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 정국을 보고 있노라면, 두 가지 경구가 떠오른다. 그 하나가 일찍이 19세기 영국의 외무대신과 수상을 역임했던 파머스턴 경(Lord Palmerston)의 경구, 즉 국제관계에서 “이제 영원한 적도 없고, 영원한 우방도 없으며, 오로지 영원한 국가이익이 있을 뿐이다”라는 말이다. 또 다른 하나는 중국의 사자성어인 ‘고래싸움에 새우 죽는다’(鯨戰蝦死)는 말이다. 우방인 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동맹 국가인 미국마저도 철저히 자국의 이익에 혈안이 되어 한국을 압박하고 있는 형국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한국이 탄핵정국으로 혼란과 고통을 겪고 있는 와중에 중국은 한국의 사드 배치에 대한 보복으로 롯데 그룹에 대한 제재뿐만 아니라 군사적 압력, 인적 왕래의 축소, 한류 콘텐츠 규제 등 전방위적 차원으로 한한령(限韓令) 혹은 반한(反韓) 정서를 중국 내에 유포시키고 있다. 1992년 수교 이래 한중 관계는 유사 이래 최고의 밀월관계를 향유해 왔지만 이번 사드 보복 사태를 보면서 그동안 양국의 신뢰 관계가 얼마나 취약한 것이었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2015년 미국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5년 9월 중국의 승전 70주년경축 행사에 참석했으며, 그해 말 한중 FTA마저 전격적으로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게다가 경제적 실리를 고려한 나머지 미국 주도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대신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AIIB)에 이미 2015년 3월 26일에 가입함으로써 미국의 기대를 저버리기도 했다. 이러한 박 대통령의 실용주의 친중 행보는 당시 중국 정가에서 큰 기대와 환영을 받았을뿐만 아니라 외교 정책에서도 한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 균형 자세를 견지할 것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이는 당시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심히 우려할 수준이었다. 그러나 2016년 북한이 1월 6일 제4차 핵실험을 하게 되자 박근혜 대통령이 1월 13일 사드 체계 도입을 처음으로 거론한 뒤, 북핵정국이 갑자기 사드 국면으로 뒤바뀌면서 한중 사이에 사드 논쟁이 본격화되었다. 중국 정부는 누차 한국 내 사드 배치가 중국의 안보에 치명적이므로 반대한다는 입장을 거듭 천명해온 터였다. 그동안 한중관계의 신뢰구축과 상호의존이 심화되어 왔고 양국의 전략적 중요성 때문에 중국의 요구를 무시하고 사드를 배치하기는 쉽지는 않을 것으로 중국지도부는 내심 기대한 측면도 없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기대를 무색하게 할 사건이 터진다.
6월말 방중한 황교안 당시 총리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을 만난 자리에서 “사드는 아무것도 결정한 바 없다”고 말했는데 불과 열흘도 지나지 않은 7월 8일 한미가 사드 한국 배치를 전격적으로 결정하자 중국 지도부는 뒤통수를 맞은 격이 되어버렸다. 한국 지도부의 어처구니없는 행보와 미숙한 대처는 결국 중국 당국의 불신과 분노를 초래했고, 결국 상상 이상의 중국의 보복 조치를 자초하게 된 것이다.
그동안 한중 관계는 수교 이래 다른 방면에서도 어느 정도 갈등 요인이 상존하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가령 중국의 동북공정에 따른 ‘고구려사’ 역사 인식 문제, 영토분쟁, 해양어업분쟁, 소극적인 중국의 대북제재에 대한 불만 등 다양한 방면에서 잠복된 갈등 요인들이 존재해왔지만 양국은 지혜롭게
‘구동존이’(救同存異)의 자세로 갈등을 해소하면서 협력을 극대화해왔다. 기실 사드 문제로 말미암아 한중 양국이 어느 정도 갈등 양상을 띠겠지만, 이 지경으로까지 관계가 냉각되리라고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고 보인다.
2016년 7월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남중국해 영토 분쟁 관련 심판에서 전적으로 중국의 핵심이익에 위배되는 불리한 결정이 나왔지만 중국은 관련국인 필리핀을 압박하기보다 오히려 유연하게 ‘매력공세’로 대처한 것과는 아주 대조적인 태도를 한국에 보이고 있는 것이다. 중국이 자국의 ‘핵심이익’을 침해했다는 점에서 일정 정도 한국에 대한 제재나 보복이 이해 안 가는 바는 아니지만, 한국이 처한 지정학적 열세와 한미관계의 피동적 위상 때문에 갈지(之)자 외교 행보를 보일 수 밖에 없음을 이해하면서 대국으로서 대처하지 못한 점이 다소 아쉬움으로 남는다.
물론 사드 문제가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북한의 도발, 미사일 공격을 방어하기 위한 불가피하고 필요한 조치라는 점에서 큰 이견이 없을 것이다. 게다가 ‘안보-자율성 교환 모델’(security-autonomy trade-off model)에 기반하고 있는 한미동맹의 성격상 한국의 자율성이 결여된 채 미국의 요구를 수용할 수 밖에 현실은 누구도 감히 부정하기 어렵다. 그 결과 ‘평화를 바란다면 전쟁에 대비하라’(si vis pacem, para bellum)는 극단적인 현실주의 성향(hardrealpolitik view)의 안보논리가 한국 내 사드의 실효성 논란을 압도해 버리는 형국에서 한국 정부에 뭘 더 기대할 것인가? 이런 한국의 안보현실을 중국 지도부도 어느 정도는 예상 했으리라 싶다. 동맹에 연루(entrapment)된 한국의 운명에서 심지어 전시작전지휘권 마저도 갖지 못한 채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전적으로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엄연한 한국의 불구의(? ) 자주국방의 허구성을 중국 당국이 이미 알 터인데 말이다. 사드도 이 범주에 구조적으로 포획되어 있다는 사실을 예상했을 텐데 말이다.
이번 사드 정국에서 한국은 그야말로 “고래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꼴”이 되어 버렸다. 사드는 유관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 보면, 결국 대북 견제용 보다는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제(MD) 체제의 일환으로 괌-오키나와-성주로 이어지는 한미일 삼각안보협력체제의 일환으로써 다분히 중국을 겨냥한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사드 배치가 한국 대선 전에 배치가 끝나면 동북아 지역의 안보 지형은 한층 더 위태롭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안보 극대화를 강조하는 구조현실주의 관점에서 볼 때, 동북아 지역의 신냉전구조(한미일-북중러 삼각체제)가 가시화될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다.
경색된 한중 관계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첫째, 양국은 감정적인 대처나 체면 외교 자세를 지양할 필요가 있다. 역사적으로나 지정학적, 지경학적으로 이미 한중 관계는 떼어놓을 수 없는 운명적 동반자 관계이므로 대국적(大局的)이고 미래지향적 관점에서 사드 문제에 대처할 필요가 있다.
둘째, 5월 대선을 앞두고 있는 한국은 정통성이 결여된 박근혜 정부의 외교정책전반에 대해 전면적인 재검토 작업에 들어갔고, 차기 대선에서 특히 사드, 일본 위안부 문제 등이 다시금 재론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맥락에서 중국 정부는 인내심을 갖고 한국의 정권 교체, 즉 차기 개혁정부의 외교정책의 노선 전환을 기대해 볼 필요가 있다. 따라서 중국정부는 한국에 대한 사드 보복이나 제재는 이제 감축 정리 수순을 밟아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인다.
셋째, 북한의 대량살상무기(핵과 미사일) 개발과 일련의 도발을 억지하고 한반도 안정과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 6자회담 재개가 필요하다고 본다. 트럼프 신정부와 시진핑 정부는 북한의 핵보유 사실을 기정사실화하고 문제 해결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 ‘항시적 피포위 심리’(permanentsiege mentality)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북한의 경우 북미 대결구도, 즉 정전체제에서 벗어 날 수 있는 방안이 반드시 마련되어야 핵동결이나 비핵화가 가능할 것이다. 2016년초 북한의 제4차 핵실험 직후 미중 간의 협상에서 중국 측이 내놓은 방안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판단된다.
즉 중국이 유엔의 대북 제재에 적극 동참하는 동시에 장기적으로 한반도 비핵화와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을 병진하자는 제안은 여전히 의미있고 고려할 만한 대안이라고 본다. 북핵 문제 해결의 알파와 오메가는 결국 북미관계의 정상화에서 있고, 그 첫 단추는 남북관계의 개선, 즉 제 2차 햇볕정책의 재가동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조건 없이 차기 정부에서 남북 관계 개선의 물꼬를 트이는 노력이 절실히 요청된다./출처=코리아컨센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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