 하나인 ‘아란시오 보레알리스’를 들 수 있다. 진한 오렌지빛이지만 각도에 따라 노랑으로도 보이는 독특한 컬러다. 아란시오 자체가 오렌지를 뜻하는 이탈리아어이다. 그리고 창업주인 페루치오 람보르기니가 가장 사랑한 색으로도 알려져 있다.
노랑에서 파생된 컬러 중에서도 독특한 개성을 자랑하는 자동차들이 있다. 강력한 성능의 스포츠쿠페인 BMW M4의 ‘오스틴 옐로’는 화려한 듯하면서도 차분하고 고른 광택을 지닌 메탈릭 컬러다. 국내 차종 중에는 아반떼 스포츠의 ‘블레이징 옐로’가 이 차종의 색상과 닮아 있어 출시 당시에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녹색은 옷 색으로도 쉽게 소화할 수 있는 색상이 아니다. 국내 한 프로야구단은 녹색의 이벤트 유니폼을 선보였다가 입방아에 오르기도 했을 정도다. 그 녹색을 자동차에 녹인 것이 메르세데스-AMG의 고성능 쿠페인 AMG-GT R이다. ‘그린 헬 마그노’라는 괴상한 이름을 갖고 있는 이 색상은 녹색 지옥의 괴물이라는 뜻인데 이는 ‘녹색 괴물’이라는 별명이 붙은 독일 뉘르부르크링에서 그 성능을 검증했다는 의미도 갖고 있다. 마블 코믹스의 캐릭터 ‘헐크’를 연상케 하는 색감인데, 고성능 자동차가 아니라면 쉽게 선택하기 어려운 컬러다.
색, 자동차를 넘어 라이프스타일을 정의하다
아일랜드 시인 예이츠는 “와인은 입으로 들어오고 사랑은 눈으로 들어온다. 이것이 우리가 삶에서 알아야 할 전부”라고 썼다. 감각적인 대상인 인간의 삶을 강력하게 정의할 수 있음을 직시한 구절이기도 하다. 자동차는 그 차를 고르는 데서부터 활용하고 타는 데까지, 그리고 남에게 보여주는 부분까지 많은 것을 정의한다. 그리고 그 자동차의 성격에 지대한 영향을 지니는 것이 컬러다. 여러가지 의미와 이야기, 그리고 기능을 포함한 자동차의 컬러는, 자동차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가 누구든 그의 삶을 정의하는 요소일 것이다.
psy77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