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지만, 전 아무도 저를 기억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대한민국 기초과학연구의 대표 성과로 인정받고 있는 ‘이광자 표지자’의 권위자로 이학박사이자 진단과학의 선구자로 불리고 있는 대진대학교 조봉래 석좌교수(72세)의 말이다.
겸손을 지나쳐 조금은 허무하게 들릴 수 있는 짧은 이 한마디에서, 조봉래 교수가 지난 세월 후배와 제자들에게 존경과 칭송을 받으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초과학연구자로서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와 그의 욕심 없는 인생철학이 잠시 엿보였다.
조봉래 교수는 서울대 문리과대학 화학과를 졸업하고 ROTC 육군 중위로 전역 후, 한국원자력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미국으로 건너가 텍사스 테크(Texas Tech University) 대학원에서 이학박사를 취득했다.
이후 미국 텍사스와 벨기에, 프랑스 등의 유명대학 초빙교수와 고려대학교 이과대학 교수 및 현대기아 석좌교수, 특훈연구교수, 의과대학 연구교수 등을 역임하고 지난 2015년부터 대진대 석좌교수로 활동 중에 있다.
이 외에도 현재까지 미국화학회 회원, 대한화학회 종신회원, 한국과학기술 한림원 종신회원, Chem Asian Journal 국제자문위원 직을 맡아 학회활동을 하고 있으며, 대한화학회 학술상(2003년), 세계적 연구영역 개척자상(2007년), 삼일문화상(2008년), 우수학위논문 지도교수 대상(2013년), 옥조근정훈장(2014년), 유기합성화학회 학술대상(2015년), 수당상(2016년) 등 수많은 수상경력과 함께 2019년에는 ‘이광자 표지자‘에 관한 연구가 대한민국 기초연구 대표 성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광자 표지자’는 장파장의 빛을 이용해 장기 내부에 자라는 암 세포를 진단할 수 있으며, 레이저의 파워를 조절하면 발견한 암을 태워서 제거할 수 있으므로 진단과 치료를 동시에 병행할 수 있는 최첨단 진단과학 연구의 대표 연구이자 결정체로 인정받고 있다.
이처럼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던 조 교수가 대진대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도 참으로 드라마틱하다. 조봉래 교수가 고려대 특훈연구교수 재직 시절, 제자였던 대진대 한만소 교수(당시 학장)의 적극적 추천으로 대진대에서 제자와 함께 노교수의 마지막 연구 투혼을 불사르게 된 것이다.
조봉래 교수는 올해 72세라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아직까지도 매일 대진대 뒤에 위치한 왕방산 산책로 4Km를 걸으며 왕성한 체력을 자랑하고 있다.
조 교수는 대진대에 출근한 이후 “학교 환경과 시설도 매우 훌륭하고, 일단 학교 내 아는 분이 많지 않아서인지 인사를 덜 받아 마음이 편해서 그런지 건강이 매우 좋아졌다”는 익살스런 조크와 함께 환한 웃음을 보였다.
조 교수는 “현재 대한민국 대학의 현실이 '연구중심'이 아닌 '교육중심'이 대부분"이라며 “교육중심대학은 사회와의 연장선상 위에서 지역사회와의 교류가 매우 중요한데 그런 점에서 교육중심대학인 대진대는 그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해나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한 “학생교육 환경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강의실의 규모가 유명대학에 비해 정갈하고 아담해 학생들의 밀집도와 집중도가 높아 교육 효과가 높으며, 특히 연구실 환경과 학생들에 대한 서비스가 매우 잘 되어 있어 만족감이 높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대진대에 바라는 점 또한 아주 소박했다. 조 교수는 “과거 미국 워싱턴주를 여행할 당시 어느 관광지에 걸린 ‘발자국만 남기고 가세요’란 글귀가 쉽게 잊혀 지지 않는다”면서 “아무도 나를 기억해 주지 않을지라도 ‘이광자 표지자’를 기초로 한 암 연구와 관련된 마지막 연구를 대진대에서 차분히 마무리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한편 최근 중국 우한에서 발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의 펜데믹 현상으로 인해 대한민국을 비롯한 전 세계가 코로나19 바이러스 치료백신 및 진단키트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가운데, 조 교수의 ‘이광자 표지자’ 연구가 암을 비롯한 많은 질병의 진단과 치료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평가되면서 세간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