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 김선영 기자] 자유한국당이 본회의 안건 199건 모두에 대해 29일 필리버스터(무제한 발언으로 의사진행 방해)를 신청하면서 '유치원 3법' 등 오후에 예정된 본회의 개회가 모두 무산됐다.
자한당이 필리버스터라는 초강수를 두자, 참지못한 더불어민주당은 분통을 터뜨리고 급기야는 규탄대회로 맞대응을 했다.
오후 2시로 예정됐던 본회의 개회 직전 자한당이 199건에 모두 필리버스터를 신청하면서 국면이 급격히 얼어붙었다. 오후 한 차례 문희상 국회의장과 여야 3당 원내대표가 회동했지만 아무런 접점도 찾지 못한 채 결렬됐다.
긴급 최고위원회의까지 열며 본회의 참석을 고심했던 민주당은 합의가 결렬된 채 이인영 원내대표가 의장실을 나서자, 여당은 '입법 갑질'이라며 곧바로 국회 본청 본회의장 앞 계단에서 '민생파괴! 국회파괴! 자유한국당 규탄대회'를 열고 자한당을 맹포화했다.
나경원 자한당 원내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선거법 개정안과 사법개혁 법안까지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법안의 표결 시도를 막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독재 악법 통과시키려는 정부와 여당의 입법 쿠데타를 한국당이 막지 않는다면 누가 막겠느냐"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안 통과를 촉구했던 부모들은 '정쟁에 아이들을 이용하려는 것이냐'며 자한당을 향해 항의하며 분통을 터뜨렸다.
자한당의 처사에 격분한 민주당 의원들은 '자유한국당 규탄한다'고 적힌 피켓을 들고 구호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본회의 통과만을 기다리던 '유치원3법'과 '민식이법', '데이터3법' 등 중점법안들은 올스톱됐다. 민주당과 자한당은 서로 격앙된 상태에서 응수 중이다.
분을 삭이지 못한 이해찬 대표는 마이크를 잡고 격앙된 목소리로 "30년 정치를 했는데 이런 꼴은 처음본다"며 "본회의에서 처리할 200여개 안건 모두에 필리버스터를 하겠다는 이게 상식적으로 말이 된단 말이냐"고 비판했다.
이어 "오늘 처리될 법안은 민생법안이 대부분으로 여야가 합의했고 법사위까지 다 통과했는데 이걸 필리버스터로 막겠다는 건 국회를 마비시키려는 의도"라며 "얼마 남지 않은 20대 국회에서 아무것도 못 하게 하려는 것이냐며 상식적인 정치를 하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선거법과 검찰개혁법을 반드시 이번 국회에 통과시켜 나라를 바로잡겠다"며 "이제 우리가 참을만큼 참았고 더이상 참지 않는다"고 일침을 가했다.
'유치원3법' 발의를 최초로 주도한 박용진 의원은 이날 본회의 통과를 기대했던 '유치원3법'이 다시 자한당에 발목잡히자 "맥이 빠진다"고 울분에 찬 심경을 토로했다.
박 의원은 "(유치원 원장들이) 아이들을 위해 써야할 국민혈세로 명품백을 사고 성인용품을 사고 막걸리를 사서 마시면 처벌할 수 있는 상식적인 법이 만들어질 것이라 국민들께 설명하고 왔는데 330일이 지나고 일주일이 더 지났는데도 오늘 이러는 것을 보고 한국당에 질렸다"며 "저게 무슨 정당이냐"고 울먹거렸다.
그는 감정에 북받쳐 떨리는 목소리로 "나경원 원내대표는 미국에 가선 나라를 팔아먹고 국회로 와선 한유총(한국유치원총연합회)에 애들을 팔아먹고 있는 것 아니냐. 진짜 나쁜 사람이다"라고 질책했다.
이인영 원내대표도 "민생법안 필리버스터는 듣도보도 못한 일로 민생도 염치도 무시한 정치적 폭거"라며 "우리는 한국당의 이런 시도를 정치포기 선언이라고 간주한다. 한국당은 혹독한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분개했다.
그러면서 "한국당은 오늘 스스로 무덤을 팠다"며 "유치원 3법이 어떻게 필리버스터 대상이고, '민식이법'이 어떻게 필리버스터 대상이며, 데이터3법이 어떻게 필리버스터 대상일 수 있느냐"고 따져 물었다.
덧붙여 "도대체 어떻게 이런 법안들이 정쟁의 대상이 될 수 있느냐"라며 "역사상 이런 근본 없는 정당은 없었다"며 "한국당은 완전히 염치를 포기했고 명백히 민생을 폐기했다"고 강한 분노를 표시했다.
'민식이법'을 대표발의한 강훈식 의원도 끝내 눈물을 보였다. '민식이법'은 이날 오후 법사위를 간신히 통과했는데 본회의에 발목이 잡혔다. 강 의원은 "지난 9월11일 한 중학교 앞에서 아이가 죽었다"며 "엄마의 소원은 이런 아이가 다시는 없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고 그래서 법을 발의했다"고 했다.
민식군의 부모도 이날 국회에 대기하며 애타게 법안 통과를 기다렸기 때문에 강 의원은 고개를 더욱 떨궜다. 그는 "아이들의 안전을 만드는 법안인데 국회를 멈추고 이것으로 필리버스터를 해서 얻고자 하는 표가 무엇인지 모르겠다"며 "선거법 때문에 통과를 시키지 않겠다는 것에 대해 누가 이해할 수 있나"라고 분개했다.
김해영 의원은 "한국당의 필리버스터로 청년기본법의 통과도 무산될 위기"라며 "앞으로 한국당은 청년이란 단어를 꺼내지 말라. 청년들의 심판이 있을 것이다"라고 성토했다.
이어 제윤경 의원이 규탄성명서를 낭독했다. 민주당은 성명서를 통해 "한국당은 국민의 분노를 온몸으로 감당해야 할 것"이라며 "국민을 배신한 정치는 절대 성공할 수 없음을 엄중 경고한다. 명분없는 필리버스터를 즉각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박찬대 원내대변인의 진행에 따라 "무얼 위해 정치하나 자유한국당 각성하라", "무얼 위해 법 만드나 자유한국당 각성하라", "무얼 위해 예산하나 자유한국당 각성하라"의 구호를 외친 뒤 의총장으로 돌아갔다.
민주당은 규탄대회 이후 의원총회를 열어 의견 수렴에 나선 가운데 내일 주말에도 중진의원과 각 상임위원장, 원내대표단 연석회의를 열며 해법 모색에 나선다.
그러나 공수처법과 비례대표제 법안을 저지하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신청한 자한당은 피해자들이 눈물로 호소한 모든 민생법안까지 막아버리고도 다수 세력의 불법 횡포에 맞서 소수 세력에게 부여된 합법적이고도 평화적인 저지 수단이라고 맞받았다.
정의당 "한국당 필리버스터, 정신나간 짓.. 차라리 총사퇴하라"
정의당도 이날 자한당이 본회의에 상정되는 모든 안건에 필리버스터를 신청한 것과 관련해 "정신나간 짓"이라며 "손익계산도 제대로 못할 것이라면 차라리 의원직을 총사퇴하라"고 비판했다.
여영국 정의당 원내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에서 "정치개혁, 사법개혁 법안은 물론이고 본인들이 처리를 약속한 비쟁점 법안인 '유치원 3법'과 '민식이법'과 '해인이법' 등 어린이 생명 안전법, 또 청년 기본법, 과거사법, 소상공인 보호법안까지 막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민심이 반영되는 선거제가 되면 밥그릇이 줄어드니 반대하고, 공수가 설치되면 비리 집단인 자신들이 제1수사대상이 되니 반대한다고 치자"며 "그런데 피해자와 그 가족이 피눈물을 흘리며 호소한 어린이 생명 안전법과 과거사법은 안중에도 없고, 소상공인 보호는 말로만 외쳤다는 고백인가"라고 지적했다.
또 "청년들 모아놓고 꼰대질은 하면서도 청년을 지원하는 법안은 내팽개치고 있다"며 "여기에 전 국민의 공분을 산 사립유치원 비리를 막는 법안을 저지하겠다는 건 자당에 나경원 등 사학재단 관계자가 많기 때문인가"라고 비꼬았다.
아울러 "아니면 사립유치원으로부터 수천만원의 자문료를 받은 황교안 고문변호사 때문인가"라고 물었다. 이는 황교안 대표가 2012년 자문료를 받으며 한유총 고문변호사로 활동했다는 사실이 전날 알려진 점을 지적한 것이다.
여 원내대변인은 "한국당은 분명히 명심하기 바란다. 사립유치원의 고문변호사 황교안과 그가 대표하는 한국당 자체가 대한민국 국민에게 고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어린이 생명 안전법, 과거사법, 청년기본법, 소상공인보호법과 유치원 3법 처리 거부로 국민 분노의 정점을 찍겠다는 말인가"라며 "손익계산도 제대로 못할 것이라면 차라리 의원직을 총사퇴하라"고 촉구했다.
이어 "그게 아니라면 당장 필리버스터 결정을 철회하라. 20대 국회 마지막 정기국회이자, 한국당이 다음 총선의 룰 결정에 참여할 마지막 기회"라며 "집나간 정신 바로 잡고 생각이라는 걸 좀 하기 바란다"고 일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