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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환의 여행스케치]바다건너 섬, 그 소망의 이야기, 소..
문화

[박성환의 여행스케치]바다건너 섬, 그 소망의 이야기, 소난지도(小蘭芝島) #첫번째

심종대 기자 입력 2016/12/04 11:31
섬, 뭍을 따라 걷다.



아침 7시 40분의 당진 도비도 포구,

소난지도를 거쳐 대난지도를 들어가는 첫배가 떠나는 시간이다. 이른 새벽에 길을 나서 도착한 햇살 좋은 아침의 도비도 포구는 싱싱하다. 포구의 주차장은 벌써 만원이다. 주말과 휴일을 보내려는 대부분의 강태공과 여행자들이다. 모두가 하나같이 낚시 대를 들고 밝고 환한 미소, 왁자지껄하는 큰 웃음이 한참을 머문다. 방조제로 육지와 연결이 되면서 더 이상 섬의 모습이 아닌 도비도는 이제 또 다른 섬으로 안내하는 역할을 톡톡하게 해낸다. 태공 일행을 태우고 들어가고 나오는 보트들의 모터소리가 끓이지 않는다.

난지도로 향하는 육중한 카페리도 사람과 차를 가득 싣고, 도비도 포구를 떠난다.

페리의 마지막 끝에 서서 바다를 본다. 바다, 은연중에 그리워지는 그 서해의 바다내음이 코끝을 스친다. 그 맑은 비릿함이 기분 좋게 스친다. 바람의 스침은 시원함으로, 향긋한 비릿함으로, 그리고 언제인가 만나 본 듯한 익숙한 풍경의 데쟈뷰로 익숙해진다.



바다에 던져 넣은 모진 세월의 기억,
그래서 바다는 늘 상처투성이다. 더 많은 기억, 더 많은 추억을 담을수록 바다는 더 파랗다. 시퍼렇게 질린 바다가 품은 그 수많은 이야기들은 짐작도 되지 않을 정도의 수많은 것을 담기 위해 바다는 그만큼 더 넓어진다.

서해 바다, 소난지도의 바다는 참 맑다.
방조제로 인한 갯벌의 사라짐이 그 이유가 되겠다. 그러나 보는 이의 눈에 드는 맑음은 그것과는 또 다른 맑음이다. 하늘, 흙길이 그렇고 풀잎 하나하나가 그렇다. 그런 후에야 바다가 눈에 든다. 반짝이며 일렁거리는 는 바다의 빛 또한 맑다. 맑은 하늘처럼 맑은 바다의 빛은 섬을 휘감으며 더 또렷한 기억으로 남게 한다. 


섬의 사람들은 이 풍경을 그리고, 뭍의 사람들은 섬의 풍경을 그린다.
길손은 섬의 풍경을 가슴에 담는다.



여객선이 포구에 닿고 나면 내리는 사람은 길손 혼자다. 오히려 기다리다 반갑게 인사를 하며 떠나는 이들이 더 많다. 늘 만나 왔다는 듯, 늘 가깝게 지내는 듯, 늘 그렇게 인사를 해온 듯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만을 보고도 미소로 묻고 답한다. 같은 배에 올랐던 이들은 모두가 대난지도를 향하는 길이다. 그렇게, 작은 섬은 들어오는 이보다, 떠나는 이가 더 많은 시간, 섬은, 그만큼 더 조용해진다.


섬사람들은, 섬에서의 삶을 자식들에게 물려주려 하지 않았다. 작은 섬에 갇힌 나의 자식이 되길 바라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섬에서의 아이들은 모두 중학생이 되면 인천으로 유학 같은 길을 떠난다. 소난지도의 사람들은 그래서 두 집 살림을 한다. 아이의 방이 있는 곳과 섬 속의 집, 조금이라도 더 낳은 삶을 살기 바라는 부모들의 마음은 아이들에게 그대로 전달이 되고, 그 소망이 착실히 나아가는 동안, 섬은 더 외로워진다. 그만큼 바다 건너의 섬은 큰 소망을 가득 담게 된다.



소난지도(小蘭芝島),

섬은 작으나 그 역사는 유구하다. 소난지도 포구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전라도와 경상도 지역의 세곡을 경창(마포나루)으로 운송하던 조운선이 머물던 곳으로 배와 사람의 발길이 끓이지 않던 섬이었다. 1530년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최초의 난지도(難知島) 기록이 있으며, 해동여지도에 나타나고, 1861년 대동여지도에 소난지도(小蘭芝島)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하였다. 2.654㎢의 작은 섬으로 대난지도의 절반정도의 규모다. 그러나 군내 섬 들 중에는 두 번째로 큰 섬으로 주위에는 여러 작은 섬들이 있으며 행정명으로 난지도2리로 되어 있고, 소난지도가 1반이며, 주위의 섬들이 2,3,4반으로 이루어져 있다.

연육으로 더 이상의 섬이 아닌 도비도 역시 소난지도에 속하는 곳으로 약 9km 거리에 배로 약 10여분의 거리에 위치한다. 길손을 맞이하는 소난지도의 첫 얼굴은 사람이 아니었다. 포구의 선착장을 지키는 누렁이와 횐둥이, 그리고 갈매기다.

뭍과 멀지 않은 바닷길에 선 섬. 큰 섬 옆에 작은 섬이지만, 깃들어 있는 역사는 큰 섬 보다  더 진하다. 삶과 애환, 역경을 이겨온 섬, 소난지도. 그 속의 길을 걸어본다.



삶의 역경을 겪었기에 더 평안한 사람들이 산다.
많은 사람을 만나지 못한 소난지도의 여행, 또는 만나고 스친다 해도 모두가 어르신들이시다. 짐짓 여유로운 표정에서부터 섬 생활의 너그러움이 같은 모습으로의 표정, 길을 걷는 내내 젊은 친구들의 모습을 볼 수가 없다.

그래도 섬은 자연과 같이 시간이 흐른다. 정적으로, 고요함으로 섬에서의 시간은 마치 정지되어 있는 것 같지만, 이곳에서도 세월은 흐르고 있음을 막을 수는 없다. 불편해 보이는 거동 속에도 어머니는 편안한 걸음으로 걷는다. 바다 건너 품은 소망보다 더 깊은 삶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은 섬, 그 속에서 삶은 고단하고 피곤하다. 긴 세월을 그렇게 흘러와 겪어 온 섬사람들은 그만큼 더 평안해 보인다.


여유로움 한껏 묻어나는 길을 따라 걷는다.
소난지도는 크게 두개의 마을로 구분된다. 선착장이 자리한 갑진마을과 섬 동쪽의 듬배마을이다.
곧게 뻗은 길이 아닌, 그렇다고 급격하게 휘어진 길도 아니다. 부드럽게 휘어진 큰길은 걷기에 전혀 부담이 없다. 선착장에서 출발한 길은 을씨년스러운 세트장을 지나 의병총에서 잠시 머물고, 다시 길을 잡으면 소난지도 내 가장 큰 펜션 단지가 나오며 이내 소난지도의 또 다른 선착장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곳에서부터는 더 이상 걸을 수 없다. 산 아래까지 들어온 바닷물로 더 이상의 도보는 어렵기 때문이다. 9월과 10월이면 가장 물이 많이 빠지는 계절로 이때는 선착장에서 바라보이는 섬들도 모두 걸어서 갈수가 있다 한다. 그 때는 선착장도 이곳을 사용하는 것이 아닌 듬배선착장을 이용하게 된다.



선착장에서 다시 북으로 방향을 잡아 오른 길,
끄트머리에는 주민 센터 건립이 한창이다. 과거 삼봉초등학교 소난지 분교장으로 1500평의 대지다. 한때는 단체관광객들에게 임대를 해주기도 했던 곳으로 앞으로 주민 센터의 건립이 완공되면 섬 주민들의 문화공간이 될 것이며, 아울러 섬을 찾는 이들에게도 많은 도움을 줄 수 잇을 것으로 기대를 한다. 주민 센터의 옆 공터에 오르면 시원한 바다의 풍광을 만나게 되는데, 이 자리가 지금으로서는 걸을 수 있는 마지막 길이 된다.

다시 돌아온 선착장에서 허기나 때우고자 과자 한 봉지를 들고 있는데, 어르신 한분이 배를 손보고 계신다.


동화 속에나 나올법한 이쁘장한 교회건물을 돌아 그대로 길을 따른다. 잘 지어진 별장 같은 집 한 채가 있는 작은 구비를 지나면 여느 농촌에서나 볼 법한 풍경이 펼쳐진다. 바다에 둘러  싸인 작은 섬이지만, 그 안의 생활은 농경이다. 민박집들이 길게 늘어선 해안을 딸 지나고 새로 지어진 펜션과 그 이전부터 자리 잡은 펜션의 모습이 이국적이다. 소난지도의 섬 느낌과는 다소 동떨어져 보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외로운 섬도 사람과 함께 하려 하는 준비가 되어 있음으로 보게 된다.


길을 따라 바다로 그대로 걸으면 어수선한 건물이 몇 채 들어서 있다. 이 자리는 당진군에서 예산을 들여 의병총 성역화사업을 추진하려던 곳이다. 당시 모방송사의 대행업체와 드라마 촬영용 세트장을 조성하기로 협의하였으나, 사업자의 불법산림훼손이 심각하여 중단된 것으로 지금껏 어수선한 모습으로 섬의 끝자락에 버티고 서있다. 을씨년스럽기 그지없는 건물들은 폐가나 다름없는 모습으로 서고 그 뒤로 너름 공원이 자리하니 이곳이 의병총이다. 1905년 을사늑약의 체결에 반발한 의병들이 일제의 초토화 작전에 밀려 이 곳 소난지도로 숨어 들어왔으나 일제경찰들에게 발각 되면서 피비린내 나는 전투를 벌이다 끝내 100여명의 의병이 최후를 맞은 곳이다.



의병총을 돌아 나와 걸음을 옮긴다. 소난지도에서 가장 큰 펜션단지를 만나게 되고 바다를 따라 북으로 길을 잡는다.

평온한 풍경의 바다 너머에는 대난지도가 지척으로 도독어미로 불린다. 섬과 섬이 가장 가깝게 자리한 곳으로 과거 조운선이 정박하던 곳이다. 지방에서 거둔 세곡을 경창(서울 마포)으로 수송을 하면서 잠시 쉬어 가던 곳이다. 조선말에는 이 세곡선을 털기 위해 도둑들이 살고 있었으니 그곳이 소난지도와 대난지도가 가장 가깝게 붙은 자리다.

산길을 택해 올랐으나 끝내 길을 잃고 다시 내려와 원래의 자리로 돌아 내려온다.

자연, 풍경, 그 속에 아무런 바램이 없어도 가슴 따듯해지는 모습들이다. 너무도 여유롭고 적막한 풍경에, 너무도 고요한 섬 속의 풍경에 짐짓 길손만이 놀란다. 시간은 흐르고 있으나 참 느린 초침의 흐름이다. 천천히 걸으며 소난지도의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정적은 멈춤으로 느껴진다. 아득히 들려오는 바다의 소리, 바람의 소리, 그리고 흙길의 소리가 스친다.

소난지도의 풍경은 그렇게 인사를 한다./글-사진=박성환 여횅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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