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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환의 여행스케치]마지막 가을빛, 겨울에 들다. 상주 ..
문화

[박성환의 여행스케치]마지막 가을빛, 겨울에 들다. 상주 남장리 곶감마을

심종대 기자 입력 2016/12/11 11:19



누군가는 가는 가을이라 하고, 누군가는 오는 겨울이라 한다. 계절의 기분은 부딪히고 느끼는 저마다의 사정에 바뀐다. 겨울을 준비하는 시간, 따스한 전구 불빛과도 같은 겨울이 찾아드는 상주로 길을 나선다. 상주시 남장리는 꼭 남장 곶감마을이 아니어도 좋다. 마을 입구의 ‘상주자전거 박물관’도 좋고, 마을 뒤편의 천년고찰 ‘남장사’도 둘러보기 좋다. 시간의 여유가 있다면 낙동 제1경, ‘경천대’를 둘러보는 것도 권할만하다.


소백산맥줄기를 따라 속리산, 청화산, 지압산이 서남북을 에워싸고 있는 경상북도 상주, 이렇게 높은 산에 둘러싸인 지형적 특성은 상주를 ‘곶감의 본고장’을 만들었다. 그 중에서도 상주시 남장마을은 해발 729m의 노악산의 줄기에 들어서있는 마을로, 깊은 골을 이룬 산 아래 찬바람이 골을 따라 부는 자연적인 특성으로 상주에서도 손꼽히는 곶감마을로 길가에 산자락에 온통 감나무들이다.



오뉴월이면 꽃이 피고, 가을이면 황색으로, 홍색으로 익어간 감들은 흙과 온도에 따라 맛이 다르고 산지마다 특성이 조금씩 바뀐다. 전국 곶감물량의 절반이상을 만들어내는 상주의 곶감은 ‘둥시’라고 불리는 감으로 떫은맛이 유독 강하다. 곶감은 보통 10월에서 11월까지 만들어지는데 그 시기가 지난 남장마을은 여전히 바쁘다. 유독 곶감말리기에 좋은 영상6도의 기온이 계속되고, 바람과 습기가 여러 날 동안 일정하게 유지되는 남장마을이다.


제대로 된 곶감의 맛을 보려면 보름에서 한 달을 넘게 기다려야 한다. 적당한 바람도 맞아야 하며 적당한 추위도 맞아야 한다. 비를 피하고 습도를 조정해가며 더우면 물러지고, 너무 추우면 얼어버려서 상품이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좋은 곶감을 만들기 위해서는 더워도 안 되고, 너무 추워도 안 된다.



봄부터 감나무에 퇴비를 주어가며 가꾸어 면역력을 만들어 주고, 가뭄 들면 물대주고, 이상타싶으면 영양제를 놓기도 한다. 10월말부터 감을 깎고, 줄에 달고, 말리기를 하면 12월에 들어서야 제대로 된 곶감의 맛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때로는 시련으로, 때로는 기쁨으로, 또 때로는 아픔으로 사람이 살아가는 인생처럼 감나무에서 감이 시작되면서부터 곶감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시간이 여러 가지로 닮아있다.


‘곶감은 한로가 환갑’이라고 했다. 찬이슬 내린다는 한로가 지나면 감이 물러지기 때문에 그 전에 감을 따야하는데, 지형적인 특성으로 남장마을에서는 첫서리가 내리는 상강을 전후로 감을 딴다.


떫은맛이 없는 단감 ‘반시’는 홍시가 되고, 둥글게 생긴 감은 ‘둥시’라 한다. 그 중 청도, 진영, 남원에서 생산 되는 떫은맛의 ‘고둥시’가 있고, 산봉우리처럼 둥글고 소담스럽다 하여 상주 고둥시는 그냥 둥시라 불리는데, 곶감에 분이 많다하여 ‘분시’라고 불리기도 한다. 남장마을의 둥시는 탄린 성분이 많아 유독 떫은맛이 강하여 그냥 먹기는 힘들지만, 곶감으로서는 가장 좋은 품질이 된다.



길가에 산자락에 온통 감나무들로 가득한 남장마을은 제철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바쁘다. 연시가 되기 전 나무에서 딴 감들의 껍질을 벗기고 줄줄이 엮어 건조장에 거는 작업이 분주하게 이루어진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온 마을 사람들이 일손이다. 분주해 보이지만 일사분란한 손놀림은 그동안 쌓여진 사람들만의 충분한 교감이다.


이렇게 걸린 감들은 주렁주렁 달려 온 마을을 주황빛으로 물들이는 장관을 이루고 이러한 장관을 보기 위한 수많은 사람들이 이 즈음이면 남장마을 찾는다. 밤에는 찬바람에 얼고, 낮에는 바람에 녹기를 반복하며 40여일을 견디고 나면 온몸에 횐 분칠을 한 달달하고 쫄깃한 곶감이 된다.


아직도 가을기운이 머금은 마을길에 들어선다. 마당 한가득 감이 놓이고 어르신은 부지런히 상품성 있는 감을 선별하신다. 선별 된 감은 기계를 통하여 빠르게 깎아 소쿠리에 가득 담아  내고, 일부는 손으로 깎는 수고로움도 잊지 않는다. 조금의 일손도 필요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깎여진 감들은 건조장으로 이동된다.



경천대

건너편 주렁주렁 매달린 곶감 건조장에서 발길이 머문다. 건조장에는 지금도 커다란 산업용선풍기가 휭휭 돌아간다.


찬바람도 필요하지만 자칫 안개로 인한 습기가 올라올까 하는 걱정으로, 곶감 만들기에는 습기가 가장 좋지 않은 이유다. 지금이야 아가씨 주먹손만하지만 자연의 이치에 따라 시간을 보내면서 겉은 쪼그라들고 속은 실한 곶감이 만들어진다.


바쁜 일손은 선풍기의 찬바람까지 맞아가며 감을 걸고 있지만 정작 어머님의 이마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혀있다. 바로 옆 길손이 다가서지만 눈 마주침도 못할 정도로 손길이 바쁘다.


“뭐 하러 왔대요?” 감 말리는 풍경을 보고 싶어서 왔다고 하니,


“뭘 대단 한거라고 이걸 보러 여까지 왔어요.” 하며 웃으시며 구지 구경하자는데 말리지도 않는다. 어머님의 횐 장갑은 어느새 검게 물들어 가고 있지만 손길은 여전히 분주하다. 지금 걸리는 감들은 보름후면 반만 익힌 반 곶감, ‘반 건시’가 될 것 이고, 한 달 이후면 ‘곶감’이 될 것이다.


남장사

어머니가 매달감은 아직도 한참이다. 도와드리고 싶지만 도리어 방해가 될까싶다.

“힘드시겠어요.”


“누구나 다할 것 같으면 이 고생 안 허지요. 다 자식새끼들 먹이고, 가르치고, 나도 맛 난거 사먹고..”라며 환하게 웃으신다.


이미 나와 있는 곶감 하나를 여행자에게 무심하게 내미신다. 살짝 말려진 반 건시다. 얇게 말려진 겉은 쫄깃하고, 속은 부드러운 젤리와 같다. 향기 없는 곶감이지만 그 달콤함은 달달함으로 맡아진다.


자연의 시간이 만들어주는 곶감, 시간이 흘러 쪼글쪼글해지고, 그렇게 흘러 겉모습보다는 달디 단 속을 갖추게 되는 곶감, 남장리 곶감마을의 겨울은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감 농사짓듯이, 자식농사 짓듯이, 인생살이 하듯이..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글-사진 박성환 여행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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