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심종대 기자]배우 이순재는 지난 28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에서 열린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 기자간담회에서 “저로서는 이번이 마지막이지 않을까요. 다시는 이 작품을 할 일이 없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끊임없이 죽을 때까지 공부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방식으로 해야 한다”면서, “순간에 우뚝 설 수 있지만, 그게 정지되고 완성된 자리는 아니다. 개인의 판단이지만, 연기의 완성은 없다. 끝은 없다고 본다”고 말한. 그 보람으로 공연한다."며 한결같이 겸손함과 절제의 미덕으로 장르를 불문하고, 대중과 함께 호흡하며 연기 열정을 놓지 않은 배우 이순재가 연기인생 6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을 펼친다.
'세일즈맨의 죽음'은 현대 희곡의 거장인 아서 밀러의 대표작으로, 1949년 초연 발표와 함께 연극계 3대상인 퓰리처상, 연극비평가상, 앙투아네트상을 모두 받은 최초의 작품으로, 평범한 개인 ‘윌리 로먼’을 통해 무너진 아메리칸드림의 잔해 속에 허망한 꿈을 좇는 소시민의 비극을 그리고 있다.
또 자본주의의 잔인함을 고발하고, 인간성 회복을 호소하면서 현대 미국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도 엿볼 수 있는 작품으로, 주인공의 죽음을 건 최후의 자기주장이 깊은 울림을 주며,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인간의 소외와 붕괴를 표현하는 대담한 플래시백 기법이 독창적이다. 특히 이번 공연은 원작 그대로가 무대에 구현되길 바라는 이순재 배우의 뜻에 따라 2시간 40분에 달하는 긴 공연과 함께 주인공인 그가 감당해야 할 대사는 580마디로, 젊은 배우들도 소화하기 쉽지 않은 양이다.
‘배우 이순재 연기인생 60주년 기념사업회’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하는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이 다음달 13일부터 22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무대에 오른다.
이날 기자 간담회에서 이 작품에 임하는 소감에 대해 그는 “햇수를 따지는 사람이 아니지만 연기를 하다 보니 60년이 됐다. 옆에 있는 주변 사람들이 따져줘서 60주년인 걸 알았고, 일종의 권고 때문에 행사가 진행됐다”면서, “공연하면서 조그맣게 ‘60주년 기념’만 붙이자고 한 건데, 일이 커졌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 작품은 1978년 처음 현대극장에서 故 김의경 선생의 주도로 연기했다. 너무나 어려운 작품으로 40대니까 이 작품을 해야 할 연령과 비슷했지만, 이해하지 못한 부분들이 많아 부족한 점이 있었다”면서, “2012년에 우리식으로 번안한 ‘아버지’를 했었다. 창작극도 하면 좋았을 텐데, 늙은이가 주역으로 한 작품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이 작품을 원작 중심으로 제대로 하자고 해서 해보려 한다. 2시간 40분 정도의 공연 시간인데, 놓쳤던 것들과 표현에 부족한 것을 보완해 원작에 충실히 해보자는 생각으로 참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연말에는 ‘시련’을, 올해 연말엔 ‘세일즈맨의 죽음’에 출연한다. 이 두 작품 모두 아서 밀러의 작품으로 이순재 씨는 “아서 밀러의 작품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한 번쯤은 경험해 볼 만 하다.”면서, “‘세일즈맨의 죽음’은 부부, 부자, 모자 등 가족을 다뤄 동양적이다. 한국 관객이 선호하고 공감할 부분이 많다”고 평가했다.
이어 “1978년도 할 때는 도시공해나, 환경공해 등 도시화 과정에서 개발 후에 오는 자연피해에 대한 심각성을 별로 느끼지 못했다. 세월이 갈수록 작가의 새로운 의지를 발견할 수 있는 게 고전”이라면서, “상당히 심오한 내용과 의지가 있어서 자꾸 보고 반복해야 그때 그때 발견한다. 여러 번 하다 보니 이제 다 이해가 된다. 아서 밀러는 뭐니뭐니해도 미국을 대표하는 20세기 대표 작가로 다 한 번씩 해볼 만한 작품”이라고 강조했다.
배우를 꿈꾸는 이들에게 “옛날이나 지금이나 이것을 하겠다고 들어오는 사람은 처절한 각오를 해야 한다. 끊임없이 죽을 때까지 공부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방식으로 해야 한다”면서, “순간에 우뚝 설 수 있지만, 그게 정지되고 완성된 자리는 아니다. 개인의 판단이지만, 연기의 완성은 없다. 끝은 없다고 본다. 그 보람으로 공연한다. 새로운 것을 찾아가야 하는 과정이 있어서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계획에 대해 “내년엔 영화 한 편을 찍게 된다. 드라마 한 편도 한다. 두 군데에서 공연하자고 하는데, 조건이 맞으면 할 생각”이라면서도 “구체적으로 정해진 건 없다”고 말했다.
한편, 역사적 철학은 물론 ‘살아있는 배우 예술’의 정신을 실천하고 있는 배우 이순재는 현존하는 배우들 중에서 배우적 명성을 지닌 사람은 있으나, 그만큼 후학들을 위한 역사적 인식과 확고한 연기교육의 체계를 몸소 실천하는 배우는 흔치 않다.
희수가 넘었음에도 “나는 아직도 신인배우이다”라는 기치 아래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방송과 영화는 물론 연극무대에서도 늘 서고 있다.
배우로서 창작활동 뿐 아니라 교육활동에도 끊임없이 매진하고 있는 그는 세종대학교를 거쳐 현재 가천대학교에서 연기훈련과 함께 매일 저녁 학생들과의 연극워크숍을 하고 있다. 어느 날 건강을 염려하해 연극워크숍진행을 만류하는 후배에게 “물론 힘들지. 이젠 체력이 예전 같지 않으니까. 하지만 김교수, 얘들이 잘 커야 우리가 빛을 보지 않겠어? 애들이 결코 우리가 어떻게 살았는지 기억해줄텐테”라고 말해 그가 강단에 서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연극의 미래를 위한 지금의 작은 노력, 후학을 위한 뜨거운 열정이 그의 가슴에 늘 불타오르고 있다. 특히 그의 행보에는 늘 후손과 미래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작품의 선정과 연기 고민과 일상의 궤적도 그러하다. 바쁜 일정에도 대학로 웬만한 연극은 다 관람하면서 뒤풀이까지 챙겨가면서 작품과 연기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대학로 소식과 배우들의 신상을 누구보다 꿰뚫고 있고, 이제 어떻게 후손들에게 남겨주고 기억될 것인가를 염두에 두고 있다. 그래서 그의 한마디 한마디에는 철학이 담겨져 있고 같은 길을 걸어가는 많은 후배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고 있다.
안톤 체홉이 100년후의 인류의 행복에 대해서 고민했듯 이순재는 100년후의 한국 배우들의 행복과 삶에 대해서 고민하는 이 시대의 가장 큰 어른이자 참 스승이다.
심종대 기자, simjd1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