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동교회 가나의집 열림홀에서 덴탈씨어터의 오종우 예술감독, 아서 밀러 작, 김윤철 역, 차가현 연출의 <값>을 관극했다.
아서 밀러 [Arthur Miller, 1915~2005]는 뉴욕에서 출생하였다. 소년시절에 대 불황으로 집이 몰락하여, 고등학교를 나온 후 접시 닦기·사환·운전사 등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고학으로 겨우 미시간대학교 연극과를 졸업했다. 재학 중에 쓴 몇 편의 희곡으로 상을 받은 것이 그에게 자신감을 주었다.
졸업 후 뉴욕시에 가서 생활을 위하여 라디오 드라마를 쓰고, 그 여가에 희곡 창작을 계속했는데, 제2차 세계대전 중의 군수산업의 경영자와 아들의 대립을 다룬, 전쟁 비판적인 심리극 <모두가 나의 아들 All My Sons>(1947)로써 비평가 및 일반 관객의 절찬을 받았다. 이어 <세일즈맨의 죽음 Death of a Salesman>(1949)으로 퓰리처상 및 비평가 단체상을 받고, 브로드웨이에서 2년간의 장기공연에 성공했다.
이 작품은 평범한 샐러리맨의 꿈과 현실과의 괴리에 부자(父子)간의 사랑을 곁들여, 회상형식의 교묘한 무대처리로 현대의 불안을 강렬하게 그려낸 걸작이다. 밀러는 이 작품으로 전후 미국 연극계의 제1인자의 지위를 획득했다. <도가니(가혹한 시련) The Crucible>(1953)는 리얼리즘의 수법을 버리고, 17세기 뉴잉글랜드에서의 마녀재판(魔女裁判)을 주제로, 그 당시 전 미국을 휩쓸었던 매카시 선풍을 풍유(諷喩)한 희곡이다.
그 후 여배우 마릴린 먼로 (Marilyn Monroe, 1926~1962)와 두 번째 결혼을 했으나 이혼했다(1960). 그밖에 <다리위에서의 조망(眺望) A View from the Bridge>(1955, 퓰리처상 수상), 마릴린 먼로를 모델로 한 <전락(轉落) 후에 After the Fall>(1964) 등의 희곡과 소설·라디오 드라마·평론 등이 있다. 그는 테네시 윌리엄스(Tennessee Williams, 1911-1983)와 함께 미국 연극의 발전과 실험에 크게 이바지했으며, 그의 희곡은 대부분 미국인의 공통된 비극적 생활면을 주제로 한 점에서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번역을 한 김윤철은 오랫동안 학자로, 평론가로 활발한 활동을 했다. 한 때 연극배우를 꿈꾸기도 했지만 불모지였던 한국 연극 공연에 대한 평론가의 길을 개척했다.
한국 연극 공연에 대해 날카롭고 정확한 비평으로 연극 발전에 기여했던 그는 2014년에 국립극단 예술 감독을 맡아 ‘근현대 희극의 재발견’을 위한 다양한 작품을 발굴, 무대에 올리는 등 한국 연극 발전을 위한 혁신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김윤철의 원래 꿈은 연극 배우였다. 그러나 부모의 반대에 부딪혀 서울대학교 사범 대학에 진학했다. 대학 시절 내내 연극 동아리에서 연극에 몰두했다. 졸업 후엔 극단을 만들어 연극배우로 활동했다. 연극에 몰두하던 중 뜻하지 않게 성대에 문제가 생겨 연극배우 활동을 접어야 했다. 연출은 적성에 맞지 않았다. 연극을 포기할 수 없어 연극을 계속 공부하기 위해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현대 미국 희곡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1988년에 귀국했다.
그 당시 연극 희곡, 주제 등에 대한 평론가는 있었지만 정작 연극 연출, 공연에 대한 평론은 전무했다. 이 제안을 받아들여 김윤철은 연극 공연 평론가의 길을 걷는다. 날카로운 그의 공연에 대한 비판은 긍정적인 반응도 얻었지만 비판을 받은 측의 비난도 감수해야 했다. 그는 공정하고 사심 없는 평론, 대안을 제시해 주는 평론을 원칙으로 지켜왔다.
2008년엔 국제연극평론가협회 12대 회장으로 선임된다. 이전 11대까지 회장이 모두 유럽인들이었다. 최초의 아시아계 회장을 맡으면서 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회의에 참석하며 국제 연극 관련 인사들과의 교류도 활발하게 했다. 이 시기를 통해 김윤철은 국제연극의 흐름을 파악하고 한국 연극의 방향에 대한 감각을 키울 수 있었다. 그 후 국제연극평론가협회 회장직을 세 번 연임하게 된다.
2014년엔 국립극단 예술 감독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고 수락한다. 그 동안 예술 감독은 주로 배우 출신이나 연출가 경력의 인물이 맡아왔는데 연극 공연 평론가로선 처음이다. 한 동안 고민하던 그는 국립극단 예술 감독직을 수락하고 한국 연극 공연의 발전 또 국립극단의 혁신을 위한 헌신을 하기로 결심한다.
예술 감독으로 취임한 후 그는 배우들의 생활 안정을 위한 ‘시즌 단원제’를 실시해 일정 기간 배우들이 연극에만 전념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했다. 그 밖에 ‘한국 근현대극의 재발견 시리즈’를 통해 한국 연극의 정체성을 재발견하고 의미를 찾는 작업 등 획기적인 일들을 실천하며 국립극단을 발전적이고 혁신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가고 있다.
연출을 한 차가현은 덴탈 씨어터 대표이다. 대학 때부터 연극 동아리 활동을 했는데, 어머니인 명배우 故 여운계(呂運計, 1940~2009)의 따님이다. 2003년 연극 장 아누이의 <안티고네>에서 주인공을 맡자 어머니도 대학시절 똑같은 배역을 맡은 적이 있다고 해서 더욱 의미 있는 공연이 되었다. <위기의 여자>에 출연할 때는 어머니가 직접 옷을 맞춰주기도 했다. “당시 배경이 70년대 프랑스였는데, 집 안에서 구두를 신으면 이상하다면서 실내화에 예쁜 코르사주를 달아주셨고요. 제가 무대에 설 때는 항상 보러 와주셨고, 잘한다 싶으면 다음 날 전원주, 선우용녀 아주머니를 모시고 오셨어요.”라고 회고한다.
현재 대학생과 중.고등학생 3남매를 키우고 있는 차가연 덴탈 씨어터 대표는 아직 구체적인 계획이 잡혀 있는 건 아니지만 조만간 “치과 문을 닫는 한이 있더라도” 본격적으로 연극을 해보고 싶다고 한다. 그리고 사람들 입에서 차가현이란 이름 석 자보다 ‘여운계의 딸 차가현’으로, 또 “여운계 딸이라 연기를 좀 한다”는 말을 듣게 되면 좋겠다고 한다. 나이 들수록 외모뿐 아니라 내면, 그리고 연기 관까지 어머니와 닮아가는 듯하다.
무대는 여러 개의 고가구와 오래된 식탁이 무대 중앙에 있는 집이다. 백색의 천으로 덮여놓았고 궁형(弓型) 하프도 보인다. 식탁 앞에 있는 의자 역시 고풍스럽다. 벽에는 풍경화를 그린 화폭도 걸려있다. 내실로 들어가는 커튼을 열면 그 안에도 백색 천으로 덮은 고가구가 보인다. 오래된 유성기와 레코드판이 고가구 위에 놓여있다.
연극은 도입에 경찰복을 입은 작은 아들 빅터가 아버지가 남긴 집과 고가구들을 처분하기 위해 가구 중개인을 기다리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오래된 유성기에 레코드판을 올려놓고 틀자 미숙한 연주자의 서투른 연주음과 함께 대화를 하는 소리가 들려나와 폭소를 자아낸다. 빅터의 부인 에스더가 술 한 잔을 걸치고 등장하고 부부의 대화로 빅터는 50세, 부인은 45세임이 알려진다.
빅터는 가구들을 팔은 대금을 형 월터와 분배하기 위해 몇 번이고 월터가 운영하는 병원으로 연락을 해 보았으나 소식이 없다. 빅터와 월터 형제는 어렸을 적 둘 다 장래가 유망한 학생들이었으나, 아버지를 부양할 때가 되자 형 월터는 의학을 전공하러 집에서 떠나가고, 동생 빅터는 공대를 포기한 채 집에 남아 아버지를 부양하게 된다. 결국 월터는 의사로서 병원까지 짓고 성공하지만 월터는 과학자가 되려던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경찰에 지망해 경창노릇을 하게 되면서 형과의 연락이 단절 된다.
빅터는 가구중개업자인 90세를 바라보는 노신사 솔로몬의 방문을 받는다. 솔로몬과 빅터는 아주 싼 값인 일천 백 불에 가구를 팔기로 합의를 한다. 바로 그 때 형 월터가 불쑥 등장하면서 형제는 오랜만에 재회하는 것으로 설정된다. 재회의 감동도 잠시이고, 가족은 가구의 값에 대해 다시 이야기를 꺼낸다. 형 월터는 고가구보다 궁형(弓型) 하프의 가격만 해도 실제로는 전체 고가구 금액의 반인 500달러나 된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 소리에 솔로몬은 악기가격으로 50불을 더 쳐주기로 한다. 여하튼 자신의 전화를 일주일동안 무시하던 형이 갑작스레 나타나 행동하는 것에 대해 참을 수 없었던 빅터는 결국 먼저 형 월터에게 섭섭했던 심정을 털어놓는다.
옛날 형의 병원으로 가서 자신의 학비를 보태달라고 하자, 형이 거절했던 옛 일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생활비로 한 달에 5달러만을 보내주었던 일도....그러자 형 월터는 그간 숨겨놓았던 사실을 털어놓는다, 당시 4천 달러라는 거금이 아버지의 수중에 있었고, 빅터의 학비를 대 줄만큼의 여유가 충분한데도 아버지는 그러한 사실을 밝히지 않고, 아들의 효성 심을 이용해, 아들이 집안일에만 헌신하도록 만든 사연을 털어놓는다. 빅터는 그 이야기를 듣고 충격에 빠진다. 자신의 착한 심정을 착취하다시피 한 아버지나, 그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방관한 형이나, 똑같이 빅터를 희생시킨 장본인들이기에....그러나 이미 흘러간 옛 이야기인 것을 이제 와서 어찌하랴?
형은 새로 차린 사업체가 병원과 연관된 사업이기에 그럴듯한 일자리를 동생에게 제공하겠다는 제안을 한다. 현재 생활보다 훨씬 낫은 자리이지만, 동생은 그냥 경찰노릇을 하겠다며 사양을 한다. 결국 형 월터는 빅터 부부와 헤어져 떠나가 버리고, 빅터 부부도 가구를 처분했으니 떠나간다.
대단원은 고가구만 잔뜩 쌓인 거실에서, 고가구처럼 나이든 노신사 솔로몬이 혼자 남아, 낡은 유성기에 레코드판을 올려놓고 거기에서 들려나오는 서투른 연주자의 연주를 들으며 무대중앙 의자에 앉아 웃음을 터뜨리는 장면에서 연극은 끝이 난다.
양승재가 빅터, 이석우가 월터, 박해란이 에스더, 그리고 이동찬과 이 찬이 솔로몬으로 더블 캐스팅되어 출연해, 품격 있는 출중한 외모는 물론 성격창출 면에서나 연기력에서 탁월한 기량을 보여 관객으로부터 우레와 같은 갈채를 받는다.
예술감독 오종우, 기획 연출 차가현, 무대감독 박승구, 조연출 홍보 허경기, 섭회 박건배 민원기 송재경, 의상 유경내, 시파티 영상 허경기, 공연사진 곽민이, 소품 허세미 이루미, 진행 황지영 허재성 임성익 등 제작진과 기술진의 열정과 기량이 하나가 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