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통신넷= 공동 취재] 기자는 한때 40일 금식기도를 한 어느 신실한 목사님의 영향으로 교회라는 건물에 발을 들인 나는 이후 일반 대학을 다니다가 신학을 공부하였다. 교회 안의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종교의 언어를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여기서 말하는 종교의 언어는 성서에 나온 말이라기보다 교회라는 건물 안에서 통용되는 표현을 말한다. 예를 들자면 "목자는 기름부음 받은 존재이므로 항상 존중하고 순종해야 한다"라는 식의 구절들이 있겠다.
뜻밖의 계기로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교회 내에서 종교 지도자들이 형제들과 자매들의 만남을 장려하는 것이 귀에 걸렸던 것이다. 당시 나는 아마존의 부족을 떠올렸던 것 같다. 권위적이고 절대적인 부족추장을 필두로 한정된 지역 내에서 음식과 몸을 전부 나누는 상상 속 부족의 모습이 생각났다. 그 모습이 종교 공동체의 모습과 묘하게 겹쳐졌다.
짝짓기에 한창 관심이 많은 청춘들에게야 별 거리낌 없이 받아들여질 법한 말이지만 불행히도 나는 하필 그 무렵 여자 보기를 돌같이 하기로 작정했던 터였다.
20년 넘은 개신교 신자인 나, 교회를 불신하게 됐다
한 걸음 물러서서 교회라는 건물을 바라보았다. 건물에 대한 불신은 '내가 무엇을 믿고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졌고 이후 무신론에 대한 책들을 몇 권 뒤적이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성경은 믿지만 교회라는 건물은 믿지 않게 되었다.
내가 믿는 신의 이름이 까맣게 얼룩지는 것이 과연 교회라는 건물의 잘못인지 아니면 성서에 나오는 핍박인지 궁금했다. 이러한 연유로 나는 '개독'이라는 단어의 출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말 많고 탈 많은 개신교에서 가르치는 기본 교리는 의외로 굉장히 단순하다. 비신자에게 전도를 시도할 때 사용하는 색색의 구슬 팔찌도 이 다이어그램과 다르지 않다. 영화 <인터스텔라>가 인기몰이를 했었다. 영화에는 서로 다른 차원의 세상이 나온다. 두 세상은 연결되어 있지만 결코 같을 수 없는 세상이다.
인간계와 신계가 존재한다. 이 둘도 완전히 다른 세계다. 그리고 거기에는 예수라는 교집합이 있다. 성서에 따르면 인간계와 신계의 합치를 유일하게 이룬 사람이 예수다. 그래서 주일학교에서는 이렇게 가르친다.
"신계에 있던 신이 인간계에 내려와 신계와 인간계를 이어주는 다리, 즉 교집합이 되었다. 인간들은 이 교집합의 존재를 믿어야 신계로의 진입이 가능하다."
"하나님의 은혜가 피해자에게 사과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되어버렸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이 먹이신다."
교회가 누구의 것이고,. 누구를 위하여 모이는 곳인가?
오전 9시 지난 13일 구리 두레교회 기사가 나간 후에 기자가 직접 교회를 찾아갔다.
기자가 도착한 시간은 오전 9시, 서로 만난 교인들은 반가워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였고 기사가 나간 그대로의 모습 그 자체였다. 나눠야 할 눈 인사 보다는 오늘은 누가 희생을 당하거나, 큰 일이라도 벌어져 빨리 끝낼까하는 적게심만 가득차 보였다.
때마침, 경찰차량은 늘 있어 왔던 것처럼 싸움의 끝이 어디까지 일까라는 기대에 부흥하듯 대기하고 있었고, 교회 내부에서는 양보가 없었다. 두레교회측 교인들은 (두레교회바로세우기협의회)두바협측 교인들을 막기 위해 교회를 봉쇄 중이었고, 중앙 출입구를 제외한 다른 출입구는 자물쇠가 굳게 채워져 있었다.
두레교회 사태가 보도된 이후, 외래인에 대한 감시가 심한 탓인지 기자가 교회에 도착한 이후 두레교회측 교인들에게 둘러 쌓이는 일도 있었다.
두바협측 교인들은 두레교회측 1부 예배가 끝나는 10시부터 11시 30분까지 예배를 진행하기로 되어있었다.
10시 교회로 진입하려는 두바협측 교인들과 이를 막는 9시 예배를 끝낸 두레교회측 교인들의 충돌이 발생하였다.
1부 예배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시간인 10시에 두레교회측 다수의 교인들은 예배당에 남아있었다.
두레교회 교인들은 두바협측 예배를 막는 상황이었고, 마이크를 빼앗고 강단에 올라서지 못하도록 막았다.
두바협측은 개인 마이크를 준비해서 예배를 진행하였으나 예배를 방해하듯 두레교회측은 성가대를 중심으로 계속 찬송가를 불렀다.
성가대의 큰 마이크 소리 때문에 두바협측의 예배는 진행할 수가 없었다.
억울함을 호소하듯 몇몇 두바협측 교인들이 항의를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찬송소리는 더욱 높았으며 찬송가가 끝나는 10초간의 간격 사이로 기도를 하였으며 몇몇 분들은 양측의 안탁까움에 '아~멘'으로 답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10여 년 전 일기에 적어놓았던, 서태지 자퇴서의 도입부를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세상을 알기엔 아직 어린 나이
세상에 의지하기엔 이미 커버린 나는
이 혼돈 속의 정리를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