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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셰익스피어를 探하다]셰익스피어의 ‘극작상의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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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셰익스피어를 探하다]셰익스피어의 ‘극작상의 영향’에 대하여

심종대 기자 입력 2016/12/26 10:09

-지난회에 이어


[뉴스프리존=심종대 기자]인도에서 셰익스피어 희곡은 주로 주제, 구조, 문학적 취향의 면에서 인도의 희곡작가들과 문학작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특히 산스크리트 연극에 계시되지 않은 비극의 개념이 그들에게 유입되어 인식의 변화를 주었다. 그리고 산스크리트 연극이나 지방민속극과 공유할 수 있는 서사시적 연극의 모델이 필요했다. 그것이 바로 셰익스피어이다.


처음 이러한 비극적이고 서사적인 모델을 발전시킨 것은 벵골어 희곡이다. 이 모델은 라빈드라나드타골의 초기 벵골어 희곡과 힌디어로 쓰여진 드위젠드라 랄 로이의 희곡을 보면 잘 수용되어 있다. 그리고 후자의 영향은 20세기 초 자이산카르 프리사드의 힌디어 역사극에 나타나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적 모델은 현대적 지방어 희곡만 아니라 대중극이나 민속극에도 구체화 되어 있다. 파르시 극단의 대중극이 셰익스피어와 유럽의 대중극적 기반을 갖고 있음은 잘 알려져 있고 벵골지방의 자트라, 남인도의 약사가나와 카타칼리, 북인도의 나우탄키 등도현대화의 물결 속에서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셰익스피어의 연극적 기법을 차용하고 있다.


인도의 경우와 달리 일본에서 셰익스피어 희곡의 수용은 식민지화 과정을 통해 타의에 의해 행해진 것이 아니라 당시의 세계적 흐름에 따라 일본보다 서양에서 우수한 것을 배워서 이를 선용하자는 의도에서 이뤄졌다. 스보우치 소요는 이러한 의지의 대표자로서 셰익스피어의 번안, 번역, 연구에 몰두하는 한편, 이를 바탕으로 창작에도 큰 업적을 남기고 있다.


그는 셰익스피어를 활용해 가부키를 개혁하고 가부키의 새로운 레퍼토리를 개발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오동나무잎 하나>(1894), <마키노카타>(1896), <두견새 우는 외로운 성의 낙월>(1897) 등을 연이어 발표했다. 모두 셰익스피어를 의식하거나 모방해 창작한 희곡이다. 셰익스피어와 가부키를 혼합하려는 스보우치 소요의 의지는 후쿠다 쓰네아리, 기노시다 준지, 야마자키 마사가즈 등의 창작에 계승되어 있다. 이들은 하나 같이 셰익스피어를 누구보다 이해하고 연구한 공통점이 있다.


한국에서 셰익스피어 희곡의 모델은 일찍이 일본을 통해 지식인들과 희곡작가들에게 인식된 것으로 보인다. 유치진은 극예술연구회를 기반으로 전개한 사실주의 연극운동과 희곡성 성과가 일제의 간섭으로 더 이상 돌파구를 마련할 수 없다고 인식한 나머지 하나의 우회적 방법으로 셰익스피어의 낭만적 역사극에서 모델을 구해 희곡쓰기를 지속할 수 있었다.


그는 일본 유학시기부터 아일랜드의 싱과 오케이시만이 아니라 셰익스피어에도 능통해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모방한 <마의태자>(1941), <대추나무>(1942), <별>(1948) 등 역사극 3부작을 집필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해방 후 1950년대 선풍적으로 유행한 여성 국극이 셰익스피어를 모방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특히 엄춘앵 국극단의 <청실 홍실>(1952), <흑진주>(1961)는 이 극단의 초기 공연과 말기 공연을 대표하는 것으로 앞의 것은 <로미오와 줄리엣>, 뒤의 것은 <오셀로>를 번안하고 있다.


중국에 셰익스피어가 본격적으로 수용되던 1920년대와 1930년대에는 한국의 경우와 유사하게 고전주의, 낭만주의, 신낭만주의, 사실주의 등 유럽의 여러 예술적 사조가 일시에 유입돼 전한, 곽말약, 조우 등 현대 희곡작가들은 혼란한 가운데 일시에 이들 사조를 받아들여야 했다. 따라서 이들의 번역은 물론 창작극에 대한 영향이 매우 복합적으로 나타날 수 밖에 없었다.


전한은 일본 유학을 통해 실러의 고전주의, 셰익스피어의 낭만주의, 입센의 사실주의를 중점적으로 받아들였는데, 셰익스피어를 통해서는 먼저 비극의 개념을 받아들였다. 이러한 개념은 동아시아 연극의 전통에서 볼 수 없는 것으로 전한은 셰익스피어를 번역하고 연구하면서 익숙하게 될 수 있었다. 그의 초기 창작극에 속하는 <커피점의 하룻밤>(1920), <호랑이 잡던 밤>(1922), <호숫가의 비극>(1928), <남쪽으로 돌아가다>(1929) 등에서 실험하고 있다.


곽말약도 앞의 전한처럼 다양한 예술사조가 혼잡하게 유입하는 시기에 극작을 시작했다. 일본에서 유학 경험을 갖게 된 것도 전한과 유사하다. 그는 일본 유학시기에 셰익스피어, 괴테, 입센, 체호프는 물론 표현주의의 에른스트 톨러까지 섭렵하면서 연극적 시야를 확대해 나갔다. 셰익스피어 역사극의 비극적 형성화에 영향을 받아 11편 이상의 역사극을 창작했다.<끝>


심종대 기자, simjd1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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