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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새정부 외교통일 정책에 대한 제언..
오피니언

[칼럼]새정부 외교통일 정책에 대한 제언

심종대 기자 입력 2017/04/07 14:00
-현실주의적 냉정함을 유지하고 북한문제의 과잉국제화를 피해야하며, 외교안보에 대한 민주적 통제기제를 구축해야 한다.

이정철(숭실대 정치외교학과)

새 정부 출범이 다가오고 있다. 누가 되던 새 정부는 사면초가의 위기에 빠진 한국호를 끌고 가는 국난 극복의 리더십을 발휘하여야 한다. 그러나 중요한 권력 행사 기제가 포박당한 국가는 조정 위기를 극복하는 주체로 나서기 쉽지 않고, 다양한 경제 주체들은 누적된 적폐로 경쟁력을 상실해가고 있다. 이런 펀드멘탈의 한계를 그대로 반영하듯 외교 역시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고 있고 남북 간 비대칭 전력에서의 열패 구도는 분명해지고 있다. 미-중 모두에게 동시 구애받고 있다는 오만방자한 자기 체면은 한미 ‘동맹’을 파트너십으로 전락시켰고 중국으로부터는 사드 배치를 이유로 공공연한 모독의 대상이 되고 있다. 어려울 때일수록 초심으로 돌아가자 했건만, 도대체 초심이 무엇인지 조차 알기 어렵고 이에 대한 합의가 없는 상황이니 답답하기만 하다. 아래에서는 새 정부가 취해야 할 몇 가지 외교통일 정책의 초석에 대한 프레임을 제시하고자 한다.


# 지도자의 외교 철학


무엇보다도 외교통일정책은 현실주의적 냉정함에서 출발해야 한다. 대담한 비전(bold vision)과 적절한 정치 판단(judgement)이 꼭 스마트한 두뇌나 도덕 가치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후자가 관념이나 가치와 결합될 때 자칫 전자를 훼손시키기도 한다. 오바마 팀이나 오바마 그 자신의 뛰어난 지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외교정책은 미국 국내에서 비난의 대상이 되어왔다. 트럼프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모토나 힐러리의 “같이 더 강하게(Stronger together)”나 동일하게 오바마 외교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는 것이었다.


부시에 비해 뛰어난 지적 능력을 갖고 있고 독서광이라는 평가를 받는 오바마지만 그의 정책이 그렇게 성공적이지 못한 것은 그가 갖고 있던 가치나 미국 외교의 출발적 전제가 유권자들을 만족시키는 법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타고난 낙관주의(built-in optimism)와 선의지로 무장한 오바마의 외교 철학이 돌연 경멸과 분노로 전환하는 것은 가치와 도덕 외교의 뻔한 패턴임을 명심해야 한다. 그래서 새 정부의 리더십은 현실... 즉 한국의 국력이 정체되고 상대적으로 쇠락하고 있다는 냉엄한 현실에서 출발해야 한다.


지역 강대국이자 역내 수정주의 패권 국가의 반열에 오른 중국을 상대로 망루 외교 따위의 잔꾀로 대응할 만큼 상황이 한가하지 않다. 국내의 반일 정서나 한미일 협력이라는 미국의 요구에 지그재그식 대응으로 일삼다가 일본으로부터 적반하장격이지만 약속 불이행국가라는 불명예 딱지를 받고도 변명하나 하지 못하고 있는 기막힌 현실은 무엇인가. 한국이 사드를 열정적으로 원해서 배치했다는 평균적 미국인의 인식과 동맹의 요구에 못 이겨 도입한 것이니 한미동맹의 중핵적 중요성 때문에 수용해야 한다는 두 논리간의 격차야말로 파트너로 전락한 한미 동맹의 현 주소를 보여주고 있을 따름이다.


# 정보 실패


역시 정보는 중요하다. 자신에 대한 현실적 성찰도 중요하지만 외교 상대방에 대한 현실주의적 인식도 매우 중요하다. 특히 대북 정책에 관한한 그러한 인식과 정보 판단의 중요성은 비할 바 없다. 그런데 지난 10년간 소위 오바마 대통령의 ‘전략적 인내’ 정책에 조응한다고 제대로 된 정보 판단을 공론화화한 적이 없다. 전략적 인내란 주지하다시피 대중의 공포를 방지해 대적 협상에서 우위에 서기 위한 협상의 전술적 전제로 무시를 정책 옵션으로 선택하는 전략이었다. 문제는 이 정책이 장기화되면서 전문가나 정책 결정자 스스로 무시 전략의 환원론에 빠져 현실 직시 능력을 상실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다보니 실제 위기 경보는 많이 있으나 인지 능력이 패턴화되어 있고 이데올로기적 접근에 사로잡혀 있어 사실 분석에 근거한 경고 신호를 수신하지 못하고 축소라는 관성적 대응으로 일관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전략적 무시가 아니라 경멸과 무지만 남게 되었다.


북한이 공개한 북극성 2호 발사 동영상이 킬 체인과 같은 한국형 MD 체제의 효과성에 던진 의문부호와 충격은 작지 않다. 5차례의 핵실험에 더해 북한이 공개하고 있는 ICBM, SLBM 능력의 진전은 분초를 더해갈수록 위협적으로 되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북한이 확보한 비대칭 전력의 수준을 이제는 제대로 평가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그 정보를 공론화하지 않을 수 없다는 뜻이다.


# 북한문제의 과잉 국제화


한국 외교가 작아지고 있다는 데 이견이 없다. 중간국가 외교니 G20 의장국이니 핵 안보 정상회의 의장국이니 여러 가지 브랜드를 달아봤지만, 주변 환경의 상대적 변화에 주동적으로 대처하지 않고 남북 대결에만 헛심을 쏟은 후과는 가혹하다. 북한 문제나 북핵 문제의 국제화 옵션은 우리가 국제적 상승세를 타고 있을 때 내올 수 있는 옵션이다. 그러나 한국의 글로벌 지위가 상대적으로 정체되고 남북 관계 간 비대칭 전력의 열세가 우려되는 현 상황에서 북핵 문제의 국제화니 북한 문제의 국제화니 하는 논리는 우리를 더욱 왜소하게 만들 뿐이다. 이미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사건에서 이같은 방향 전환을 준비했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시그널을 무시하고 남북 숙적 관계에만 온 힘을 쏟은 결과는 가혹하다.


이제 북한 문제나 북핵 문제의 국내화 옵션을 다시 들 때가 되었다. 일부 영역에서 그것은 여전히 국제 문제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한반도 차원의 갈등 관리 옵션에서 다뤄질 영역이 병존하기 때문이다. 이젠 사건만 터지면 유엔이나 미국에 들고 가서 문제를 풀어달라고 응석부리는 한국 외교관들의 민낯을 보기조차 민망스럽다. 한반도 차원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남북관계의 평화적 관리나 갈등관리 노하우가 필요하다. 문제는 우리가 이 전통적 방법론에 익숙하지 않다는 점이다.


지구 촌 최고의 갈등과 분쟁 지역에 살면서 그 평화적 관리를 스스로 하는 법을 제대로 익히지 못하고 위임과 수탁에나 의지해 온 지난 역사가 후회스러운 것은 그래서이다.


# 비핵화 입/출구 구분론: 비핵국가와 핵국가의 과도적 공존


결국 북핵문제의 해법은 비핵화의 입구와 출구의 시간 차를 인정하고 그 기간 동안 과도적 공존을 대비하고 갈등 방지 거버너스를 수립하는 데 있다. 비핵화의 입구에서는 결국 군사연습과 핵/미사일실험의 상호 동결론에 동의함으로써, 출구 즉 비핵화의 최종 단계까지 과도적 공존을 선택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 과도적 기간 동안 북한이 핵국가라면 한국은 비핵국가라는 비대칭 상황이다. 일부 우파들이 한국이 핵무장국이 되거나 전술 핵을 재배치하자는 논리를 펴고 있지만, 이미 확장 억지력을 갖추고 있는 한미 동맹이 굳이 그런 우파적 옵션을 선택할 이유는 없다. 공포의 균형보다는 한국이 평화국가의 기치와 갈등관리 거버넌스를 통해 북한과의 평화적 협력의 길을 통해 비대칭 상황을 관리하는 거버넌스를 구성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 외교안보에 대한 민주적 통제와 사회협약


한편 새 정부 외교 정책의 또 다른 특성은 당파성을 제어하는 것이어야 한다. 외교통일국방 정책에 대한 초당 협력의 제도화, 시민사회 주도성, 이를 위한 민주적 통제는 지난 10년 밀실 외교를 단죄하기 위한 중요한 키워드이다.


사회적 묵약이었던 개성공단을 하루아침에 폐쇄시켜버린 저 독단을 통제하고 단죄하지 않는 한 공론과 국익이 조화될 방도는 없다. 따라서 외교안보국방의 비밀주의를 통제하기 위한 다양한 기제를 만드는 것이 급선무이다. 다음으로는 그것을 지금까지와 같이 정당 차원의 초당 협력 옵션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제도적 시민 통제의 옵션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결국 시민사회가 인적 제도적 네트워킹을 통해 외교안보에 대한 민주적 통제 기제를 구축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가 정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일환의 하나가 사회협약이다. 경제 조정 기제로서의 사회 협약을 외교안보영역에 적용하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나, 시민적 통제의 한 방도로서 사회 협약을 활용해보자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외교 안보는 대통령의 고유 아젠다라는 반론이 있고, 진보 진영이 집권한 이후 강력한 진보 정책의 드라이브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적절하지만, 지난 10년의 적폐를 청산하는데 시민적 통제와 참여 레짐의 방법적 구축은 더욱 시급한 과제이기도 하다. 결국 진보 정책에 대한 뒷다리 잡기보다는 시민 사회의 정권 레짐 참여 방식의 일환으로서 사회협약을 고민하고 디자인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출처=코리아컨센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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