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이상윤 기자]73년 만에 세계 최초로 과거 일본이 한국인을 위안부로 삼았던 사실을 증명할 영상이 공개됐다. 그동안 한국인 위안부에 대한 증언, 문서, 사진 등이 공개된 적은 있지만 촬영된 영상이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5일 서울시와 서울대 인권센터 정진성 교수팀은 "지난 1944년 아시아·태평양 전쟁 당시 미·중 연합군이 점령한 중국 운남성 송산(松山)에 포로로 잡혀 있던 위안부 7명을 촬영한 18초짜리 흑백 영상을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발굴했다”고 밝혔다.
이 영상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2관에 70여년 동안 보관된 것으로 서울시와 서울대 인권센터가 2년 넘게 조사하고, 이 영상의 존재에 대한 단서를 찾은 후 2년 전부터 기발굴된 문서와 사진 등을 분석해 관련 정보를 추적했다.이어 미 관리청 소장 필름 수백 통을 일일이 확인한 끝에 발굴된 것이다.
이 영상은 미군 164통신대 사진대 소속 에드워드 페이 병장이 1944년 9월 8일 이후 촬영한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 중학교 역사교과서와 고교 한국사 교과서에도 수록돼어 있는 사진속의 인물들이 담겨져 있는 걸로 알려졌다.
영상속에는 중국 송산에서 포로로 잡힌 여성 7명의 모습이 담겨 있고, 또한 미·중 연합군 산하 제8군사령부 참모장교인 신카이 대위(중국군 장교)로 추정되는 남성은 위안부 1명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나머지 여성들은 두려운 표정으로 군인들과 눈조차 마주치지 않고 침묵하고 있다.
공개된 영상 속 위안부 피해자 2명은 1990년대 중반에 공개된 사진 속 2명의 얼굴과 옷차림이 같았다.
자료 사진은 그동안 한국인 위안부의 참상을 증명하는 자료로 활용됐다. 지난 2000년 12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일본군 성노예전범 여성국제법정’ 준비과정에서 고 박영심 할머니(2006년 별세)가 사진 속 만삭의 여성이 자신이라고 밝혀 국제사회의 조명을 받기도 했다.
당시 작성된 쿤밍 포로 심문 보고서를 보면 포로수용소에는 조선인 25명(여성 23명, 남성 2명)이 구속됐는데 조선인 가운데 10명은 송산 지역의 위안소에서 체포된 위안부였다. 이 때 작성한 명부에는 한국 이름과 당시 나이, 고향도 함께 기술됐다.
엄규숙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장은 “이번 발굴 조사는 ‘국내외 일본군 ‘위안부’ 관련 사료를 수집하고 기록물로 관리해 역사적 자료로 활용하기 위한 서울시의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 관리사업’의 일환”이라며 “오는 9월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도록 공모전과 학술대회 등 다양한 지원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이번 연구조사를 주도한 강 교수는 “영상 속 인물들을 2000년 고 박영심 할머니가 자신이라고 밝혔던 사진과 영상 속 인물들의 얼굴과 옷차림이 동일하다”며 “영상 속 한국인 위안부가 정확히 누구인지는 특정할 수 없지만 적어도 이들은 미·중 연합군이 이후 포로 심문과정에서 생산한 ‘조선인 위안부 명부’에 있는 여성들”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 1991년 김학순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최초 증언한 이후 239명의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 위주로 연구가 이뤄졌지만 이제 생존 피해자가 38명으로 줄어든 상황에서 어느 때보다 과거 기록물 조사·발굴이 중요하다는 게 시와 연구팀의 입장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이후 위안부 연구에 대한 중앙정부의 지원이 갑자기 끊긴 상태에서 서울시라도 지원하겠다는 마음으로 서울대 연구팀과 위안부 기록물 관리사업을 추진한 끝에 결실을 나타냈다”며 “불행한 역사도 기록하고 기억해야 다시는 반복하지 않는 만큼 앞으로도 모든 역량과 자원을 집중해 역사를 기억하고 바로 세우는데 앞장서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서울시는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이후 당시 박근혜정부가 위안부 연구 관련 예산 지원을 끊자 서울대 인권센터를 지원해 발굴 사업을 지원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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