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프리존]이동근 기자=삼성물산 합병 및 회계 의혹 재판이 본격적인 증인 심문을 시작한 가운데,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사면론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은 이 부회장은 지난 1월18일 국정농단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된 바 있다. 그는 지난 3월 급성 충수염 수술로 3주 이상 입원, 한 달 가량 연기됐던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 합병과 시세조정 혐의 등에 대한 공판이 지난달 22일 열린 데 이어 6일 첫 증인신문을 포함한 두 번째 공판이 진행됐다.
재계에서는 재판이 장기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제 1심이 막 시작한 단계로 3심까지 갈 경우, 최소 3~4년이 걸릴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재판을 맡고 있는 서울중앙지법 측은 오는 20일 3차 공판 뒤 부터는 격주로 하던 재판을 매주 열어 심리 속도를 높일 계획이지만, 대규모 증인 채택과 증거 기록 등을 감안하면 재판 장기화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실제로 검찰은 1차로 12명의 증인을 신청했고 재판부는 이를 모두 받아들인 바 있는데, 검찰은 이에 더해 2차로 증인 50명을 추가할 계획이며, 지난 공판 준비기일에서는 신청할 예정인 증인이 총 250명에 달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부회장은 '프로포폴 불법투약' 의혹 사건에도 연루돼 있다. 당사자 요청으로 지난 3월 26일 검찰 수사심의위원회가 열린 이후 검찰이 한 달이 넘도록 기소 여부를 결정하지 않고 있지만, 당시 수사심의위원회는 공소 제기 안건에 7대 7 찬반 동수를 내려 검찰의 기소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이재용 사면론'이 힘을 받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을 둘러싼 사법리스크가 장기화되는 것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반도체를 둘러싼 국가 간 패권 경쟁에서 제대로 된 대응을 못하면서 경쟁력을 상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등 5개 경제 단체장들이 공동 명의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사면 건의서를 청와대에 제출했으며, 광주상공회의소를 포함한 광주·전남 8개 경제 단체도 국가 경제를 위해 이 부회장을 특별 사면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유림 대표 조직 성균관도 전날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내는 청원서를 통해 이 부회장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요청했으며, 조계종 교구본사 주지협의회가 이 부회장에 대한 사면을 건의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대한노인회도 최근 특별사면을 건의했다. 이밖에 청와대 게시판에도 이 부회장의 특별사면을 요청하는 국민청원이 여러개 진행 중이다.
특히 여당에서도 최근 사면론에 힘을 싣고 있는 분위기다. 이원욱 의원은 4일, 라디오 방송에 출연, "국민들도 요구하고 있다. 정부가 좀 적극적인 고민을 해야 되지 않을까"라고 말했으며, 특히 삼성전자 출신 양향자 의원은 지난 달 20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반도체 전쟁터에 나간 우리 대표 기업은 진두지휘할 리더 없이 싸우고 있다"며 국민적 동의를 전제로 한 이 부회장의 조건부 사면 필요성을 제기한 바 있다.
6일에는 김부겸 국무총리 후보자가 '이재용 사면론'에 대해 "재계가 갖고 있는 상황 인식, 문제를 잘 정리해 대통령에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끓어오르는 반도체 시장, 삼성전자 '오너 리스크' 우려 커져
'이재용 사면론'이 최근 유난히 불거지는 이유는 반도체를 둘러싼 국가 간 경쟁과 관계있다는 것이 재계 등의 전반적인 시선이다.
현재 반도체는 모든 분야에서 품귀 현상을 보이고 있다. 4차산업혁명 시대 도래와 함께 반도체 사용량이 크게 증가한데 이어,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이 대세가 되자 서버를 중심으로 IT 분야에서 반도체 사용이 증가했고, 여기에 미국과 중국이 냉전상태에 돌입하면서 미국의 제제가 가시화 됨과 동시에 중국이 반도체 사재기를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가상화폐 붐이 전세계적으로 불면서 체굴을 위한 전자기기 판매량이 급증하는 등 다양한 요인이 작용한 결과다.
전 세계적인 반도체 공급 부족 사태가 벌어지면서 선진국들 사이에서는 국가 안보 이슈로까지 언급되고 있다. 이미 차량용 반도체의 품귀 현상은 차량 생산에까지 악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대부분의 전자제품 가격 인상의 요인이 되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경쟁은 추후 전세계 경제의 패권싸움이나 다름 없는 것으로 인지되고 있다. 실제로 미국은 글로벌 반도체 회사들에게 자국 내에 투자하라며 압박을 가하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삼성전자는 큰 결정을 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다. 특히 파운드리 분야에서 뒤쳐지지 않기 위해 근시일 내에 대규모 투자를 해야 뒤쳐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중이다. 실제로 이재용 부회장은 2030년까지 파운드리 등 시스템반도체에서 세계 1위를 달성하겠다며 10년간 총 133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반도체 파운드리 분야는 반도체 업체들이 가장 첨예하게 경쟁하는 분야다. 이 중 가장 높은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 업체가 대만의 TSMC이며, 삼성전자가 바로 뒤를 잇고 있다. 이 둘은 특히 하이테크 분야에서 경쟁하고 있는데, 최첨단 제품에 들어가는 10㎚(1㎚=10억분의 1m) 이하 파운드리 공정에선 TSMC가 60%, 삼성전자가 40%의 글로벌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우선 조만간 미국 현지 반도체 파운드리 추가 투자 규모를 확정해야 한다. 국내 평택캠퍼스에도 P3 라인 투자 결정을 앞두고 있다. 각각 투자 금액은 약 20조 원, 50조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쟁자들의 움직임도 신경쓰지 않을 수 없다. TSMC는 경쟁사들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올해 280억 달러(약 31조 원), 3년간 1천억 달러(약 111조 원)를 생산 설비에 투자할 계획이며, 인텔도 애리조나에 200억 달러(약 22조 원)를 투입해 파운드리 공장을 짓는다고 밝힌 바 있다. 국내에서는 SK하이닉스도 파운드리 투자를 확대할 예정이다.
'이재용 사면론’ 힘받는 배경엔 '삼성 반도체 신화'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삼성전자는 이재용 부회장의 부재가 뼈아플 수밖에 없다. 물론 이재용 부회장의 부재와 관계없이 삼성전자가 대규모 투자를 이어나갈 수 있다는 전망도 있지만, 큰 힘은 받지 못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워낙 오너 회사로 인식되는 탓도 있는데다, 전대 이건희 회장의 '반도체 신화'가 사람들의 뇌리 속에 박혀 있는 탓이다.
실제로 1984년 64메가 D램을 개발하고, 1992년 이후 20년간 D램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지속 달성해 2018년에는 세계시장 점유율 44.3%를 기록하는 기록을 세운 뒤에는 이건희 회장의 '뚝심'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불모지나 다름없던 반도체 분야에서 이 전 회장이 대규모 투자를 결정한 것이 오늘날 삼성전자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이재용 부회장에게 이 같은 신화의 '재림'을 기대하는 분위기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이 부회장이 옥중에서 나와 진두지휘를 해야 한다고 보는 분위기다. 이에 더해 삼성전자가 국내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워낙 크다 보니, 국내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이재용 부회장을 사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분위기다.
재계 관계자는 "정부 입장에서는 이재용 부회장 사면에 신중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며 "이미 형기의 절반 이상을 채운 만큼 국익 차원에서의 사면을 충분히 검토할 만 하다는 것이 중론"이라고 말했다.
한편, 10일,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4주년 특별연설이 예정된 가운데, 사면론에 대해 직접적인 입장을 밝힐 지 주목되는 분위기다. 약 1시간으로 예정된 이날 행사에서 문 대통령은 남은 임기 국정 운영 방향과 주요 현안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