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 한자에서 ‘女’ 자를 부수로 삼은 경우는 좋은 뜻보다 거부감을 일으키는 낱말이 훨씬 더 많다. 그 중의 하나가 ‘嫡’이다. 정실 또는 본처라는 뜻이다. ‘嫡’은 많은 조어를 파생해 내었다. 그러나 사용 빈도에는 낱말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같은 아비의 몸에서 태어나더라도 그 자식의 귀천을 결정하는 건 여성의 몸이었지만, 그 몸에서 태어난 이들은 오직 남성 성별이라야 의미가 있었다. 적통, 적출, 적서, 적자, 적장자, 적손 중 남성과 직접 연관된 낱말은 적자, 적장자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적통이니 적출이니 하는 낱말을 떠올릴 때 남성 성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낱말들은 적통과 적출이 사라진 시대에도 살아남았으며, 적녀, 적장녀, 적비, 적모 등 여성과 결부된 말은 현대에서 생명을 잃었고 옛 문헌을 뒤져야 만날 수 있다.
‘嫡’의 대응어가 庶’이므로 정실 몸에서 태어나지 않은 서얼 계통을 말할 것이다. 그러나 적통이라는 낱말의 용례를 고전 문헌에서 찾아보니 본처의 자식이면 모두 적통으로 대우한 것이 아니라 그 중에서도 맏이 즉 적장자의 계통으로 범위를 좁혀 가리키는 데도 쓰였다. 이 경우에 서자는 소실 출신 아들들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적장자를 뺀 나머지 모든 자식들을 두루 일컫게 된다. 庶’는 본디 여럿이라는 뜻을 갖고 있으므로 적출이라도 장자가 아니면 서자라고 해도 틀리지 않기는 하다. 삼국유사에서는 환웅을 환인의 ‘서자’라고 기록하고 있다. 환웅이 적장자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환웅이 적장자의 친동생 즉 본처가 낳은 자식이었는지 아니면 서얼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환웅은 서자였기에 하늘을 계승하지 않았고 땅으로 눈을 돌려 새로운 질서를 창조할 수 있었다. 환웅이 서자로 태어나 새 세상을 열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그러나 인간이 만드는 현실 역사에서만큼은 서자의 처지는 신화와는 달랐다.
조선의 양반들이 무책임하게 양산한 수많은 홍길동들이 적통이 아니라는 이유로 평생 굴레를 쓴 채 살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서자는 한 집안에서 어떤 중요한 역할도 맡지 못했으며, 집안의 유산, 가산, 작위, 공명 등 좋은 것은 몽땅 적자의 차지였다. 그나마 홍길동은 서자의 존재라도 세상에 알렸지만 역사나 소설에 드러나지 않은 서녀들도 적녀와의 차별이 극심한 것은 다를 바 없었다. 서녀는 출가하면 정실이 아닌 소첩만 될 수 있었으며 그 어떤 경우에라도 절대 적녀의 지위를 넘을 수 없었다.(중국바이두백과사전 ‘서자’ 조항) 적서 차별은 전근대 이전 우리나라와 중국 모두 만연했지만 그나마 중국은 당송 이후 누그러졌던 반면 우리는 조선 이후 더 심각해졌다.
적통 논쟁이 정치판에 거세게 몰아치던 시대가 있었다. 조선 현종 때 송시열은 인조의 둘째아들인 효종이 대왕대비보다 먼저 승하하자, 적자라도 둘째 아들부터는 서자라고 한다면서 적통이 아니고 신하일 뿐인 효종을 위해 대왕대비가 3년을 온전히 복상하는 건 옳지 않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남인들은 효종이 둘째 아들로 태어났지만 적장자 소현세자가 먼저 죽었으면 효종을 첫아들로 봐야 하는데도 송시열이 적통이 둘이 될 수 없다고 한 것은 편협하다고 반격했다. 그 유명한 1차 예송논쟁으로서 이 논쟁의 핵심 용어 중 하나가 ‘적통’이었다. 지금의 우리 관점에서야 남인이 본 대로 적장자가 아니더라도 적법하게 대를 물려받았으면 적통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적자라도 장자가 아니면 서자라는 논리를 임금한테까지 적용하는 서인들의 생각이 답답하고 편협하게만 비칠 것이다.
송시열과 서인들의 생각은 차별주의의 집착이 어떤 극단적 논리로 귀결하는지 잘 보여준다. 차별주의는 차별의 그물을 넓히고 넓혀서 세상 대부분을 포위망에 밀어 넣는다. 적통은 자신의 대상 범위를 극도로 좁혀 적통으로 볼 수 있는 것마저 아니라고 배격한다. 그래야 차별의 논리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차별이 차별을 낳고 적통이 적통마저 차별하는 자기모순을 통해 간신히 살아남는 것은 이런 논리를 펼친 그 자신뿐이다. 이런 극단의 이기주의로 귀결되는 파탄을 피하려면 애초 적통이라는 희한한 용어를 쓰지 말아야 한다.
그래도 정실 몸에서 태어난 임금이 맏이가 아니라는 이유로 적통으로 인정하지 못하겠다던 이들이 있었던 시대가 300년 전이라고 하면 그 컴컴한 옛날에야 어떤 일이든 일어나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러나 요즘에도 ‘적통’ 글자를 끄집어내어 정치에 활용하겠다고 덤비는 사람들이 있다면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적통은 적통이 되지 못하는 누군가에게는 뼈아픈 개념이다. 적통은 적통이 되고 싶다고 해서 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어떤 어미에게서 태어났느냐 하는 것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사안이다. 현대 정치에서 신분제 개념을 끌어다 쓰는 집단은 자신들의 정치 인식이 얼마나 기형적이고 낙후되었는지 고백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가 대통령 후보 경선을 겨냥해 만든 홍보물에서 자신을 민주당의 ‘적통’으로 내세운 것은 설령 비유적 표현으로 썼다고 해도 숨 막히는 신분제 개념을 그대로 끌어온 것으로서 매우 경솔한 행동이다. .
이낙연 진영이 조금이라도 인권 감수성이 있는 집단이라면 수많은 이들의 통한이 서린 ‘적’이라는 용어를 갖다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이낙연을 적통으로 내세우는 순간 민주당의 계보는 김대중 정권 때 민주당에 입문한 호남 출신에다 문재인 정부에서 2인자 자리까지 오른 이낙연만 차지할 수 있다.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민주당 태생이 아닌 사람은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될 자격이 없다.
이낙연 진영이 ‘정통’과 ‘적통’을 대비시키며 ‘적통’을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운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에 참여한 민주당에 이낙연이 몸담았다는 점에서 드러났을 정통성의 취약을 어떻게든 만회하려는 위기의식이 낳은 것이기도 하다. 급할수록 진심은 드러나는 법. 이낙연은 능력보다 핏줄의 힘을 더 믿는 사람이다. “고대 시대에 핏줄은 한 개인의 능력을 재는 척도였다.”(중국바이두백과사전 ‘서자 ’ 항목) 핏줄도 능력이라고, 아니 최고의 능력이라고 주장하는 사람. 노무현이 민주당 적통이 아님을 부각한 사람이 이낙연이다.
이낙연이 굳이 고백하지 않아도, 민주당 계보의 중시조격인 노무현은 생전에 민주당으로부터 서얼 취급을 받았다. 2002년 노무현을 대통령 후보로 만든 돌풍이 잦아들고 지지율이 눈에 띄게 떨어지자 민주당 당권파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후보 사퇴 압박이라는, 한국 정치사에서 보기 힘든 횡포를 부렸다. 급기야 참여정부가 들어서자마자 민주당은 둘로 쪼개졌고 민주당은 탄핵 찬성을 통해 적통이 자신들의 자리를 꿰어 찬 서얼을 어떤 식으로 징치하는지 보여주었다.
노무현의 서거 이후 민주당이 김대중과 노무현 사진을 나란히 당사에 걸었던 것을 기억하는가. 대선 패배 이후 친노 일각으로부터도 ‘폐족’(역시 봉건적 용어!) 선언이 나오는 등 참담한 지경으로 내몰렸던 노무현은 고인이 되어서야 김대중의 계승자로 인정받는구나 하고 느낀 게 나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적통에 집착하는 이들이라면 노무현이 민주당에서 핍박 받은 것도 불가피한 일로 인정해야 한다.
노무현을 근본도 없는 자로 본 과거 민주당 당권파들의 인식은 지금의 민주당 당권파들이 이재명을 대하는 인식으로 고스란히 승계되었다. 참여정부 초기 김대중-노무현의 관계는 지금의 문재인-이재명과 같을 것이다. 김대중이 문재인이라면 노무현은 이재명이다. 이낙연을 민주당 적통으로 삼는 이들이 이낙연의 경쟁자를 밀쳐내려고 할수록 드러나는 자신들의 맨 얼굴이 얼마나 심각한지 그들만 모를 것이다. 적통 개념을 좁히고 좁힘으로써 선왕조차 업신여겼던 송시열 휘하 서인들의 편협한 세계관과 그들은 매우 닮아 있다. 조선의 서인들이나, 과거와 지금의 민주당 당권파들에게는 오로지 자신들만 세상의 중심이며 나머지는 모조리 서얼이다.
모든 봉건적 인식이 그렇듯이 적통 개념은 어미의 신분에 따라 자식의 신분이 그대로 결정된다는 점에서 여성 희생을 바탕으로 깔고 있는 용어이기도 하다. 이 점에서 적통 논쟁은 ‘쥴리의 남자들’ 소동과도 만나게 된다. 나는 그 그림이 당사자와 의사, 고위 공직자 등 권력형 남성들과의 어두운 관계를 암시한 것이라는 외에는 구체적인 내용을 알지는 못한다. 그러나 여성 : 힘 있는 남성이라는 구도나, ‘~의 남자들’ 표현에는 여성의 주체적 인격을 깔아뭉개거나 여성의 성을 야유하고 놀림감으로 대하는 인식이 깔려 있다. 박근혜를 성기만 여성이라고 한 발언이나 박정희가 박근혜를 출산하는 그림과 하등 다를 바 없는 수준이다.
한국 사회는 근대적 시스템이 매우 더디게 만들어지는 나라다. 일각에서는 탈근대사회를 말하기도 하지만, 나는 이 나라가 근대성의 기초라도 제대로 갖추어졌으면 좋겠다. 아직도 이 나라의 사회구성원들 중 상당수는 왕조시대에서나 통할 법한 사고 체계를 갖고 산다. 그런 세상에서 조선 서인이나 노론 세력의 세계관에 닿아있는 정치세력이 등장했다고 한들 놀랄 법한 일은 못될 것이다. 봉건의식, 차별주의, 여성 비하, 특권주의, 신분주의 등 근대 이후의 사회라면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인식이 정치권을 장악한 것은 경악한 만한 일이지만 한국 사회가 이를 털어내려면 아직은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 같다. 그래도 민주주의 꽃이라는 선거에서만큼은 어둠의 용어가 발을 못 미치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 글쓴이는 문학평론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