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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위양못의 완재정 풍류와 이팝나무 [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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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위양못의 완재정 풍류와 이팝나무 [탐방]

강창원 기자 win690@naver.com 입력 2021/05/06 07:20 수정 2021.05.06 09:31
밀양 위양지의 완재정과 이팝나무꽃이 핀 풍경ⓒ강창원 기자

[창원=뉴스프리존] 강창원 기자=비가 갠 후 맞은 어린이날, 사람들로 북적이는 위양못 인근에는 주차공간은 물론이고 차량의 통행도 어려운 실정이었다.

많은 인파의 물결 속에 위양못 속 작은 섬에 자리한 완재정(宛在亭)은 인생 사진 남기려는 명소가 탄생했고 줄지어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위양못은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67호로 신라시대에 축조될 당시엔 제방의 둘레가 4.5리에 달하였으나 현재 위양못의 규모는 6만2790㎡으로 축소된 모습으로 남아있다. 밀주구지(密州舊識), 위양동 조(位良洞條)에 의하면 임진왜란으로 파괴된 제방을 1634년에 밀양 부사 이유달이 다시 쌓은 것이라는 기록이 있다.

위양못 가운데에 다섯 개의 작은 섬이 있고 작은 섬들과 제방에는 크고 작은 나무들이 아름다운 경치를 이루고, 특히 완재정이 있는 섬에는 이팝나무가 꽃을 피우면 밀양팔경의 몽환적 아름다움을 뽐낸다.

저수지라는 경제성과 연못으로서의 경승지 성격을 아울러 가진 위양못은 안동권씨 집안의 정자 완재정과 이팝나무꽃이 피는 5월이 되면 그 아름다움은 사진작가는 물론이고 봄나들이 명소가 된다.

중국 양양의 경치와 닮았다는 위양지와 완재정ⓒ강창원 기자

학산(鶴山) 권삼변(權三變)이 바라보니 위양못 5개 섬의 경치가 중국의 양양(襄陽)과 같다 하여 집을 짓고자, 완재정(宛在亭)이라는 시를 남겼더니, 300년 후에 8세손 우중(友中) 만석(萬錫)과 9세손 중영(重英) 중우(重禹) 병석(秉錫) 중기(重琦) 등이 공의 유지를 추모하여 고종 경자년(1900)에 완재정이라는 현판을 단 정자를 창건했다.

완재정 대청에 걸린 완재정기(宛在亭記)가 있어 아래에 옮기고 학산 권삼변(權三變) 지은 완재정 원운도 남긴다.

완재정 편액ⓒ강창원 기자

宛在亭記[原文]
密陽二十里有華嶽山 山下有位良里  里前有陽也池 一稱陽良池 周回四十里 中有五嶼 其沃千頃 四堤此佳木異卉 粤自羅麗時 爲生民利澤之源 隱者盤桓之所也 我宣廟時 鶴山權公諱三變 自丹城來居本里 而樂本池襄陽之習氏 嘗欲作亭 以宛在名之 詩卽成 而屋未就 爲子孫恨者 百年矣 歲庚子 友中重英重禹萬錫秉錫重琦等 始乃就 五嶼中一嶼 成其遺志 爲屋三間 具方舟 以通往來 功旣訖 遣重魯泰直請記於余 噫 余每於蒹葭章諷詠之涵濡之 所謂伊人 果如宛在水中央 而欽艶之不已 然不言伊人之謂何人 故祗認得爲隱賢如考槃之碩人 白駒之嘉客 而尙恨猶有一重膜也 今在宛在亭 則不然一 而壬辰勇士童汪若之權鶴山宛在水中央也 二溯遊而壬辰孝子江革若之權鶴山宛在水中沚也 二溯遊而壬辰節士洪皓若之權鶴山宛在水中坻也 假使靑邱有閭巷之歌 不當止云 所謂伊人 而不知爲何所指之歎也 然汪及江及洪 經史書之 時君獎之 烈赫赫 名流千祀 惟鶴山公 以若之若 至今沈晦 不得褒揚 一亭之外 終始有所謂伊人也 雖以亭上言之 語其跡則宛在水中央 考其世則遙遙華表 不啻爲道阻且右也 余故悲之 不辭其請 而作宛在亭記 如此 以代蒹葭詩三章 仍竊有感焉 夫山林川澤 天下之公物也 吾心旣公 則物爲我物 不然則我自我 而物自物 欲公吾心 惟道而已 道者何 子在川上曰 逝者如斯夫 不舍晝夜 此則吾與其子孫 共勉焉
上之四十年癸卯 小雪節
通正大夫 前行承政院同副承旨 兼經筵參贊官 春秋館修撰官 李晩燾 謹記

완재정기[해석문]
밀양시내에서 20리에 화악산(華嶽山)이 있고, 산 아래 위양리(位良里)가 있으며, 동네 앞에 양야지(陽也池)가 있는데 양양지(陽良池)라고도 부른다. 주위가 4, 5리이고 가운데 작은 섬 다섯이 있으며, 수많은 전답에 물을 대고 사방 둑에는 모두 아름다운 나무와 화초가 있어, 지난 신라와 고려시대에 주민들에게 혜택을 주는 근원이었으며, 은자가 소요하던 곳이다.
우리 조선시대에 학산(鶴山) 권공(權公) 이름이 삼변(三變)이 단성(丹城)에서 본 동네로 와서 살면서 본 못이 중국 양양(襄陽)의 습씨지(習氏池)¹⁾와 같음을 즐겨, 일찍이 정자를 짓고자 하여 완재정(宛在亭)이라 이름을 지었는데, 시는 이미 완성하였으나 집은 짓지 못하여 자손들의 한이 된지 백 년이었다. 경자년(1900) 우중(友中) 중영(重英) 중우(重禹) 만석(萬錫) 병석(秉錫) 중기(重琦) 등이 비로소 다섯 섬 중 가운데 작은 섬 하나에 그 조상이 남긴 뜻을 이루어 집 세 칸을 짓고 네모진 배를 구비하여 왕래하도록 하였다. 공사를 마치고 나서 중로(重魯)와 태직(泰直)을 보내어 내게 기문을 청하였다.
아아, 나는 매양 ‘시경(詩經)’ ‘겸가(蒹葭)’²⁾장을 읊조리면서 젖어들어 이른바 ‘그 사람’이 과연 ‘완연히 물 가운데 있는’ 듯함을 흠모하여 마지않았다. 그러나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말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단지 「고반(考槃)」 시의 석인(碩人)³⁾이나 「백구(白駒)」 시의 가객(嘉客)⁴⁾과 같이 현자로 은거하는 사람인 줄로만 여기면서도, 아직까지 한 겹의 얇은 막이 막고 있는 것처럼 한스러웠다. 이제 완재정(宛在亭)에 있으면 그렇지 않아서, 한 번 물 따라 노닐면 임진왜란 때 용맹한 동자 전사 왕기(汪錡)와 같았던 권학산이 완연히 물 가운데 있는 듯하고, 두 번 물 따라 노닐면 임진왜란 때 강혁(江革)⁵⁾과 같았던 효자 권학산이 완연히 물 가운데 섬에 있는 듯하며, 세 번 물 따라 노닐면 임진왜란 때 절사(節士) 홍호(洪皓)⁶⁾와 같았던 권학산이 물 가운데 모래섬에 있는 듯하다. 가령 청구(靑邱) 땅에 길거리의 민요가 있었다고 한다면 ‘이른바 그 사람’이라고 하면서 누구를 가리키는지 모르는 탄식은 없었으리라. 그러나 왕기와 강혁, 홍호는 경전과 역사에 기록되었고 당대의 군주가 권장하여 열렬하고 혁혁하게 천년토록 이름이 전해오는데, 오직 학산공은 그저 그렇게 지금까지 숨겨져서 포창되지 않았기에, 정자 하나 외에는 끝내 이른바 그 사람으로 있었다. 비록 정자로 말하더라도 그 자취를 말하자면 완연히 물 가운데 있고, 그 시대를 살펴보면 화표주의 전설 속에 아득함은, 길이 막히고 궁벽한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내 그러므로 슬퍼하여 그 청을 사양하지 아니하고 이렇게 완재정기를 지어 '겸가'시 3장을 대신하고, 이로 인하여 가만히 느낌이 있다. 무릇 산과 숲과 내와 못은 천하 공공의 물건이다. 내 마음이 이미 공정하다면 물건은 내 물건이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나는 혼자 나이고 물건은 절로 물건일 따름이다. 내 마음을 공정하게 하자면 도(道) 뿐이다. 도란 무엇인가? 공자께서 냇가에서 말씀하기를 “흘러가는 것이 이와 같아서 밤낮으로 쉬지 않는다”고 하셨다. 이것은 나와 그의 자손들이 함께 힘쓸 것이다.
주상 40년 계묘(癸卯, 1903) 소설절(小雪節)
통정대부(通正大夫) 전행승정원동부승지(前行承政院同副承旨)
겸경연참찬관(兼經筵參贊官) 춘추관수찬관(春秋館修撰官) 이만도(李晩燾) 근기(謹記)

【주석】
-습씨지(習氏池)¹⁾ : 중국 진나라 양양지방의 토호였던 습씨(習氏) 일족은 정원을 잘 꾸며 좋은 연못이 많이 있었다고 한다. 죽림칠현이 한 사람인 산도(山濤)의 아들 산간(山簡)은 이들의 연못을 좋아하여 노닐며 이름을 고양지(高陽池)라 하였다는고사가 전한다.
-겸가(蒹葭)²⁾ : 시경(詩經) 진풍(秦風)의 시 “갈대가 창창한데 흰 이슬 서리되네, 이른바 그 사람은 물 저쪽에 있는데 물길 거슬러 따르자니 길이 막혀 길지만, 물길 따라 따라가니, 완연히 물 가운데 있네.(蒹葭蒼蒼 白露爲霜 所謂伊人 在水一方 遡洄從之 道阻且長 遡游從之 宛在水中央)” ‘완재정(宛在亭)’이란 이름은 이 시의 마지막 구절에서 취하였다.
-고반(考槃) 시의 석인(碩人)³⁾ : 시경(詩經) 위풍(衛風)의 ‘고반(考槃)’ 시에 나오는 석인(碩人)은 궁벽한 곳에 은거하여 덕성을 함양하는 군자를 가리킨다.
-백구(白駒) 시의 가객(嘉客)⁴⁾ : 시경(詩經) 소아(小雅) ‘백구(白駒)’ 시는 조정에 뜻을 얻지 못하여 떠나는 현자를 만류하여 머물도록 권하는 시인데 가객(嘉客)은 현자를 가리킨다.
-강혁(江革)⁵⁾ : 중국 후한(後漢) 때 사람으로 난리에 어머니를 모시고 파난하며 도적떼를 감동시키는 효행으로 거효(巨孝)라 불렸던 인물이다.
-홍호(洪皓)⁶⁾ : 중국 남송(南宋) 때 사람으로 금(金)나라에 사자로 갔다가 15년 동안 억류되어 있으면서 끝까지 절의를 굽히지 않고 마침내 송나라로 되돌아왔다.

완재정 원운ⓒ강창원 기자

宛在亭原韻 완재정 원운
澤國回環大野頭 못이 있는 지역이 큰 들판 머리를 빙 둘렀으니
遡淙鎭日坐孤舟 거슬러 쫓아 다니느라 왼 종일 외로운 배에 앉았다.
勢撼兩厓呑活水 형세는 두 언덕을 흔들어 활수를 머금었고
功成九仞立中流 공로는 아홉 길을 이루어 중류에 섰네.
自憐遼鶴懁華表 요동학이 화표에 돌아온 것이 스스로 가련하고
堪愛秦葭在露洲 진나라 갈대의 이슬이 섬에 있는 것이 매우 사랑스럽네.
欲起一亭餘有地 한 정자를 일으킬 땅이 넉넉하게 있으니
晩年無事狎閒鷗 늘그막에 일이 없어 한가로운 갈매기를 사랑한다네.
鶴山 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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