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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나는 왜 배우 이순재를 사랑하는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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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나는 왜 배우 이순재를 사랑하는가?(4)

심종대 기자 입력 2016/12/11 16:02

김태훈(배우. 세종대 교수)


지난호에 이어


-철저한 대본 분석
평소 배우로서의 창조작업도 그러하지만 선생님은 첫 대본의 리딩부터 학생들에게 텍스트의 ‘점’ 하나까지를 철저하게 분석하고 작가가 어떠한 의도로 점을 찍었는지를 파악하게 된다. 그것이 고전인 경우는 물론이고 현대작가의 작품인 경우에도 대본에 남아있는 작가의 숨결을 학생이 온몸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작품의 시대적, 지리적 배경과 작가의 예술세계, 그리고 작품의 탄생이유 까지를 선생님은 하나도 빠짐없이 학생들이 연구하게 한다. 그것이 초보의 배우가 역(타인)으로 들어가기 위한 첫걸음이자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것은 선생님이 평소 지니고 있는 지적 탐구심과 학구열에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선생님은 평소의 일상생활에서도 늘 책을 가까이 하시고 스쳐 지나가는 일상의 단면을 그냥 놓치지 않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왜 이렇게 되었나?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됐을까? 이 사회 현상은 왜 생겼을까? 이러한 식의 사고는 선생님의 몸에 베어있는 습관인 것이다.


본래 선생님의 학부 전공이 서울대 철학과였다는 것에서도 그 습관의 원인 있지 않을까? 어째든 선생님의 철저한 텍스트 분석 방법은 학생들의 역할창조과정 지도에 매우 중요한 지침이 되고 있다. 특히 요새처럼 인문학적 베이스가 부족하여 철학적 분석과 사고에 약한 젊은 배우들에게 선생님의 지도 방법은 지적 배우의 양성에 매우 유용한 방법이라 할 것이다.


이순재 교수가 세종대 학생들에게 연기 수업을 지도하고 있다./사진제공=배우 이순재 연기인생 60주년 기념사업회 추진위원회


- 화술의 전달력 지도
대사의 분석과 동시에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배우가 자신이 내뱉는 말의 ‘객석 전달력’이다. 비단 이것은 소리의 크기나 음색의 청아함으로만 해결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연기학적으로 볼 때, 선생님이 강조하는 것은 내뱉는 날숨의 풍부함이며 발음의 정확성이다. 또한 무엇보다 대사의 의미, 즉 서브텍스트의 정서적 선명성이다.


배우의 말은 주어진 상황에 처한 한 인물의 정서적 외침이자 상대인물과의 교류이기 때문이다. 각 대사마다 그리고 각 행동마다 이것이 선명하게 이루워 졌을 때, 배우의 대사는 작은 소리에도 객석에 명확하게 전달되는 것이며 이는 무대 뿐 아니라 방송이나 영화에서도 마찬가지 원리인 것이다. 물론 ‘연극제작실기’ 수업을 통해 배우의 음성훈련이나 소리의 정서적 전달 훈련을 많은 시간 할 애 할 수 없지만 선생님은 좋은 배우를 위한 학생들의 평소의 정기적 훈련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순재 선생님과 연극워크숍을 한 학생들이 공연 이후 눈에 띄게 화술의 전달력이 좋아진 경우를 필자는 여러번 목격하였다.


- 움직임의 절제, 제수추어의 효율적 활용
워크숍의 연기 지도를 하면서 선생님의 강조하는 것은 인물로서의 배우들이 이유없이 많은 제수추어와 비즈니스 갖는 것을 지양하는 것이다. ‘많음’과 ‘지나침’은 곧 ‘없음’과 ‘혼란스러음’과 같다는 것이 선생님의 지론이다. 따라서 가능한 배우의 움직임을 절제하고 꼭 필요한 행동을 이유와 동기에 의해 표현하는 것이 좋은 연기라는 것이 선생님의 가르침이다.


2008MBC드라마베토벤바이러스/사진제공=배우 이순재 연기인생 60주년 기념사업회 추진위원회

굳이 연기학적 이론을 거론하지 않아도 배우의 외적인 표현이 지나치거나 이유 없는 움직임이 많은 연기행위가 매력적인 인물창조가 될 수 없음은 당연한 일이다.


더욱이 정서적 에너지의 분출이 필요한 순간이거나 인물자체가 밀도를 지니는 성격일 경우 산만한 제스추어와 비즈니스는 올바른 역할창조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할 것이다. 주위가 산만하고 오랜 집중과 밀도의 시간을 못견뎌하는 현대의 초보 배우들에게 선생님의 가르침은 매우 유용한 연기훈련이 되고 있다. 어느 해인가 학생들과의 연극 워크숍에서 한 학생의 연기를 지켜보다가 선생님이 농담처럼 하신 말씀이 떠올라 여기에 적어본다. “저 손가락 00버려야 한다고, 왜 쓸데없이 손가락을 자꾸 올렸다 내렸다 하냐고, 번잡스럽기만 하고 지금 상황 표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데..”


지면의 한계로 선생님의 연기실기 교육 지침과 철학을 여기에 다 거론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고 또 다른 기회에 연기학적 측면으로 본격적인 학술적 연구가 될 것을 기대한다./다음호에 이어


김태훈/배우, 세종대교수/주요작품=에쿠우스, 고곤의선물, 비극의 일인자, 내면의악마, 갈매기, 나생문, 죄와벌 등/수상=2004년 제25회 서울연극제 연출상, 2009년 2인극 페스티벌 작품상, 2012년 33회 서울연극제 연기상, 2014년 러시아모스크바예술극장, 연기부분 공로상, 2014년 제15회 김동훈연극상, 2015 대한민국 신한국인상.문화예술부분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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