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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세종시, ‘성군 세종’이 아닌 왕위다툼 시절 ‘충녕’ 으로 대표 캐릭터를 결정한 이유는?

이기종 기자 dair0411@gmail.com 입력 2021/04/16 17:52 수정 2021.04.16 18:08
세종특별자치시는 지난 2012년 출범 당시 제정된 기존 캐릭터 ‘새빛이 새날이’가 디자인의 완성도와 활용성이 떨어진다는 시민 의견에 따라 세종시의 가치를 제고하고자 신규 캐릭터 ‘젊은세종 충녕’을 개발했다. 좌측 사진은 세종시청에 있는 ‘성군 세종대왕’ 동상, 우측 사진은 세종시가 새로 개발한 ‘젊은세종 충녕’ 캐릭터./ⓒ이기종 기자·세종시
세종특별자치시는 지난 2012년 출범 당시 제정된 기존 캐릭터 ‘새빛이 새날이’가 디자인의 완성도와 활용성이 떨어진다는 시민 의견에 따라 세종시의 가치를 제고하고자 신규 캐릭터 ‘젊은세종 충녕’을 개발했다. 좌측 사진은 세종시청에 있는 ‘성군 세종대왕’ 동상, 우측 사진은 세종시가 새로 개발한 ‘젊은세종 충녕’ 캐릭터./ⓒ이기종 기자·세종시

[세종=뉴스프리존] 이기종 기자= 세종특별자치시는 세종시의 가치를 제고하기 위해 신규 캐릭터 ‘젊은세종 충녕’을 개발한 것과 관련해 ‘충녕’의 의미 등 논의 과정에 대한 본지의 질의에 입장을 16일 밝혔다.

세종특별자치시는 신규 캐릭터 ‘젊은세종 충녕’을 개발하고 ‘세종특별자치시 상징물 제정 및 관리 조례’와 관련해 일부 개정조례를 시행했다.

이 개정의 발단은 지난 2012년 출범 당시 제정된 기존 캐릭터 ‘새빛이 새날이’가 디자인의 완성도와 활용성이 떨어진다는 시민 의견에 따라 지난 2019년부터 신규 캐릭터 개발을 추진해왔다.

이에 새로운 캐릭터는 세종시를 직관적으로 상징하고 캐릭터로서 품격을 갖춰야 한다는 시민 여론과 전문가 의견에 따라 위대한 성군 ‘세종대왕’에서 영감을 얻어 개발했다는 것이다.

또 이번 새 캐릭터 ‘젊은세종 충녕’은 세종대왕의 이름과 정신을 이어받아 미래를 향해 성장하는 젊은 도시 세종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이 ‘젊은세종 충녕’은 인쇄물과 같은 전통적인 매체는 물론 누리소통망(SNS)과 같은 온라인 매체에서도 적극 활용될 수 있도록 다양한 디자인으로 응용이 가능하도록 개발됐다.

특히 젊은세종 충녕의 이미지에 걸맞은 이름 글자(글씨) 디자인을 개발·적용하는 등 9천만원 규모의 사업비를 들였다.

본지가 이번 세종시의 캐릭터 개발에 주목하는 것은 젊은 세종시와 젊은 충녕의 모습이 연계성을 가질 수 있는가 여부이다.

젊은 세종 ‘충녕’을 역사적으로 보면 세종대왕의 본명은 이도(李祹)이고 당시 정안군이었던 이방원의 3남으로 1397년에 태어났다.

특히 이성계(태조)의 다섯째 아들인 이방원(태종)이 제1차와 제2차의 ‘왕자의 난’을 통해 왕위에 오른 뒤 1408년 12살에 충녕군(忠寧君)에 봉해졌고 이어 1412년에 충녕대군(忠寧大君)이 됐다.

여기에서 충녕의 의미 중 녕(寧)의 의미를 살펴보면 시경에서 ‘부모를 뵈러 가다’(歸寧父母)라는 표현에서 ‘녕’이 사용되었고 일부 역사학자의 의견에 따르면 태종 이방원이 아들의 칭호에 일률적으로 ‘녕’자를 집어넣은 이유에 대해 아들들이 왕위를 놓고 서로 싸우지 않고 더 나아가 자신과 아들들이 한 울타리 속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희망한 것으로 분석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이후 젊은 세종 ‘충녕’은 양녕대군(장남), 호령대군(차남) 등과 왕위 계승 다툼 등 많은 시련을 겪으면서 1418년 22살에 즉위했다.

또 왕이 되었어도 한 동안 상왕이 된 태종의 영향을 받아 원활한 국정 운영 등을 하지 못하였지만 1422년 태종이 죽으면서 역사에 기록되어 있는 성군의 행보를 보이게 된다.

세종의 역사적 평가는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알고 있듯이 조선을 독립적인 나라로서의 자리매김하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고 훈민정음 창제 등에서 나타난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성군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젊은 시절 충녕군과 충녕대군이 성군의 자질이 보였다는 사례는 역사적으로 잘 나타나 있지 않아 평가도 다양하다.

실례로 충녕군과 충녕대군 시절과 관련해 국립대학교 교수가 연구한 ‘세종의 리더십’ 연구에 따르면 “충녕대군은 뛰어난 머리, 집념, 인내력, 배움을 즐기는 자세, 반듯한 처신이 장점이었지만 고집이 셌고 운동부족과 비만이 문제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또 지난 2008년에 지상파 방송에서 있었던 ‘대왕세종’ 드라마는 젊은 시절의 충령을 현대적 시각으로 해석해 정치적 야망과 향후 펼치게 될 애민사상 등을 일부분 표출했다.

따라서 캐릭터 ‘젊은세종 충녕’이 현재 세종시가 설계하고 있는 미래지향적이고 시민의 안전과 행복을 담보할 수 있는 젊은 도시의 개념과 상통하는가 여부에 대해 고려해 볼 필요성이 이 있다.

이러한 ‘젊은세종 충녕’에 대한 평가에 대해 대변인 관계자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조선왕조실록’ 등의 자료를 인용하면서 “충녕대군은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애민정신이 깃든 정책을 펼치는 데 기틀이 되는 준비과정을 거쳤고 조선의 원활한 통치를 위한 성품도 어릴 적부터 엿볼 수 있었다”고 답변했다.

이어 젊은 시절의 평가에 대해 “우선 영민하다는 평을 받았으며 각종 서적을 탐독하여 학문에 전념하였다”며 “이러한 학문적 수련은 조선의 정치적, 제도적 기틀을 마련하고 나라의 전성기를 불러오는 데 밑거름이 되었다”고 설명했다.

또 “동생 성녕대군이 병에 걸렸을 때 정성스럽게 간호하고 치료법을 찾기 위해 의서를 놓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었다”며 “이는 충녕대군의 정성과 성품을 알 수 있는 사례로 이로 인하여 주위 사람들과 신하들이 감복하였다”고 덧붙였다.

특히 “이처럼 충녕대군의 높은 학식과 올바른 성품으로 세자로 책봉될 때에도 많은 신하들의 신망을 얻었다”며 “이는 향후 왕권과 신권이 조화롭게 조선을 통치하고 애민정신이 깃든 정책을 펼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고 강조했다.

본지가 대변인실을 통해 ‘젊은세종 충녕’에 대한 의미 설명을 요청한 것은 충녕이 창조적 인물이 아닌 역사적 인물이라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다.

특히 세종시가 지난 2019년부터 시민 의견에 따라 신규 캐릭터 개발을 추진해왔고 최근 9천만원 규모의 사업비를 들여 신규 캐릭터 제작하는 과정에서 세종의 젊은 시절 ‘충녕’에 대해 역사적으로 고증을 했는가 여부와 이 고증을 통해 현재 젊은 세종시가 미래지향적인 스마트 시티를 꿈꾸며 시민의 행복 도시로 발전하기 위한 개념을 투영시켰는지 여부에 대해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세종시로부터 일반적인 역사적 자료를 근거한 설명을 들었을 뿐 캐릭터 개발 과정 등에서의 숙의 과정에 대한 설명은 충분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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