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심종대 기자[국회가 3일 새벽에 400조5000억 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을 확정하면서 막판 비공개 심사를 통해 지역구 관련 선심성 예산을 대거 끼워 넣은 것으로 드러났다.
최순실 게이트와 박근혜 대통령 퇴진에 여론의 관심이 쏠려 있는 사이 여야가 정부 예산을 나눠 먹기 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4일 동아일보가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2017년도 예산안’을 분석한 결에 의하면, 국회 심의 과정에서 선심성 지역구 예산이 7410억 원 증액된 것으로 나타났다.
예산이 증액된 선심성 지역구 사업 314개 중 182개(1663억 원)는 당초 정부 원안에 없었으나, 이 사업들은 예산안에 대한 국회 심의 과정에서 추가됐다.
예산 증액 사업 대부분은 함양∼울산고속도로(150억 원 증액), 서해선 복선전철(650억 원 증액)처럼 의원들의 의정활동 홍보자료에 단골로 등장하는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으로, 여야 지도부 및 대선 주자들의 지역구 예산이 대폭 늘어나 ‘실세 챙기기’ 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민원성 지역구 예산이 대폭 증액되면서 연구개발(R&D) 및 미래 먹거리 발굴, 국방 등 특정 지역구와 관련이 없는 예산은 삭감 대상이 됐다. 2019년 12월을 목표로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개발 중인 한국형 발사체 R&D 예산은 당초 2700억 원이 배정됐으나, 국회는 500억 원을 삭감했다. 차세대 전략산업인 바이오산업 핵심기술개발 예산은 4억7000만 원 줄었고, 2022년까지 국산 정찰위성 5기를 도입하는 일명 ‘425사업’ 예산이 295억 원 감액되는 등 국방 분야도 직격탄을 맞았다.
지역구 의원들이 매년 예산편성에서 사활을 거는 쪽지예산은 각종 부정적 요인을 지적받아왔음에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상임위나 예산결산특위 심사 과정에서 민원성 예산이 반영될 수 있는 길을 좁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른바 ‘최순실 예산’이 최소 1748억원(예결특위 추산)에서 최대 4000억원까지 일방 삭감된 가운데 정치권은 이들 삭감분이 대부분 쪽지예산으로 국회 실세 지역구로 흘러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순천대 체육관 리모델링에 6억원, 순천만 보수공사와 국가정원관리에 9억원, 순천 내 하수도 개선공사 등 18억원 가량을 쪽지 예산으로 막판에 끼워넣었고, 정진석 원내대표는 공주 박물관 수장고 건립예산 8억원을 막판에 증액시켰고, 행복도시와 공주시 연결도로 예산 10억원 증액에도 영향력을 발휘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광림 정책위의장은 예산과 세법 논의로 바쁜 와중에도 지역구인 안동의 성선현 문화단지 조성예산 27억원을 막판에 쪽지예산으로 끼워넣었고, 안동대 시설예산 5억원과 도촌지구 용수개발예산 14억원도 막판 증액됐다.
친박(친박근혜) 실세 최경환 의원은 지역구 경북경산에 무선전력 사업 연구예산 10억원을 증액시켰고, 영주.문경.예천이 지역구인 최교일 의원은 정부 예산편성에서 반려됐던 한국문화테마파크 예산 40억원을 막판에 쪽지예산으로 끼워넣었다.
야당도 마찬가지다. 대선후보군으로 분류되는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지역구 수성갑에서는 대구남천 정비사업 예산 20억원과 수성구 매호천 정비사업 예산 14억원이 증액됐다. 같은 당 위성곤 의원은 지역구인 서귀포 크루즈항 예산을 40억원이나 증액시켰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대위원장은 호남고속철도 광주-목포 구간 신설 예산을 종전 750억원에서 무려 655억원이나 증액시켜 1405억원의 매머드급 예산으로 만들었고, 백지화됐던 전남해양수산과학원 목포지원 신축 예산 10억원을 만들어냈다.
같은 당 김동철 의원도 종전 820억원이던 광주-강진 고속도로 예산을 2180억원으로 늘렸다. 광주 전남지역의 국도 조사와 설계비용을 대거 늘리는데도 김 의원의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예산이 대폭 삭감된 교문위 예산은 상당 금액이 대학으로 배정됐다. 강릉원주대와 군산대, 목포해양대, 전남대, 충북대 등 대학 시설확충 비용이 200억원 이상 늘었다. 이들 대부분은 계획조차 없던 예산으로 증액 과정에서 슬쩍 생겼다.
지역구 예산 챙기기 논란과 관련해 예산을 담당하는 송언석 기획재정부 제2차관은 “정상적인 국회 심의 과정의 일환이라고 본다”고 말했으나, 제대로 된 공론화 과정 없이 비밀리에 불요불급한 정부사업 예산을 깎아 지역구 선심성 예산으로 돌리는 것은 예산심의권의 남용이란 지적이 제기된다.
심종대 기자, simjd1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