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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원자력과 방폐물관리 정책 분권과 협치가 작동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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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원자력과 방폐물관리 정책 분권과 협치가 작동하는 의사결정과정이 필요하다

이윤정(한양대 수행인문학부 겸임교수) 기자 입력 2017/03/28 20:22
이윤정(한양대 수행인문학부 겸임교수)

이윤정(한양대 수행인문학부 겸임교수)


우리의 일상은 다양한 사회적, 자연적, 기술적 위험에 노출되어있다. 특히 현대사회가 해결해야 할 주요한 문제로 등장한 기술위험은 사실상 많은 경우 사회적, 자연적 위해의 발원이다. 정보통신, 교통, 에너지, 화학물질 등 개별 기술시스템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사회구조 내에서 특정 기술위험이 미치는 영향의 범위와 정도는 예측하기가 힘들다. 사회학자 울리히 벡(Ulrich Beck)은 이미 30년 전 현대사회를 위험사회라고 지칭하면서 현대사회가 직면한 위험은 기존의 합리성에 근거한 접근방식으로는 통제가 불가능하게 되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기존의 과학자 중심으로 양적측정 및 사후처방에 치중했던 기술위험 관리는 점차 기술위험을 다각도에서 총체적으로 평가하고 사전예방에 노력을 기울이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이에 많은 참여적 의사결정모델(시민배심원제, 공론조사, 합의회의, 시민포럼 등)이 기술위험 거버넌스 영역에서 실험되어 왔다. 피오리노(Fiorino 1990)는 기술위험 관련 의사결정에 시민이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들의 근거를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분석 한다: 민주주의적‘규범(Normative)’에 입각한 의사결정이 필요하다는 근거, 사회의 다양한 지식.가치.이해를 포함시켜서‘실제(Substantial)’로 더 나은 결정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근거, 그리고 결정된 정책에 대한 수용과 신뢰를 높일 수 있는‘도구(Instrumental)’로서 역할 한다는 근거이다.


기술위험 관련 의사결정에 있어서 시민의 적극적 참여를 제고하는 목소리가 커진 반면, 한편에서는 시민의 참여는 만병통치수단이 아니라며 참여의 수준은 전문적 지식을 지닌 시민이 과학자의 활동을 모니터링하고 보조하는 역할로 한정해야 한다는 반대 의견이 있다. 전통적으로 과학전문가와 정책관료의 몫이었던 기술위험 관련 의사결정에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이 참여하는 거버넌스 방식을 도입하기 위해 어떻게 역할분담이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견해는 논쟁적이다.


대선정국을 맞이하면서 각종 정책들이 움트고 있는 상황에서 기술위험관리 영역에서도 분권과 협치에 대한 진중한 고민이 필요하다. 지난 2월 9일 서울시민안전체험관에서 진행된 안전관련 정책포럼에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대통령과 청와대가 국가 재난의 컨트롤 타워가 될 것’이라며 국민의 안전을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표명하였다. 방안으로 제시된 여러 정책 중 원전정책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와 함께 탈원전 로드맵 구축이 주목을 받았다. 문전 대표 뿐 아니라 여러 대선 후보들은 원자력과 화력 발전에 기반을 둔 현재의 에너지 정책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앞서 2월 7일에는 서울행정법원이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원전인 경주 월성원전 1호기의 수명연장 결정을 취소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에 원자력안전위원회는 14일 판결에 불복해 항소한 상태이며 결과는 지켜볼 필요가 있지만 앞으로 다른 노후 원전들의 수명결정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원전 논의에서 빠뜨릴 수 없는 문제가 바로 사용후핵연료(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이다. 우리는 현재 각 원전에 처리하지 못한 1만 4000t에 이르는 사용후 핵연료를 쌓아두고 있다. 이는 각 원전 저장용량의 평균 70%에 달하는 양이다.


한편 중저준위방폐장이 있는 경주에서는 작년부터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지진으로 인해 주민들이 불안해하고 있다. 더욱이 자연재해로 인해 불거진 위험 뿐 만 아니라, 지난달 인구 150만의 대전광역시에 위치한 국책연구소인 한국원자력연구원의 불법적인 방폐물관리 사실이 밝혀지면서 한수원의 원전비리에 이어 다시 한 번 관리당국의 허술한 원전과 방폐물관리 태도에 대한 국민의 분노를 야기했다.


특히 올해 하반기부터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기술인 파이로 프로세싱 실험이 본격적으로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시작될 예정이어서 대전시민의 불안은 증대되고 있다. 대전시의회는 2월 27일 한국원자력연구원의 방사성폐기물 불법관리에 대한 규탄 성명서를 발표하였고, 유성구청장은 주민안전에 대한 지자체의 책임뿐 아니라 법적·제도적 권한을 요청하였다. 대전시는 자체적 대책의 일환으로 ‘시민안전검증단’을 구성하여 안전에 관한 의혹을 검증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관리당국의 일방적이고 폐쇄적인 원전 및 방폐물관리에서 드러나는 문제점 때문에 관련 정책결정에 시민사회의 적극적이고 직접적인 참여 요구가 커졌고 사회적 지지도 얻게 되었다. 그러나 역시 어떤 수준의 참여인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2013년 10월 우여곡절 끝에 출범한‘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는 안전한 사용후핵연료 관리방안을 마련하는 것을 목표로 1년 8개월간의 활동을 마치고 2015년 6월 29일 정부에 최종 권고안을 제출하였다. 범국민적 공론화과정으로 설계되어 다양한 구성원들과 의견수렴 방법이 동원되었다. 누가 어떤 역할로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할 것인가의 문제는 공론화과정 설계 초기단계부터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내내 여러 가지 쟁점으로 표출되었다.


공론화위원회가 애초 제시한 실행계획에서는 참여자그룹이 의견수렴자인 위원회와 의견수렴대상인‘국민, 전문가, 이해관계자, 원전소재지역주민, 시민사회계’로 구분되었다. 그러나 이후에 명시한 마스터플랜 운영계획안에는 논의 주체별로 참여자 그룹이 구분되어 ‘전문가 검토그룹, 국민, 원전지역주민, 원자력계, 시민사회계 그리고 통합-이해관계자 패널 토론회’로 바뀌었다. 공식적인 역할구분의 근거는 모호하다. 두 계획안에서 보이는 역할분담은 참여자 그룹의 이해관계를 고려한 것으로 분석된다. 원전소재지역 특별위원회를 의견수렴대상이 아니라 공론화위원회의 파트너 수준의 주요한 위치로 자리매김한 것과, 전문가 그룹 외 별도의 목소리로 원자력계를 추가 구성한 점, 그리고 시민환경단체의 위원회 불참은 이를 설명해 준다. 이것은 이전까지 축적된 갈등과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시행된 공론화가 사실상 풀리지 않는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변경된 안에 등장한‘원자력계’그룹이다. 원자력계는‘전문가 검토그룹’과 별도로 위원회에 공식 보고서를 제출한다. 전문가 검토그룹에는 이미 재료, 핵융합, 원전일반, 스마트원전, 원자력 수송, 안전 등에 관련된 전문가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더욱이 인문사회계와 별도로 과학기술계가 구분되어 간담회 및 토론회를 진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원자력계가 이처럼 또 다른 전문가 그룹으로 구별된 것은 이들이 가치중립적인 과학기술 지식을 소유한 전문가 집단으로 상정된 것이 아니고 별도의 목소리를 내야하는 이해관계 집단으로서 상정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일부에서 소위 ‘핵마피아’라고 비난하는 원자력계의 정치적 영향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편, 공론화 과정의 핵심 참여자라고 할 수 있는 국민은 관련이슈에 대해 특별한 이해관계가 없는 일반시민으로 구별되었다. 따라서 선입견, 편견, 그리고 전문지식이 없다고 전제되는 이들에게 기대하는 주된 역할은 옵션에 대한 가치의 판단이었다. 현실적으로 사용후핵연료에 대해 국민들이 잘 모르는 상태에서 이에 대한 의견을 묻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판단한 공론화위원회는 일단 이슈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는 것에 집중했다고 한다. 공론화에서 국민은 사용후핵연료에 대한 인지도와 지식의 수준을 높여야 하는 교육 대상이었던 것이다. 이는 사회구성원의 숙의적 참여를 통해 방폐물 관리방안을 모색한다는 공론화의 기본 취지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범국민적 공론화라는 거대한 의사결정 틀 속에서 다양한 가치와 지식, 이해관계가 관여하는 기술위험 거버넌스 장(場)에서는 필연적으로 복잡한 구조와 다양한 구성요소가 특징으로 드러난다. 결과적으로 참여자들의 역할구분은 고정적이지 않고 유동적이고 복합적이며, 외부에 의해 결정되기보다 내생적으로 이루어졌다. 또한 과학적 근거와 공동의 선이 바탕이 된 합리적 토론과 합의에 의해 결론이 만들어지기보다는 정치적 권력과 관계적 요소가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는 2016년 5월 24일에‘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안)’을 행정예고 하면서 이는 공론화위원회의 권고안을 토대로 다양한 사회 구성원으로부터 의견을 수렴한 정책임을 거듭 밝혔다. 이어 11월에는 고준위방폐장 건설 근거 법안인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시설 부지선정 절차 및 유치지역 지원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고 이는 현재 국회에서 계류상태이다. 지난 2월 28일에는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절차에 관한 법률 제정(안) 공청회를 개최할 계획이었으나 이도 이행되지 않았다.


유력 대선주자들이 탈핵에 공감을 표하고 있지만 그들이 의미하는 탈핵을 이루는 시기와 방법에는 온도 차가 있다. 지난 3월 3일 시민단체들이 모여 탈핵에너지 전환 로드맵에 관해 토론하는 자리가 있었다. 이 자리에서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질문은‘탈핵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원전소재지역 주민이 원하는 즉각적 탈핵에서부터, 유력대선주자가 말하는 원전설계수명에 따른 순차적 40년, 그리고 탈핵을 상상할 수 없는 그룹까지 각자의 입장 간 차이는 너무 크다. 원전정책에는 너무나 분명한 이해관계들 간의 대립이 존재한다.

이들 간의 이해의 조정은 현재 수준의 과학적 사실과 계산법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러한 정책결정 환경에서는 의사결정과정의 정당성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따라서 어떤 정책을 내놓을 것인가에 앞서 현실적인 쟁점들을 인정하고 이들을 실제로 반영할 수 있는 유연하고 포용적이며 자율적인 의사결정 시스템을 마련하려는 정책적 노력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출처=코리안컨센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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