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프리존]이동근 기자=오늘(9일) 오후 법무부의 가석방심사위원회 개최를 두고 재계의 관심이 유래 없이 집중되고 있다.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의 사면 여부를 두고서다.
법무부는 9일 오후 법무부 정부과천청사에서 비공개로 가석방심사위원회를 열고. 13일 광복절을 앞둔 가석방 대상자들의 적격 여부를 논의한다. 이재용 부회장은 서울구치소의 예비 심사를 통과해 이날 최종 심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 부회장은 지난 1월 국정농단 사건의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지난달 말 기준으로 형기의 60%를 채운데다 모범수로 분류돼 예비 심사를 무난히 통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법무부는 그동안 형 집행률이 55%∼95%인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가석방 예비심사를 했으나 지난달부터는 5%를 낮춰 형기의 50%를 채운 이들도 예비 심사를 받을 수 있게 했다. 구 기준으로도 이 부회장은 가석방 심사 기준을 충족한 만큼 심사 자체는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심사를 앞두고 가석방을 찬성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의 입장이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기본적으로는 찬성 측의 목소리가 높지만, 반대 측의 의견도 무시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우선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 달 26~28일, 만 18세 이상 남녀 1천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 부회장의 광복절 가석방에 대해 '찬성한다'가 70%, '반대한다'는 22%로 각각 집계됐다.
연령별로는 가석방 찬성 비율이 18~29세(65%), 30대(58%), 40대(59%), 50대(74%), 60대(87%), 70세 이상(81%)으로, 전 연령에서 찬성이 반대보다 높게 나타났다. 특기할만한 것은 민주당 지지층에서도 가석방에 찬성한다는 의견이 59%로, 반대(35%)보다 우세했다는 점이다.
다음으로 리얼미터가 YTN 의뢰로 지난 달 23일 전국 18세 이상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 부회장의 광복절 가석방을 두고 '경제활성화를 위해 해야 한다'는 응답이 66.6%, '특혜 소지가 있으니 하면 안 된다'는 28.2%로 각각 집계됐다.
연령별로는 역시 가석방 찬성 비율이 70대 이상(85.7%), 60대(81.7%), 50대(67.8%), 40대(51.6%) 30대(53.6%), 18∼29세(65.2%)으로 전 연령에서 찬성이 반대보다 높았다. 또 민주당 지지층에서도 가석방에 반대한다는 의견이 51.8%로 찬성(40.5%)보다 우세했다.
우선 이 부회장의 가석방을 지지하는 측의 입장은 명확하다. 삼성전자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누구보다 삼성전자 임직원들의 애가 타고 있다. 기술 경쟁에서 밀리고 대규모 투자 결정도 지연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초격차 전략이 흔들리고 있다고 지적받는 반도체·스마트폰 등의 사업에 있어 부회장의 공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만, 예민한 문제인 만큼 목소리는 최소한으로 낮추는 분위기다.
업계에서도 파운드리 1위 업체인 TSMC는 향후 3년간 1000억 달러를 투자하고 미국에 공장 6개를 짓기로 하는 등 격차 벌리기에 나섰고, 인텔은 글로벌 파운드리 인수에 나서며 파운드리 시장 판도 흔들기를 시도하는 상황에서 이 부회장의 공백이 크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메모리반도체 분야 세계 1위인 삼성전자가 흔들려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참고로 반도체는 한국 전체 수출에서 19.3%를 차지하는 초대형 품목이다.
삼성전자는 2030년까지 시스템반도체 1위를 하겠다고 목표를 밝힌 바 있으나, 이 부회장 부재로 중요한 투자 의사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상황이다.
재계는 가석방에서 더 나아가 아예 '특별사면'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가석방의 경우 경제사범에 적용되는 취업제한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지난 4월 경제 5단체가 사면 건의서를 청와대에 제출했고, 한·미 정상회담 이후 청와대에 초청된 4대 그룹 회장들도 문재인 대통령에게 사면을 건의한 바 있다. 다만 최근에는 가석방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정치권도 이같은 분위기를 무시하지는 못하는 분위기다.
우선 야권인 국민의힘 측은 가석방 혹은 사면의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국민의힘 홍분표 의원은 "정국 주도권을 가지고 있을 때 대화합 조치를 해달라고 요청을 했다. 극한 상태까지 온 두 전직 대통령의 건강과 ‘반도체 전쟁’의 승리를 위해서 이번 8·15에는 특단의 조치가 있기를 기대한다"며 이 부회장의 가석방을 주장했고, 원희룡 전 제주지사 등도 비슷한 목소리를 냈다.
여권에서도 일부지만 가석방 찬성론이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반도체특위 위원장 변재일 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TSMC에 도전할 수 있는 기업은 삼성밖에 없다. 전략적 의사결정이 필요한데 총수 결심 없이는 불가능하다"며 아예 사면 필요성을 언급했다.
유력 대선후보 중 한 명인 이재명 경기지사도 최근 "가석방 제도는 모든 수형자가 누릴 수 있는 제도로, 특혜를 줘도 안 되지만 불이익을 줘도 안 된다"며 이 부회장을 가석방 대상에서 배제할 필요는 없다는 뜻을 언론 인터뷰에서 입장을 밝혀 주목을 받았다. 다만, 그는 가석방 필요성에 대한 개인 견해에는 "구체적인 사안을 모르기 때문에 알 수 없다"며 즉답을 피하기는 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6월2일 4대그룹 오찬간담회에서 이 부회장 사면을 거론한 최태원 SK 회장에게 "고충을 알고 있다. 국민들도 공감하는 분이 많다"고 언급한 바 있다.
다만, 반대 목소리도 무시하기는 어렵다. 여권과 시민단체들은 '이전 정권의 실정에 대한 심판'과 '정부에 부담이 될 것'이라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대선 후보는 가석방심사위원회의 심의를 하루 앞둔 8일, SNS를 통해 "삼성전자라는 기업을 상대로 한 범죄로 구속된 사람이 기업을 위해 풀려나야 한다는 논리의 허망함은 물론이고, 완화된 가석방 기준에 겨우 턱걸이 하는, 0.1% 이하의 가석방 대상자 중 한 명이 이재용이 된다면 그 부담은 이명박 정권 시절 '이건희 원포인트 사면논란' 이상으로 우리 정부에 부담이 될 것"이라고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진보 성향의 야권인 정의당 심상정 의원도 '이 부회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86억 뇌물을 준 국정농단 사건의 연루자'라고 정의하며 "이 부회장이 가석방된다면 문재인 정부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에 면죄부를 주는 셈"이라고 경고했다.
시민단체들의 반대 목소리도 높다. 참여연대, 민주노총 등 1056개 시민단체는 3일 "이 부회장 가석방을 허가하면 시민들의 분노와 반발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며 "기업 성장을 이유로 가석방이 이뤄지면 기업 범죄가 끊이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사면이 이뤄지더라도 활동에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고 특별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가석방은 남은 형기 동안 재범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조건하에 임시로 풀어주는 조건부 석방이다. 따라서 경제사범에 적용하는 '취업제한'이 그대로 적용된다.
즉, 업무 지시를 하거나 해외 CEO를 만나는 등 온전한 경영활동을 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따라서 이 부회장의 경영 활동을 위해선 법무부 장관이 취업제한 대상에서 예외를 인정하는 별도의 승인이 뒤따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