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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환의 여행스케치]바다건너 섬, 그 소망의 이야기, 소..
문화

[박성환의 여행스케치]바다건너 섬, 그 소망의 이야기, 소난지도(小蘭芝島) #두번째

심종대 기자 입력 2016/12/06 20:10
섬, 물길에서 만나다.



소난지도의 비경이 숨은 북쪽의 모습, 마을의 어르신께 부탁을 드려 뱃길로 돌아본다. 관광용 목적이 아닌 어부의 삶인 배. 주인과 함께 소난지도에 머물며 주인과 같은 삶을 살았을 작은 배다. 어르신의 삶과 한을 그리고 섬사랑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푸른빛으로 치장한 작은 배에는 젊고 싱싱한 모터가 달렸다.


"그 전에는 노를 저어 다녔지, 지금에야 모터를 달았으니까 편하지만...", 말끝을 흐리시다가 "저 방조제가 없었을 때는 노 저어서 도비도까지 가는 것도 보통일이 아니었지, 아무에게나 배를 주지도 않았어.."


그때까지만 해도 섬에는 300집이 넘게 있었다면서, 마을이 한참 바쁠 때는 오밤중에도 불을 환하게 밝힌 배들이 수십 척씩 정박해 있었다 한다.



건너편의 큰섬(대조도)에는 절집이 하나 있었는데, 풍어와 안전한 뱃길을 염원하는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기도 했다, 그러다 절집은 태풍에 휩쓸려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그 이후로 방조제가 만들어 졌다 한다.


"저가(방조제) 만들어 지고 고기잡이도 예전만 못해, 뻘도 그렇고..“


작은 섬, 소난지도와 그렇게 만난다.

서해, 당진의 앞바다.

아주 오래전 시간, 옛 당진의 바다는 해상무역의 정점을 찍던 곳이다. '당나라의 뱃길이 가장 많이 닿는 곳'이라 해서 당진이라고 했겠는가, 그러한 이유로 한때, 소난지도 포구에는 300여척의 배가 정박하기도 했다. 물길을 건너온 어선들과 사람들이 밤새 피로를 풀던 곳이었다. 불과 60년 전, 방조제가 물길을 막기 전의 일들이다.



300가구가 넘게 살며 바다와 함께, 사람들과 함께 장사진을 이루던 포구는 이제 방조제의 둑에 막혀 더 이상의 배는 들어오지 않는다. 바다의 파도 역시 예전 같지 않게 조용하다. 하루 서너차레 들어오는 여객선만이 소난지도를 찾는다. 그러나 이역시도 내리는 인기척은 없고, 뭍으로 나가는 사람들만이 있다. 자연스럽게 섬은 그만큼 더 적막해진다. 그만큼 영화를 누리던 교역관문, 그러나 지금은 사람들의 가슴속에서 벗어난 작은 섬이 되었다.


모터에 시동을 걸고 처음에 섬을 걸었던 길과는 반대 방향으로 키를 잡으신다. 포구를 벗어나자마자 섬의 한곳을 가리키시며, 얽힌 이야기를 풀어 주신다.


"저것이 남대문이여, 바위 중간에 구명이 뚫려 있어서 그리 불러, 저 요상한 바위 있지? 지금은 물에 잠겨서 안 보이는데 저 아래 장정 3명이 누울 수 있는 공간이 있어, 옛날 외정때 일본놈들 피해서 저기에 숨는 바람에 살아남기도 했지"




연세 81세, 소난지도의 노인 회장 최한용 어르신이다. 아직도 정정하시다. 섬에 대한 사랑, 소난지도에 대한 애착이 누구보다 강하시다.


"대난지도는 그냥 놀러 댕기는데야, 거긴 역사도 없고, 있는 거라고는 그냥 해수욕장 하나여~ 여는 역사도 있고, 설화도 많지" 하신다.


그래도 가족단위의 관광객이 놀려면 해수욕장이 있는게 좋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그건 그래, 그래서 젊은 애들은 대난지도로 놀러가고, 우리 같은 늙은이들이나, 그냥 푹 쉬러오는 양반들은 일루 오면 되지.." 하신다.


말씀 속에 베인 소난지도의 사랑과, 일일이 설명해주시는 섬에 대한 애착이 강하시다. 과거 영화롭던 때와 달리 지금의 부족함 들에 많은 불편함을 호소하지는 않다. 그냥 그렇게 바람이 일고, 하루해가 뜨고 지듯, 바닷물이 들고 나가듯이 시간을, 자연을, 세월을 스스럼없이 맞이하신다.



애환이 없고, 설움이 없을 수 없다. 그러나 어르신의 모습에서는 겪은 모진 풍파들은 모두 바다에 던져 넣으신 듯하다. 어려움의 추억을 그 곳에 빠트려 넣어 두었기에, 바다는, 아니, 소난지도는 어르신에게는 더욱 더 진한 삶이되고, 지금의 삶이 된다.


그렇게 섬을 다 돌아볼 즈음,


포구로 향하던 배의 가까이 다른 배한척이 다가오더니 어르신께 반갑게 인사를 하신다.


"어디 다녀오세요?",

"여, 손님 태우고 그냥 한 바퀴 돌았어~!" 하신다.

"네~ 들어가세요." 인사에 그냥 손짓으로 알았다는 시늉을 하신다. 길손이 어르신을 보자 빙긋이 웃으시더니 턱으로 배를 가리키며

"아들.." 하신다.



조금 전 인사를 나누셨던 분이 아들이라 하신다. 부자의 대화치곤 참 무뚝뚝하다. 그러나 그 대화 속에 서로의 믿음이, 애정이 가득 묻어 있음은 금방 눈치 챌 수 있다.


작은 섬, 그러나 마음속까지 따듯한 행복이 묻어 있는 섬, 소난지도. 스스로의 행복을 자랑하지는 않지만 누가 봐도 즐거운 삶인 것은 분명하다. 


섬의 포구에는 섬에 들어 올 때와 마찬가지다. 서 있는 이는 길손뿐이다. 들이밀어 닿는 비릿한 바람과 갈매기뿐이다. 뱃고동 소리는 보이지 않을 정도의 그곳에서 울리는 소리일 뿐, 지척에서 움직이는 그 무엇도 없다. 유독 소난지도에 애착을 가지는 느낌은 그러한 모습 때문이다.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모습, 아직까지는 순수한 섬 본연의 모습을 간직한 섬이기에 그렇다. 북적대는 사람들의 틈바구니가 애당초에 존재하지 않는 섬, 그러기에 이방인이 가끔 찾아와 걷는 길은 섬사람들에게 관심의 대상이기도 하다.



돌아가는 배를 기다리기 위한 포구, 바람을 피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대합실에 어르신 한 분이 들어오시며 말을 건네신다.

"어디 방송에서 오셨는가? 오래전에도 방송국에서 여그 촬영한다고 하드만, 쏙 들어갔구만..".


"아니요, 그냥 구경삼아 왔습니다. 섬이 참 아늑하고 좋습니다.", 


"조용하니 좋긴 하지, 근데 사람 살만한 곳은 안돼~ 벌써 몇 집이 이사를 나갔구만..", 하시고는 길손의 사족을 궁금해 하신다. 어디가 고향이며, 결혼은 했는지, 아이들은 어떤지..등등, 귀찮을 법도 하건만 어르신의 말동무가 되어 드림이 스스로도 즐겁다. 사람이 그만큼 귀한 섬, 어쩌다 이방인이 쉬러 온다하면 바가지와 상술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반겨줄 섬이다. 값을 깎아 주지는 못해도 덤은 얹어 주는 그런 섬이다.



섬을 나섬은 곧 이별을 말한다. 뒤를 돌아보고 있다면 이미 그 자리를 떠나고 있다는 뜻이다. 돌아보고 마음이 흔들린 다는 것은, 섬에, 그곳에, 여전히 미련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모든 걱정 바다에 털어 놓고 싶은 마음, 여유만 있다면 방파제에 신문지 깔고 알지 못하는 객들과 소주 한잔 따르고 붓고 해도 부담스럽지 않다. 소난지도를 여행하면서 느낀 기분이다.


편안한 마음일수밖에 없는 섬, 소난지도. 참으로 오랜만에 만난 마음 가는 섬 여행이다. 복잡함은 물론 없으며, 한산하고, 부드러운 바다와 길. 그 모든 것이 길손의 마음을 잡았다. 못내 떠나기 아쉬운 걸음, 이내 포구의 여객선에 몸을 싣는다.


다시 본연의 삶으로 향하시는 어르신은 길손이 배에 올라 포구를 나서는 동안 손을 흔들어 주신다.

"꼭 한번 가족들하고 놀러 오소~" 그 말씀이 정겹다./글-사진=박성환 여행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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