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프리존]이동근 기자=GC녹십자의 국산 혈우병 치료제 '그린진에프'가 중국 시장을 뚫은 일이 주목을 받고 있다. 기존에 혈우병치료제 '그린에이트'가 중국시장에서 생산 및 판매되고 있지만, 비(非) 혈액제제인 혈우병치료제가 중국에 진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GC녹십자는 이달 14일, '그린진에프'가 중국 국가약품감독관리국(NMPA)으로부터 품목허가를 획득했다고 밝혔다. 그린진에프는 3세대 유전자 재조합 방식의 A형 혈우병 치료제로 GC녹십자가 세계 세 번째, 국내에서는 최초로 개발에 성공해 지난 2010년 출시한 제품이다.
GC녹십자 허은철 대표는 "이번 승인으로 중국 내 혈우병 환자들의 치료를 위해 이어온 노력이 결실을 맺게 됐다"며 "환자들의 치료 접근성 확대를 위한 조속한 상용화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A형 혈우병 환자 중 치료를 받는 환자가 40%에 불과해 시장 잠재성이 매우 큰 나라다. 혈우병은 DNA의 결함으로 피가 응고되지 않아 상처가 나면 잘 멈추지 않는 질환이다. 혈액응고 제8인자가 결핍된 A형과 제9인자가 결핍된 B형으로 나뉘는데, A형이 85%로 대다수를 차지한다. 혈우병 유병율은 인구 1만명당 1명 꼴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혈액제제는 생산량에 한계가 있고, 잠재적인 바이러스 감염 가능성을 안고 있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1980년대 혈우병 환자에게 에이즈 바이러스에 오염된 비가열성 혈액제제를 사용했다가 혈우병 환자 중 에이즈 보균자가 다량으로 발생한 사건도 있었다.
현재 중국 혈우병치료제 시장 규모는 약 1000억 원 정도다. 시장조사기관 글로벌 데이터는 2028년 중국 혈우병 치료제 시장이 약 4000억원 규모로 지난해 말보다 2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현재는 유전자재조합 혈우병치료제 다케다 애드베이트가 약 700억 원, 화이자 진타가 약 200억 원으로 양분하고 있다.
원래 그린진에프는 미국 시장 진출을 고려하고 있었다. 실제로 2012년 미FDA로부터 시판임상을 허가 받았고, 임상도 진행 중이었다. 하지만 2016년 미국 임상을 조기 중단하게 되고, 중국으로 방향을 틀었다. 미국에는 더 많은 혈우병치료제가 있어 환자 대부분이 치료를 받고 있어 신규 환자 모집이 어려웠다는 점 등의 문제가 있어서였다.
이는 미국 혈우병 환자는 약 1만 6000명 정도지만 중국은 3배에 해당하는 5만여 명의 환자가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현실적인 선택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에서의 경쟁력은 충분한 것으로 보인다. GC녹십자가 혈장유래 혈우병치료제로 이미 중국 시장 1위를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현지 계열사 GC차이나는 혈장유래 치료제로 혈우병 환자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오히려 그린진에프의 진출이 늦은 것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GC녹십자는 "그린진에프의 중국 임상에서 주요 평가 지표를 모두 충족하는 결과를 얻었다. 1차 평가 지표인 지혈 및 출혈 예방에서 치료제 주입 후 8시간 이내에 증상이 개선된 환자가 80%에 달했으며, 2차 지표인 '연간 출혈/관절 출혈 빈도'(Annual Bleeding/Joint Bleeding Rate)가 94% 가량 개선됨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난해 헌터증후군치료제 '헌터라제' 승인 이후 연달아 이어진 이번 허가로 중국 내 희귀질환 치료제 시장 공략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업계 관계자는 "장기적 시선으로 보면 혈우병 치료제 시장은 혈액제제에서 유전자재조합 치료제로 바뀌고 있고, 이미 중국 혈액제제 시장에서 충분한 성과를 내고 있는 만큼, 중국 시장 진출은 '현명한 선택'이 될 수 있다"며 "미국 시장 진출은 더 큰 시장 진출로 이어질 수 있어 아쉽지만, 기존 경쟁자가 강력한 만큼 중국에 집중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정답'일 수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