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뉴스프리존] 2008년 프로축구(K리그) 전 구단에 연령별 유스팀(U-15, U-18) 운영을 의무화한 후 고교축구는 우수선수 유스팀 쏠림 현상으로 일반 고교팀 수준은 하향세를 면치 못했다. 하지만 13년이 지난 현재 일반 고교팀 수준도 크게 향상되어 K리그 유스팀과 대등한 위치에 와 있다. 이런 현실에서 고교축구 강자로 거듭난 일반 학교가 있어 주목을 끈다. 그 주인공의 팀은 다름 아닌 충남 당진시 신평면에 위치해 있는 신평고등학교(교장 황용순) 축구부다.
신평고등학교는 1973년 3월 2학급 120명 학생으로 개교한 일반계 남녀공학 고등학교로서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축구 교육 프로그램을 통하여, 학생들의 특기를 신장, 계발할 수 있는 교육의 장을 만들고 미래의 주인공인 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한편으로 학생, 교직원, 동문, 학부모의 일체감 형성뿐만 아니라 애교심과 자긍심 함양으로 학교 발전에 촉매 역할을 목적으로 1988년 5월 축구부를 창단했다.
당시 신평고등학교 측의 이 같은 창단 결정은 뜻밖이었고 의외로 받아들여졌다. 그도 그럴 것이 축구부를 운영할 여건과 환경이 너무 열악했던 것은 물론 재정적 어려움으로 면단위 학교로서 축구부를 운영하는 팀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평고등학교는 한국 축구 발전이라는 또 하나의 대승적 차원의 지향점에 초점을 맞춰 축구부를 창단, 오늘의 고교축구 강자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이에 신평고등학교 축구부의 어제와 오늘을 알아보기 위해 지휘봉을 잡고 있는 주경철 감독을 만났다.
(인터뷰 내용 전문)
◇최근 신평고등학교 축구부 성장세가 가파르다
그렇게 평가해주셔서 감사하다. 사실 현재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선수 구성과 팀 전력으로 안정감을 갖추게 됐지만, 그러나 아직도 부족하고 개선해야 할 과제들이 많아 앞으로가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1996년 33세 나이로 신평고등학교 체육교사 겸 축구부 감독으로 부임했다.
프로(LG. 현 FC 서울▶유공. 현 제주 Utd▶전북 버펄로)에서 은퇴 후 박항서(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 추천으로 신평고등학교에 부임하게 되는 행운을 안게 되었다. 정말 나에게는 축구인으로서 제2의 인생 출발에 '천재일우'라고 할 수 있는 기회를 너무 쉽게 얻은 거다.
◇그렇다면 어려움은 없었는지?
정말 많았다. 특히 지도자 준비 없이 지휘봉을 잡다 보니 선수 때와는 전혀 다른 언행이 요구됐고, 또한 지도력 역시도 축구에 대한 애정과 열정만으로는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선수들과 함께 배운다는 자세로 지도자로서 갖춰야 모든 준비에 최선을 다했고, 그중 축구 외적인 부분인 대인관계 형성 또한 중요성을 깨닫고 스승님을 비롯하여 선배님들로부터 많은 지도 편달을 받았다.
◇당시 신평고등학교 축구부 선수 기량과 팀 전력은 어느 정도 수준이었나?
사실 부임 후 선수들의 기량을 점검하는 과정에서 많이 실망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선수라고 하기에는 워낙 기량이 부족했고, 마인드 역시 갖춰지지 않아 팀 전력은 그야말로 논하기 조차 부끄러운 수준이었다. 그래서 우선 기본에 충실한 훈련 프로그램 소화에 집중 경쟁력을 키워나갔고, 한편으로는 선수들에게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갖도록 하는 긍정 마인드 주입에 노력했다.
◇그 같은 지도력의 결과는 어땠는가?
그 결과에 대한 희망을 갖기까지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 이유는 바로 선수 수급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학교가 지니고 있는 시골학교라는 핸디캡은 물론 축구부 존재 가치가 유명무실하여 진학하려는 선수가 없었다, 그래서 우선 안정적인 선수 수급을 위한 관내 연계 초▶중학교 축구팀 창단에 매진했고 지역 유관기관 및 관계자분들의 도움으로, 마침내 연계 구축의 팀을 창단(계성초등학교, 신평중학교) 이후 비로소 안정적인 선수 수급의 토대를 마련했다. 이에 팀도 빠른 성장세를 보여 고교축구 무대에서 다크호스로 인정받게 되었다.
◇고교축구에서 다크호스로 인정받게 되었다면 성적이 뒷받침되었어야 했을텐데?
1999년 문화관광부 전국 고교축구대회 준우승, 2000년 문화관광부 전국 고교축구대회 3위, 2002년 금석배 전국 초.중.고학생 축구대회 3위, 2003년 전국 고교축구선수권대회 3위, 2012 춘계 전국 고교축구연맹전 저학년(U-17) 준우승, 제94회 전국 체육대회에서 동메달 획득을 했다. 하지만 지속성을 유지하는 성적으로 진정한 고교축구 강자로 자리매김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았다.
◇고교축구에서 그만한 성적이라면 대단한데 너무 겸손한 것 아닌가
아니다. 그러면서도 나의 지도력에 의문을 가진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지도자로서 갖춰야 할 덕목 함양에 더 많이 매진했고, 한편 고교축구 지도자로서 성적뿐만 아니라 선수 진로 문제에도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 선수들이 더 큰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지도력에 힘썼다.
◇주 감독, 말을 듣다 보니 지도자의 길은 결코 순탄하지 않은 것 같다.
지도자가 타인의 느낌으로는 화려하게 보이는 직군일 수 있지만, 모든 지도자들은 지도자 생활을 영위하면서 끊임없는 고민과 번뇌는 물론 거스를 수 없는 좌절의 삶을 살아간다. 따라서 쌓이는 스트레스가 엄청나다. 이에 나는 감히 가장 위로받아야 할 직군이 바로 지도자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나는 어린 나이에 지도자의 길에 뛰어들어 다른 지도자 선. 후배들 보다 좀 일찍 과분한 성적을 비롯하여, 선수들의 학교 내 숙소 환경 개선과 인조잔디 경기장까지 갖추게 되었으니 정말 저는 복을 받은 거다.
◇ 2021년 추계 전국 고교축구연맹전에서 창단 후 첫 우승하는 역사를 썼다.
2018년 춘계 전국 고교축구연맹전 준우승과 2020년 왕중왕전 고교축구대회에서도 3위에 입상했지만 창단 31년 만의 전국대회 우승이었기에 그 의미와 감격은 남달랐고, 한편으로 가슴 벅찬 보람도 느끼게 됐다. 하지만 이에 자만하지 않고 이제는 지속성을 유지하는 진정한 고교축구 강자로 거듭날 수 있도록 유양준 코치와 함께 제 자신 다시 한번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려고 다짐하고 있다.
◇축구부와 주 감독의 건승을 빈다. 그리고 그동안 물심양면 지원한 분들에게 한말씀 부탁드린다.
오늘에 신평고등학교 축구부가 있기까지에는 재단은 물론 학교 측과 지역 관계자 분들의 적극적인 지원과 협조가 뒤따랐기 때문에 가능했다. 아울러 선수들이 흘린 땀과 학부모님들의 적극적인 참여도 빼놓을 수 없다. 모두 고맙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끝으로 앞으로 계획은?
신평고등학교에 부임하며 “시련과 고통이 있을지라도 정성과 진심을 다하면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을 신념으로 삼고 있다. 앞으로도 이 말을 되새기며 초심을 잃지 않는 가운데 지도자 생활을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짓고 싶다. 정말 그동안 신평고등학교 축구부에 애정을 가지시고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에게, 다시 한번 큰 감사를 드리며 2022년에도 더 나은 성적으로 보답할 것을 약속드리겠다. 항상 감사한 마음이다.
분명 신평고등학교 축구부는 길지 않은 역사에서도 진일보한 발걸음을 내딛으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더구나 면단위 고교축구팀으로서는 찾아볼 수 없는 포항 스틸러스 김기동(50) 감독과 전 올림픽대표 서명원(26. 전남 드래곤즈) 선수 같은 걸출한 지도자와 선수까지 배출해 내며 한국 축구 발전의 자양분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에 신평고등학교 축구부와 자신의 생각을 가감 없이 피력한 주경철 감독의 내일이 더 기대됨을 실감하며 인터뷰를 마쳤다.