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뉴스프리존] 이기종 기자= 기초과학연구원(IBS)은 복잡계 자기조립 연구단 김기문 단장(POSTECH 화학과 교수) 연구팀이 기존 통념과 달리 소리가 물리현상뿐만 아니라 화학반응까지 조절할 수 있음을 규명했다고 11일 밝혔다.
지난 1831년 마이클 패러데이가 수직 진동하는 접시의 물이 복잡한 패턴을 만드는 현상을 첫 보고한 이후 물리학자들은 파장에 의한 물 움직임을 연구해왔다.
반면 물의 움직임이 화학반응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를 연구한 화학자들은 드물었다.
전자레인지의 마이크로파나 초음파에 비해 파장이 긴 소리는 에너지가 작아 분자의 변화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보편적인 견해여서 화학연구의 대상으로 잘 고려되지 않았다.
이번 연구진은 이러한 제한점을 해결하기 위해 자연과 같은 비평형상태에서 소리를 이용해 화학반응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연구과정을 보면 물의 움직임에만 주목한 기존 연구와 달리 물의 움직임에 의한 공기의 용해도 변화에 관심을 두었다.
소리로 물결의 패턴을 제어하여 용해도를 조절한다면 한 용액 내에서 위치에 따라 서로 다른 화학적 환경을 조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이어 이를 시각화할 수 있는 실험을 설계했다.
연구진은 스피커 위에 페트리 접시를 올려둔 뒤 소리가 접시 안의 물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관찰했다.
소리가 만들어낸 미세한 상하 진동으로 인해 접시 안에는 동심원 모양의 물결이 만들어졌다.
동심원 사이의 간격은 주파수가 높아질수록 좁아졌으며 그릇의 형태에 따라 다른 패턴을 나타냈다.
이로 인해 소리의 주파수와 그릇의 형태에 따라 나타나는 물결의 패턴을 조절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이후 지시약을 이용해 소리가 만들어낸 물결이 화학반응에도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했다.
먼저 파란색이지만 산소와 반응하면 무색으로 바뀌는 염료(바이올로젠 라디칼)를 접시에 담은 뒤 스피커 위에 얹은 후 소리를 재생했다.
물결에서 움직이지 않는 마디 부분은 파란색을 유지하는 반면 주기적인 상하운동을 하는 마루와 골(가장 높은 부분과 낮은 부분)은 산소와 반응하며 무색으로 바뀌었다.
이는 공기와 접촉이 활발해 산소가 더 많이 용해되기 때문이다.
또 산성도(pH)에 따라 색이 변하는 지시약인 BTB 용액을 이용해 동일한 실험을 진행했다.
BTB 용액은 염기성에서는 파란색, 중성에서 녹색, 산성에서 노란색을 띠는 지시약으로 접시에 담긴 파란색 BTB 용액을 스피커 위에 놓고 소리를 들려주며 이산화탄소에 노출시켰다.
이 연구결과에 의하면 이산화탄소가 물에 녹으면 용액이 산성으로 변하는데 소리를 들려주자 용액 속에 파란색, 녹색, 노란색이 구획별로 나뉘어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물결로 인해 기체의 용해도가 부분적으로 달라지며 산성, 중성, 염기성이 공존하는 용액이 만들어진 것이다.
황일하 연구위원은 “용액의 산성도는 전체적으로 동일하다는 상식을 뒤엎은 흥미로운 결과”라며 “소리로 산화․환원 또는 산․염기 반응을 일으켜 물리적 가림막 없이도 용액 내 화학적 환경을 서로 다르게 구획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이 연구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케미스트리(Nature Chemistry, IF 21.687)에 8월 11일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