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통신넷=박정익기자]정부는 2015년 4월 30일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수정안을 발표했다.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에 대한 비난 여론이 빗발치자 정부가 한 달 만에 내놓은 수정안에는 '수정'이 없었다.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의 본래 취지와 목적은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진상규명을 위해 구성된다. 하지만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는 공무원에게 진상규명 하는 권한을 주고 조사 결과를 검토하는 수준으로 제한하는 특조위의 독립성에 대한 우려가 더 크다. 이것은 마치 '피해를 준 가해자가 조사를 하고, 피해를 받은 피해자는 가해자의 조사 결과를 검토만 할 수밖에 없는 것과 같다.
유가족의 입장에서 이런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수정안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현장에서 만났던 한 유가족은 "내 새끼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지 못한다. 차라리 눈 앞에서 죽었다면 이렇게까지 하지도 않는다. 내 새끼가 어떻게 죽었는지, 왜 죽었는지 당해보지 않는 사람은 모른다. 정부에서 발표한 보상금? 그런 돈 필요없다. 우리가 정부한테 보상금 달라고 구걸했나? 나는 내 새끼가 왜 그렇게 됐는지 알고 싶을 뿐인데"라며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4월 16일 세월호 1주기 때 중남미 순방을 떠났던 박근혜 대통령이 27일 귀국했다. 25일 광화문광장에서 평화적으로 열렸던 세월호 추모문화제에서 전명선 세월호유가족협의회 위원장은 "안전한 사회를 만들고,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앞장서겠다"며 "5월 1일 1박 2일 철야집회를 통해 청와대로 가서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서 대답을 들을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자 한다. 앞으로도 시민들께서 함께 해달라”고 외쳤다. 그러나 1일 유가족과 시민들에게 돌아온 것은 캡사이신과 최루가스, 최루액이 섞인 물대포와 경찰의 벽이었다.
이후 쓰려는 글은 5월 1일 노동절에 있었던 세월호 추모문화제와 관련된 것이다. 그러나 글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 기사를 작성하는 중에도 안국동 사거리에서 벌어진 상황이 생생하다. 울부짖는 유가족, 성난 시민들...그리고 막는 경찰들...모두가 가족이고 친구인 사람들이다.
[1신]1일 17:00~20:00 광화문 광장
광화문 광장은 한산했다. 광화문 광장 북쪽에서는 불교계 행사가 진행되었고, 행사의 부스가 차려져 있었다. 세월호 추모문화제에 참여하려는 시민들이 도착하고 있었지만, 세월호 부스 상황실에서는 "현재 안국동 사거리에서 경찰과 대치 중"이라며 "21시에 예정된 문화제는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고 연신 공지했다. 광화문 광장에 시민들이 계속 모여들고 있는 상황이었고, 한 쪽에서는 이날 행사 때 공연을 하기로 한 앳띤 학생들이 춤연습을 하며 유가족을 기다렸다.
[2신]1일 20:00~22:00 안국동 사거리
안국동 사거리는 인사동 길을 제외한 삼청동 방향, 광화문 누각 방향 종로경찰서 방향이 모두 막혀 있었다. 추모문화제에 참여한 시민들은 광화문 방향으로 행진하기 위해 움직였다. 이러한 와중에 경찰병력과 충돌했고, 경찰은 폴리스 라인을 지키며 시민들에게 캡사이신을 살포했다. 성난 시민들은 광화문으로 가기 위해 강력하게 저항했다.
지난 4월 18일 추모문화제에서 경찰버스가 파손된 것을 고려했는지 경찰은 경찰버스의 방향을 출입문 반대 방향으로 차벽을 설치했다. 추모문화제에 참여한 시민들은 차벽을 이동시키려 시도했다. 경찰버스의 창문이 깨졌고, 줄을 이용해 경찰버스를 움직이려 했지만, 경찰버스 안에는 경찰 병력이 따로 배치되어 깨진 창문 사이로 캡사이신을 살포하며 방어했다.
[3신]1일 20:00~24:00 안국동 사거리
시민들의 저항이 거세졌다. 광화문으로 가기 위해 폴리스 라인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경찰병력과 계속 충돌했다. 경찰은 캡사이신을 쏘며 방어했고, 시민들은 물병을 투척하며, 폴리스 라인을 제거했다.
폴리스 라인이 제거되고 시민들이 몰려들자, 경찰은 무차별적으로 캡사이신을 살포했다. 당시 폴리스 라인 근처에는 기자들이 대다수였지만, 캡사이신은 시민과 기자를 가리지 않았다. 기자들은 경찰이 쏘는 캡사이신을 맞기도 했고, 시민들이 던지는 물병에 맞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A모매체의 카메라가 파손되기도 했다.
급기야 11시경 경찰은 광화문 방향 위치한 살수차 3대에서 최루액을 섞은 물대포를 쏘기 시작했다. 최루액이 섞인 물대포를 피하는 시민들은 아비규환이었다. 시민들은 눈물, 기침, 구토증상, 호흡곤란 등을 보이면 물대포를 피했다. 물대포의 사정거리는 시민들이 농성 중인 장소까지 넓고 정교했다. 또한 최루액이 섞인 물대포는 조계사 방향을 막았던 경찰 병력까지 기침을 하면 괴로워했다.
몇 차례 물대포를 더 쏜 후에 현장은 소강 상태가 되었고, 시민들은 자리를 지키며 농성했다.
[4신]2일 00:00~03:00 안국동 사거리
소강상태를 보이던 안국동 사거리는 2일 새벽 2시 20분부터 변화가 있었다. 경찰은 경고 방송 후에 병력을 투입하여 진압 준비에 들어갔다.
1일 11시 30분경 물대포 소식을 듣고 다시 현장으로 돌아온 새정치민주연합 김광진의원과 군인권센터 임태훈 소장은 유가족과 함께 경찰이 인도로 시민들을 몰아넣는 것을 막았다. 경찰은 캡사이신을 쏘면서 이 과정에서 유가족이 넘어져서 다치고, 사이에 깔리는 위험한 상황이 곳곳에서 발생했다.
[5신]2일 03:00~06:00 안국동 사거리
경찰은 유가족과 추모문화제에 참여한 시민들은 분리시켰다. 시민들은 인사동 입구 인도 위에서 농성을 시작했고, 유가족들은 인사동 인도에 있는 시민들에게 가겠다며 이동했지만, 경찰병력에 막혀 이를 사이에 두고 양쪽에서 농성에 돌입했다.
새벽 2일 4시 10분경 문제들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경찰은 종로경찰서에서 광화문 방향의 1개 차선을 차량이 통과하도록 교통경찰을 배치했다. 조계사 방향도 차량통행이 가능해지면서 점점 차량의 이동이 많아졌다.
문제는 2일 새벽 4시 32분 유가족이 위치한 장소에 차량을 통행시킨 것이다. 위의 사진을 보듯이 아무런 안전장치가 마련되지 않았고, 이에 군인권센터 임태훈 소장과 김광진 의원, 인권침해감시단이 교통경찰 지휘부에 강력하게 항의했다. 유가족들은 경찰에게 "우리보고 이제는 죽으라는 것이냐", "왜 못지나가게 막고 있느냐"며 울부짖었다.
다행히 진입했던 택시는 바로 빠졌고, 교통경찰은 안전을 위해 배치되었다.
[6신]2일 06:00~08:00 안국동 사거리에서 광화문 방향 50M
문제는 계속해서 발생되었다. 차량 통행이 가능해지면서 이 부근이 차량 정체가 발생하였고, 차도 위에 앉아있는 유가족을 향해 지나가던 소수의 운전자가 욕을 하거나 유가족을 자극하는 "이게 뭐하는 짓이냐", "지겹다 그만해라"라는 식의 말을 쓰면서 몇 명의 유가족들이 참아왔던 감정을 주체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유가족과 운전자들과 다툼이 발생했다. 그러나 이를 제지하거나 말리는 경찰은 보이지 않았다. 인권침해변호사 측과 다른 유가족들이 화가 난 유가족을 말리면서 현장 정리를 했다.
애초에 유가족은 인도 위에 농성 중인 시민들에게 가겠다고 요청을 했다. 그러나 경찰은 유가족들에게 길을 열어주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가족들은 광화문 방향으로 이동을 하였고, 안국동 사거리에서 광화문 방향 50m 지점에서 경찰병력에 의해 다시 막히면서 충돌이 일어났다.
[7신]2일 오전 6:00~12:00
유가족들은 광화문으로 이동을 하였고, 경찰 측에도 요청을 했다. 경찰은 인도로 이동을 하라고 했지만, 이미 인도 역시 경찰병력에 의해 막혀있었다.유가족들은 "인도로 가라면서 인도를 막아버리면, 우리보고 어떻게 가라는 것이냐"며 항의했다. 그러나 경찰은 묵묵무답이었다.
갑자기 유가족 측 남성들부터 목에 노끈을 걸기 시작했다. 이후 여성들도 목에 노끈을 걸고 광화문 방향으로 이동을 시도했다. 사람이 다치는 것을 넘어선 상황이었다.
이후 소강상태가 지속됐다. 몇 명의 유가족들은 경찰병력 앞에 앉아있었고, 대부분의 유가족은 인도에 앉아 "광화문으로 가는 길을 열어달라"고 요구했다. 이날 오전 11시에 예정되어 있던 기자회견은 유가족 없이 416연대가 광화문에서 진행했다.
▶누가 유가족의 목에 노끈을 매게 했는가?
이날 오후 유가족들은 광화문 광장으로 갈 수 있었다. 오전 11시에 기자회견을 했던 '416연대'는 세월호 추모문화제에 대한 경찰의 강경 진압을 규탄했다. 또한 "정부가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수정안 처리를 강행한다면 중대 결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5월 1일과 2일에 벌어진 세월호 추모문화제는 4월 18일의 추모제와 비교했을 때 오히려 경찰의 대응이 강경해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최루액을 섞은 물대포는 추모제에 참여한 유가족과 시민들에게 고통을 안겨주었다. 물대포를 맞은 시민들이 구토 증상과 피부에 수포가 생기는 상황이 발생했다. 경찰 측도 부상자가 발생했다. 추모제에 참여한 유가족과 시민, 경찰병력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상황이 반복되어 발생하고 있다. 유가족들과 시민들...그리고 경찰병력 역시 누군가의 가족이며 친구일 것이다.
지난 달 4월 25일 세월호 추모문화제는 평화적으로 진행됐다. 무장한 경찰과 비무장인 유가족, 시민들 사이에서 언어적, 물리적 폭력이 발생되면 피해를 입는 것은 비무장인 유가족과 시민들이다. 경찰의 임무는 시민의 안전이 최우선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정부에 대한 신뢰는 떨어지고, 사람들의 상처는 깊어질 것이다.
정부는 '왜 유가족들이 목에 노끈은 걸고 이동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되었는가', '왜 유독 서울에서 진행되는 추모제는 심각한 상황들이 발생하는가'를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